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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인 우주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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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May 17. 2023

진정한 의도

언젠가 한적한 시골마을 사이를 오가는 작은 버스를 탄 적이 있다. 가는 길에 정류장이 있었지만 손님이 원하면 대략 모든 곳에서 내려주기도 하고 태워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손님들 대부분이 70세가 넘은 할머니들이었다. 당연히 버스 기사는 나이 든 승객들이 천천히 타고 내릴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버스 출입문 부근에 승하차시 요금을 찍는 단말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필자는 물론 카드로 요금을 계산하였다. 그런데 승객의 대부분이 1,000원짜리 지폐를 버스 기사 옆에 놓인 플라스틱 바구니에 넣었다. 한참 가다가 신기한 구경을 하였다.

할머니 세 사람이 승차를 하였고 먼저 탄 할머니가 미리 세 사람의 버스요금 3,000원을 지폐로 지불하였다. 늦게 버스에 오른 할머니들이 왜 우리 요금을 내주었냐고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한참 지나서 나중에 탄 두 할머니가 먼저 내리려고 하차문으로 다가갔다. 세 사람의 버스비를 모두 내준 할머니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잘 가라고 먼저 내리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 한 할머니가 내리기 직전에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자신들의 두 사람분 버스 요금 2,000권 지폐 2장을 던지다시피 주었다. 그리고 두 할머니는 내렸다. 바로 그 순간 버스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일어서더니 자신의 무릎에 떨어진 천 원짜리 2장을 집어서 황급히 버스 문 밖으로 던졌다. 아마 친구 할머니들에게 버스비를 대신 내준 자신의 아량이 이렇게 끝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돈을 버스문 밖 도로에 던질 정도의 무례함을 동원해서라도. 갑작스러운 상황을 목격한 버스 안의 나머지 승객들도 이제는 이미 내린 두 할머니들도 포기할 것이라 믿었다. 버스는 곧 문을 닫고 출발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알았을까? 신의 한 수가 나타났다. 길에 던져진 지폐 두장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버스에서 내린 할머니 중 한 사람이 지폐를 날쌔게 낚아채서 다시 버스 안으로 힘껏 돼 던졌다. 닫히고 있는 버스 문의 틈새를 지나 두 장의 지폐가 분산되지고 않고 극적으로 정확하게 앉아있는 할머니 의자 옆에 동시에 떨어졌다. 이윽고 버스 문이 완전히 닺혔고 버스에 앉아있던 할머니는 돈을 주워들을 수밖에 없었다.

지폐 두 장을 성공적으로 돌려준 버스 밖 할머니의 얼굴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분명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형식적으로 돈을 돌려줄 마음이 아니었음을 우주가 알아주었다고. 지극한 정성은 두 장의 지폐가 바람에 날려 흩어지지도 않고 마치 두 개의 동전처럼 정확하게 의도한 위치에 떨어졌다. 보통 사람들이 '우리 언제 식사 한 번 합시다'라고 말하면, 그냥 인사말이다. 구체적으로 언제 하자고 해야 진정한 의도가 담긴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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