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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인 우주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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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May 13. 2023

노예와 주인의 마음 차이


오래전에 처음으로 외국에 가려고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는 지금처럼 비행기가 많지 않아서, 환송객들이 공항 발코니에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비행기 속에서 책과 영화 속에서만 본 외국의 도시 그리고 외국 사람들이 매우 궁금하였다. 알래스카를 경유하여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한 다음, 대부분의 택시들이 벤츠이며 나를 운전해 준 택시기사는 금발의 젊은 여성이었던 점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후 여러 나라를 방문해 보고 느낀 점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화와 언어 차이가 있지만, 가족과 직업의 틀 속에서 각자 개인의 이익과 안전을 추구하는 면에서 모든 사람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나라나 지역에 따라서 사회경제적 발전 속도에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확실히 우리나라는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하였다. 서양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가진 이미지가 크게 바뀌었고, 이제는 우리나라를 경쟁상대로 생각할 정도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느 나라에 살건  상관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크게 봐서 사람들은 두 가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은 세상이나 환경을 딱딱한 벽돌로 지어진 집처럼 고정된 것으로 여긴다. 즉 주어진 세상이 먼저 존재하고 있고, 나는 나중에 그 세상에 태어났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런 가치관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라는 운동장에 있는 건강, 재화나 직업 등 모든 삶의 대상이 고정되어 있다고 본다. 이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주어진 케이크에서 내 몫을 크게 차지하느냐가 주요 관심사이다. 이런 경우에는 경쟁심이 지배적인 가치관이 될 수밖에 없다. 전체 케이크의 크기 자체를 넓힐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한편, 소수이지만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객관적이고 고정된 세상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자신의 몸을 포함해서 오감에 잡히는 모든 외부의 대상들은 인간의 주관적인 인식에 따라 뇌 속에서 재구성되는 세상으로 본다. 인식과 무관하게 별도로 객관적인 세상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서는 오랜 논쟁이 있다. 노장사상이나 고대 인도의 베다 경전에서는 세상을 꿈이라고 보았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따르면, 우리 눈에 비치는 세상은 하나의 현상일 뿐이며 모든 사물의 본질이자 원인인 이데아의 세계가 별도로 있다고 보았다. 근대 서양 철학의 대가인 칸트는 외부 세계에 물자체라는 객관적인 세상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칸트는 인간 속에 선험적 틀이 있어서 외부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선험적 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 세계>에서 주관적 인식이 객관적 세상을 재구성한다는 칸트 철학의 기본에는 공감하지만, 물자체라는 것은 없고 더 나아가 세상은 결국 나의 아이디어(표상)이며 이는 나의 생에 대한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사람이 어떤 열망과 의지를 가지느냐에 따라 똑같은 외부 세상이 완전하게 다른 세계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디팩 초프라는 <당신이 우주다>에서 의식을 가진 인간의 관찰자적인 역할을 강조하면서 "이 우주는 차갑고 공허한 세상이 아니라 살아있고, 의식하고, 인간의 마음에 반응하는 참여적이고 인간적인 우주"라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현대의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진짜 외부세계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파동이나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람의 오감이 수집한 외부정보가 뇌 속에서 재해석되어 뇌 속에서 3차원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느끼는 물질세계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 속에 있는 홀로그램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떻든 이런 생각들은 고정된 외부세상이 없고 우리의 마음이 이 세상과 우주를 만들어낸다는 주장의 다른 버전들이다. 어떤 철학이 옳고 그르냐를 따질 수 없다. 입증하기가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이 세상을 이미 고정된 물질세계로 보느냐, 아니면 이 세상이 나의 의식(마음, 의지)에 따라 바뀌느냐의 관점 차이로 볼 수 있다. 이 세상을 고정된 무엇으로 보면 내가 변경시킬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그러나 이 세상이 나의 마음에 반응하고 내 의지에 따라 재구성되는 무엇이라면 나는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 나도 이 세상의 발전과 변화에 참여할 역할이 생긴다. 우주와 인생이 매우 복잡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을 주인처럼 바꾸어나갈지 아니면 바꿀 수 없는 세상에서 노예처럼 힘들게 살지가 사람의 관점에 달려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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