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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삼 Feb 20. 2021

아메리카의 아이콘이 사는 곳

행운을 담으러 숲에 갑니다




2021, 다시 보께떼


파나마의 북서쪽 산간지방에는 바루 화산이 만들어 낸 깊은 계곡을 따라 보께떼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마을의 규모나 구색만 보면 이곳이 파나마에서 소문난 여행지라는 게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좁은 이차선 도로에 거리 주차로 복잡한 길, 구경할 만한 식당도 상점도 없는 센트로, 걷기도 썩 유쾌하지 않다. 사실 보께떼를 제대로 즐기려면 품삯과 비용이 든다.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몰두해야 한다. 조금 더 비싼 숙소에 묵어도 보고 투어에도 참가해야 한다. 그렇게 중심가를 벗어나 바루 화산의 품으로 파고들수록 숨은 매력을 발견한다.



파나마 시티에서 사는 사람으로서는 그 숨은 게 뭐가 있건 에어컨 공기가 아닌 서늘하고 청량한 산 바람을 쏘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갈수만 있다면 언제든 달려가고 싶다. 보께떼의 중심가가 있는 바호 보께떼 지역은 산중에 들어가지 않아도 이미 해발 고도 1200m에 위치해 있다. 마을 가운데를 물줄기가 가르고, 한쪽 시야엔 3천7백 미터가 훌쩍 넘는 높이의 휴화산이 육중하게 버티고 있다. 천 미터에서 삼백미터에 이르는 고지, 안개비가 멈추지 않는 빽빽한 숲, 흐르는 물줄기. 그 속에 숨은 보석 같은 장소와 땅을 일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구석구석에 있다.  



2년 전 우리는 이곳에 처음 왔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발길을 돌리기 참 아쉬웠다. '날씨가 너무 안 도와줬다, 힘든 휴가를 내서 온 도시 사람에게 날씨가 심술을 부리네'하고 불만을 했다. 지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화산석 돌담에, 알록달록한 색으로 페인트 칠한 가게 간판에, 구름으로 가려지는 절벽에 미련이 들러붙었다. 불만을 부리긴 했어도 이때의 여행에서 우리는 가슴에 멋진 장면을 몇 가지 남겼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우린 해외가 아닌 국내 여행지로 시선을 돌렸다. 거주한 세월은 쌓였지만 파나마는 여전히 매력 있는 외국이었다. 그때의 미련을 수거하러 갈 좋은 타이밍이었다. 우린 지난 여행의 명장면들을 떠올려봤다. 머릿속에 색색의 그림과 이야기가 휙휙 지나갔다. 그중에 가장 우리가 흥분했던 장면과 그 씬의 주인공 이름을 외쳤다. 우리 께짤 보러 가자! 이번 여행의 주인공이 될 녀석이었다.





보께떼와 관련된 이전 글 :

https://brunch.co.kr/@23hees/11

https://brunch.co.kr/@23hees/15









북중미를 매혹시킨 새, 께짤

Resplendent Quetzal



께짤의 전체 이름은 Resplendent Quetzal로 '눈부시게 빛나는 께짤'이라는 뜻이 된다. 이름에 주관적일 수 있는 형용사를 붙였지만, 께짤의 실물을 보면 그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지 않을 것이다. 새의 배의 빨간 털색과 상반되는 몸체의 초록빛 털은 빛과 각도에 따라서 푸른색이 비친다. 특히 화려한 수컷은 머리 볏에서부터 60센치에 달하는 긴 꼬리까지의 초록빛은 빛이 나듯 오묘한 푸른빛의 파동을 일으킨다. 우거진 숲속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꼬리깃이 바람에 살랑거릴 때 깃털의 유려한 움직임은 사람을 매혹하는 것 같다.


충분히 쉬었는지 머물던 나무 가지에서 날아오르는 께짤을 보며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함께 완전히 펼쳐진 그들의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이 찰라의 인상으로 남는다. 드러난 핏빛 붉은 색와 새하얀 엉덩이깃 그리고 이어지는 꼬리깃의 일렁임은 잠시 환상을 일으킨다. 누군가가 께짤을 미대륙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라고 칭송한다면 터무니없는 얘기가 아니다. 특히 그 사람이 이 새들과 함께 산과 숲을 공유한다면 말이다.




