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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인 우주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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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May 23. 2023

솔직한 인간 이해

진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정말로 알고 싶은 사람은 적다. 아파트 앞집이나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인생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고 싶을까? 인간의 뇌는 편리하게도 분업의 방식으로 발전해 온 것 같다. 뇌 속에서 여러 프로그램이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철학을 하는 부분이 있고, 그냥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부분이 있다. 종교생활을 하는 부분이 있고, 그냥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부분이 있다. 하나의 프로그램에 따라 살다가 잠시 후에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만약 이렇게 나누어진 뇌의 기능이 없다면, 사람은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신과 우주, 영혼과 사후세계,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누구나 알고 싶다. 그러나 그런 주제들은 어떤 시기나 필요할 때만 탐구된다. 보통 때는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나의 이익을 지킬지에 온 관심이 집중된다. 만약 24시간 영적인 문제를 생각한다면, 직장에서 일하기도 사회생활을 영위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완전, 진실, 고결, 일관성 등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영어 단어가 integrity이다. 우리말로는 적절한 단어가 없다. 어떤 목표나 가치관이 있다면 그것을 반드시 지키는 것이 integrity이다. 필요할 때만 지키는 것은 가치관이라고 할 수 없다. 흔히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integrity가 강하다고 한다. 문제는 인간의 심각성이나 진지함마저 분할되어 있는 점이다. 신과 영원을 찾을 때는 매우 심각하다. 그러나 동시에 같은 사람이 더 큰 케이크 조각을 잡으려고 할 때도 매우 진지하다. 순간순간 어떤 상황이나 주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바뀔 뿐이다. 조금 전 상황과 전혀 반대되는 행동을 해도, 현재의 상황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조금 전 상황을 다루는 프로그램과 별개이다. 두 개의 다른 가치관을 가진 프로그램들이 임무를 교대한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에서 굶어 죽어가는 삐쩍 마른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볼 때는 눈물을 글썽 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사람이 잠시 후에 맛있게 보이는 치킨 광고를 볼 때, 입에서 침이 고인다. 바로 몇 초 전에 보았던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모습은 이미 머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율배반적이라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아픔을 바라보는 뇌의 패턴과 맛있는 음식을 보고 먹으려는 뇌의 패턴은 다르며 각자 독립적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엄청나게 화가 나다가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두 개의 다른 프로그램이 엉키었기 때문이다. 말하고 싶은 점은 인간은 뇌는 매우 편리한 장치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금도 거리낌 없이 쉽게 거짓말도 할 수 있고, 표정을 감출 수도 있다. 간혹 양심에 찔리거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다니 하면서 자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동 패턴 변화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하나의 판단 패턴에서 다른 패턴으로 변하는 것은 마치 잠에서 깨면 꿈이 잊히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꿈속에서 행동에 대해 양심적으로 후회하지는 안는다. 마찬가지로 낮시간 동안에도 뇌의 판단 부분이 바뀌면 조금 전 다른 상황에서의 판단은 잊혀 버린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은 살 수가 없을 것이다. 24시간 내내 후회를 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처럼 전혀 다른 다양한 인격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예외적인 다중인격자라고 부른다. 사람은 누구나 다중인격자이다. 외부 사람에게는 친절하지만 자신의 가족에게 불친절하면 다중인격자이다. 상황에 따라 판단 프로그램 패턴이 바뀌면서 망각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자신이 다중인격자라는 사실마저 잊는다. 잠이 들면 낮 동안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보통 같은 프로그램 작동 시 일은 기억하지만, 다른 프로그램 작동 시 일은 기억 못 한다. 다시 그 프로그램에 연결되어야만 기억할 수 있다. 마치 정전이 된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사람은 낮동안 여러 가지 꿈을 꾸면서 자는 것과 같다. 자신은 피가 나는 스테이크를 먹었으면서, 잠시 후에 프로그램이 바뀌면 피가 묻은 사냥감을 먹고 있는 야생동물을 잔인하다고 평가한다. 아무리 인간은 평등하다고 배우고 깨달아도, 상황이 바뀌면 언제나 남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 연애시절에는 상대방에게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잠시 흐르면 그러한 사랑의 대상이었던 사람을 원수처럼 여긴다. 그때그때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사람에게는 언제나 일관성을 가지고 판단하는 단일한 패턴은 없다. 그래서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 되라고 충고를 한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구조상 어렵다.


사실 내로남불이란 것도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다만 유명한 사람들의 경우가 드러날 뿐이다. "네 눈에서 들보를 먼저 꺼낸 다음에 친구의 눈에서 티를 빼주어라"라는 말씀도 비슷한 지적이다. 자신을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바뀐다. 판단프로그램이 엉키면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주변 사람을 미워하기도 했다가 좋아하기도 한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에서 사람의 이런 특성을 이상한 혼합(strange mixture)이라고 말한다. 가끔은 내가 스스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지(to live), 아니면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살아가지는지(to be lived)도 모르겠다. 인간의 이런 기본적인 속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안 그런 척하고 살면, 그것이야말로 가짜 인생이다. 늘 좋은 말만 하고 살 수는 없다. 그러면 뇌 속에서 비난과 질투를 담당하는 부분이 두통을 일으킨다. 그래서 적절한 중용이 중요하다. 적절하게 인간적으로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원래 깨끗한 물이 아니고 탁한 호수이다. 변화무쌍한 마음을 조금씩 헤쳐 나가야 한다. 최소한 남을 해롭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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