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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인 우주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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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May 26. 2023

자립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다. 인정받을 것이 없다면, 최소한 이해라도 받고 싶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89년 냉전이 종식되는 것을 계기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대결의 역사에서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다"라는 주장을 <역사의 종언>에서 제시했다. 또한 그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 전쟁을 시작하는 이유로 경제적 영토적 이익도 중요하지만 자국의 명예유지가 커다란 전쟁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국가도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면 전쟁이라는 수단을 사용해서 명예를 회복하고자 한다. 중국의 역사가들은 아편전쟁 당시의 치욕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개인도 자신이 인정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자신이 중요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어 한다. 어쩌면 그러한 심적 욕구가 인간의 생존 방향에 제일 큰 요소일 수 있다. 사람이 늘 옷을 단정하고 멋있게 입는 이유도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은 이유가 크다. 로버트 시알디니도 <설득의 심리학, Influence>에서 사람이 옷을 멋지게 차려입으면 어디서나 대접을 받는다고 말한다.

물론 세상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무언가 남보다 특출하고 업적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인정은 못 받아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매우 중요하다. 친구나 애인을 찾을 때도 상대가 나를 어느 정도 이해해 주는지가 크게 작용한다. 사실 주변 사람들과 다투거나 싸울 때 그 주된 이유가 서로 이해받지 못한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수시로 "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돼"라는 말을 내뱉는다. 그러나 누구라도 상대의 상황을 정확히 모른다면 그 사람을 100% 이해해 주기는 어렵다. 병원에 가서도 의사에게 환자가 병과 관련된 정보를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으면 의사도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어렵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이해받고 싶다면, 현재 나의 상황과 내가 원하는 점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막연한 암시만 주고 상대가 나를 완전하게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인생은 어차피 상호작용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출하지 않으면 남보다도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세하게 말하기를 주저한다. 그저 가족이니까 친구이니까 애인이니까 일방적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특히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가까운 사람들이 이해심을 표시해 주기보다는 무관심하게 대할 때 느끼는 상실감은 상당히 크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내 문제를 주변 사람에게 모두 말하고 듣는 사람의 이해를 구해본다. 아니면 처음부터 누구에게도 이해심을 구하지 말고, 홀로 모든 문제를 개척해 나간다.

정원에 핀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을 아름답게 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언제나 고고하게 피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숲 속이나 벌판에 핀 야생화는 누구의 관심도 바라지 않고 홀로 피어나고 홀로 사라진다. 애당초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해 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나를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나 공손한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잘 생각해 보면, 따뜻한 배려의 말을 듣기가 매우 어렵다. 오죽하면 수십 년 전에 선생님이나 아는 사람이 해준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렇게 그리운지 모른다. 나도 자라나는 아이들이나 가족들, 그리고 회사 동료들에게 상대를 배려하면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잘 건네지 못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참으로 인간은 이기적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존재는 나 자신이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렇다. 모든 면에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나에게 아픔이 있고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나 스스로 그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남의 문제를 도와줄 때처럼 나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풀어 나가면 된다.

우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의타심을 버려야 한다. 내 스스로 두 발로 서는 자립정신을 키워야 한다. 19세기 초반 미국의 독자적인 사회 체제가 마련될 시기에 랠프 왈도 에머슨은 <자립, Self-reliance>에서 "개인의 삶에서 과감하게 독립성을 추구하여 자유를 누릴 자격을 갖추라"라고 하였다. 그는 또한 각 개인이 자신만의 독특한 자아실현 수단을 추구해야만 자립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21세기 현대 문명은 개인을 집단 네트워크에 가두어두려고 한다. 개인이 스스로 판단하고 자립을 통해 새로운 문명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줄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나 먼저 스스로 일어서야만 남과 소통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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