Thomas Ledl, wekipediaFeather headdress Moctezuma II, Thomas Ledl, wikipedia

그러니까 콜롬버스가 이닻을 내리기 전, 멕시코와 이남 지역의 문명들에게서(메소아메리카) 께짤이 그들 사회의 심볼 중 하나로 기능했던 것도 이상하지 않다. 께짤은 사람들에게 풍족함과 삶의 상징이 되었다. 아름다운 꼬릿털은 시장에서 귀한 광물보다 더 비싼 값으로 거래됐다. 지도 계급의 의복과 머리 장식을 꾸미는 데 사용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깃털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사냥을 위해 새를 죽일 수 없었다. 께짤을 죽이는 행위는 사형에 처해지는 큰 죄였기 때문에 꼬리털을 뽑고 다시 그들의 집으로 보내주었다.




'께짤코아틀Quetzalcoatl'이라는 신은 이 새와 깊은 관련이 있은 메소아메리카의 주요한 아이콘이다. 멕시카(아즈텍) 언어로 '께짤'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새를, 그리고 '코아틀'은 뱀을 뜻한다. 이 신은 화려한 깃털이 있는 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와 땅 위를 기는 뱀이라는 양단의 요소가 합해진 것처럼 정신적 영역과 한계를 가진 인간적 육체를 이중적으로 표현한다.


메소아메리카에서 께짤코아틀은 수많은 문명이 번성하고 사라진 긴 시간와 너른 공간에서 거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종교적, 정치적 아이콘이다. 또한 (역사학자에 따라서 달리 판별되는 듯하지만) 테오티우아칸에서 식물의 재생에 관련한 신으로, 멕시카 문명에서는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는 신, 이후에는 바람, 예술, 지식의 신이 되었다. 문명마다 신 께짤코아틀이 의미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지만, 맥락은 같아 보인다. 비바람을 몰고와 그들의 땅을 적셔 곡물을 자라게 해주는 신, 큰 틀에서는 삶과 생명 그리고 번영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


멕시코 유적지를 둘러봄다면 이름이 익숙해질 정도로 새 께짤의 현신을 만난다. 더 나아가 현대적으로 재현해 문화에 녹아든 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 테오티우아칸의 께짤코아틀 신전


멕시코시티에서 한시간 반,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은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7세기까지 융성한 메소아메리카의 문명이다. 당시 인구수가 12만명이 넘는 대도시를 이루고 여러 민족과 종교가 공존했다고 알려진다. 위 사진은 테오티우아칸의 케짤코아틀 사원. 외벽 조각에 꽃잎을 뚫고 나오는 듯한 케짤코아틀의 얼굴과 긴 몸체가 보인다. 그 옆의 그리드 무늬의 조각은 바람의 신 혹은 폭풍의 신이라는 설명이 많아보인다. 그나저나 천오백년 전 사람들 눈엔 두 아이콘의 그림체가 너무 달라보이지 않았나?





께짤 이야기에 빠트리면 섭섭해 할 나라가 있다. 바로 과테말라. 과테말라의 국조國鳥가 께짤인 것은 물론이요, 화폐 이름도 케찰이라 불린다. 1 달러는 7.7 케찰.

Billete de 200 Quetzales en Guatemala, Grsnmj12, wikipedia

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데에는 오백년 전의 전설이 바탕에 있다. 스페인이 중미 땅에 힘을 확장하던 시기, 선주민들도 단순히 물러나지는 않았다. 현재 과테말라 땅을 지키던 테쿤 우만은 말을 타고 갑옷을 입은 스페인 정복자와 일곱번의 전투를 치렀다. 전설에 따르면 매 전장에 그의 영적인 새, 케짤이 그와 함께 했다고 한다. 그 마지막 싸움이 있었 날, 기어이 과테말라의 영웅은 가슴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께짤은 쓰러진 그의 가슴에 앉았다. 초록색이던 가슴털은 영웅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 날부터 새의 울음 소리는 멈췄다. 전설에 따르면 그들의 자유를 되찾는 날 다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한다.






(다음 글에 계속)





참고 사이트 :

https://en.wikipedia.org/wiki/Quetzalcoatl

https://www.xataka.com.mx/especiales/quetzalcoatl-mucho-que-serpiente-emplumada-rey-pop-dioses-prehispanicos-mexico

https://www.visitarteotihuacan.com/yacimiento/la-ciudadela-y-el-templo-de-quetzalcoatl/#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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