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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Nov 21. 2022

심장의 소리 듣기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다른 작품인 <왜 인간의 조상이 침팬지인가: 원제는 제3의 침팬지, 1992년 출간>에서 인간이 고릴라와는 2.3%, 침팬지와는 1.6%만 유전자의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만약 외계인 과학자가 인간을 본다면, 망설이지 않고 우리를 제3의 침팬지 종으로 분류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지금처럼 환경파괴와 수많은 동식물 종의 멸종을 계속해서 야기하는 문명을 지속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반대로 인간이 결국 자기 파멸에 이를 현재의 생활방식을 바꾼다면, 인류의 미래가 침팬지보다는 밝을 것이라는 방향 제시를 하고 있다. 인간이 침팬지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이성을 사용하고 지식을 발전시켜온 점이다. 보통 침팬지나 고릴라 등은 본능과 감정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인간의 발달사를 보면, 원래 인간도 수렵생활 시절까지는 고릴라나 침팬지들과 유사한 집단생활을 하면서 주로 감정적인 행동양식을 보였다. 그러나 인간의 인지능력이 크게 성장하면서 언어와 문자가 발명되었고, 동물에는 없는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지성이 발달하였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후로 인간의 포유류 동물적인 감정이 억제되는 문명이 시작되었다. 지식과 지혜가 많은 현자가 존경받기 시작했다. 명언은 넘쳐난다. 현자들의 좋은 말씀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감정의 지배를 받는 몸으로 실천하기가 어렵다. 특히 고대 절대 왕권과 신정정치 시대를 통해 인간의 지성은 물론 감정 표현은 더욱더 위축되었다. 비로소 14~15세기 이후 개화된 르네상스, 인본주의, 계몽주의에 이어 현재의 과학시대에 이르기까지 인간 의식의 저변에는 절대왕권과 중세 신성의 지배로부터 이성의 회복이 강조되었으나, 억압된 감정의 해방에는 관심이 없었다. 과학이 발달하고, 심지어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면, 미숙한 사람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다양성과 상대성을 추구하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감정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감성지수도 개발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인류 문명에 경쟁이 지배하고,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선호되고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은 대우를 받을 수 없다. 단지 그림이나 음악, 시와 문학 등 예술분야가 감정이 발현되는 통로로 활용된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동물적인 감정은 늘 억제의 대상이다. 칼 융이 제시한, 사회적 가치에 어울리게 인간이 쓰는 수많은 페르소나라는 가면도 결국 그때그때 나타나는 개인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사회적 소통 수단인 이성과 지성에 기반한 행동을 하는 결과이다.


폴 맥린이 제시한 삼위일체 뇌(Triune Brain)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파충류의 뇌(본능), 포유류의 뇌(동물적 감정), 영장류의 뇌(이성과 지성)의 3단계로 발전해왔다. 문제는 현재의 인간 사회가 아직도 인간의 뇌를 구성하고 있는 파충류의 뇌(본능)와 포유류의 뇌(감정)적인 요소를 철저히 억제하는 점이다. 영장류의 뇌(이성과 지성)만 일방적이고 지속적으로 발달하다 보니 머리만 커지고 있다. 원래 C자형인 목뼈가 자꾸 고개를 앞으로 숙여서 휴대폰과 컴퓨터를 보다 보니 일자로 펴져서 일자목이 되고 있다. 인간의 본능과 감정이 억제되다 보니, 남는 것은 사회적인 거짓말(<거짓말>이라는 영화도 있었다: 2000년 개봉)의 증가와 개인적 고립감(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 1950년 출간), 외로움, 1인 가구의 증가가 지속되고 있다. 타인에 대한 불신감이 늘어나고, 대면 접촉을 기피하고, 급기야는 비대면 접촉과 가상현실 문화가 강화되고 있다. 스토킹, 어린 자녀나 존속 학대 등의 사건 증가도 인간의 감정 억제 문화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일부 있다.


철학자나 학자들은 뇌를 인간의 이성과 지성의 상징으로 보고, 심장을 인간 감정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리고 물질적 풍요 속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이 외롭고 불행한 이유를 너무나 지성적인 판단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천 년간 억압된 인간의 본능과 감정을 회복해야만 현재 다수의 인간이 겪는 고립감, 우울감, 불신, 불안, 심지어 결혼 회피 등을 극복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늘 감정을 숨기고 매사에 안 그런 척하고 살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 낭비된다. 인간으로서 진지한 삶을 느껴보지 못하고, 매일 무의미한 나날이 회전목마처럼 반복된다. 산에 오르고, 러닝머신 위에서 운동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감정표현을 못해본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지를 모른다. 마치 이상이 <날개>에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고 첫 문장에서 질문하였고 마지막에 날개가 돗기를 염원하는 장면이나, 카프카가 <변신>에서 주인공인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모습은 20세기 초반의 글들이지만, 감정이 억제된 무기력한 인간이 인간 이전의 모습으로 역진화하려는 시도로마저 느껴진다.


감정을 회복하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서 살아야 진정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다. 늘 머리로만 생각하는 습관을 고치고, 자주 심장으로 느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에 한마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보자. 인간이 얼마나 감정이 메마르고 힘들면, 수십 년 전에 나를 알아준 지인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평생 생각이 날까? 부자도, 권력자도 혼자 있으면 늘 외롭다. 외로움을 피하려고 늘 일에 파묻혀 살지만, 억압된 감정의 스토리는 틈만 나면 떼로 몰려온다.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과 지성에만 의존하는 삶은 기형적이다. 뇌에서 심장까지 거리는 15cm라는 멋진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 심장으로 느끼고 심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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