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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인 우주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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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May 31. 2023

내려놓기


사람이 어느 정도의 나이를 먹다 보면, 이 세상에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직업이나 직장도 젊어서는 무엇이든 할 것 같지만, 세월과 함께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절감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힘든 성인 세계를 경험한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 결혼을 하면 돌봐야 할 가족과 가사가 생겨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주변의 사람들과 관계를 관리해야 한다. 몸은 성인이 되었지만 어른 노릇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하루하루 매일 처음 겪어보는 어설픈 어른 역할을 하다가, 보통 40세가 지나면서 몸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어린 시절에 서커스에서 여러 개의 작은 공이나 곤봉을 두 손으로 동시에 다루며 저글링을 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난다. 어쩌면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면서 누구에게나 여러 개의 공이 동시에 주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두 손으로 모든 공을 잡을 수가 없고, 계속해서 공들이 땅에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다시 공을 주어서 새롭게 던지고 잡아 보려고 한다. 그때부터 인생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힘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생은 고해의 바다라거나, 엉망진창이란 말도 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뭔가 다른 존재나 다른 힘에 의지하게 된다. 철학책, 심리학책, 그리고 자기 계발서를 읽어본다. 어떤 사람은 명상도 하고 마인드컨트롤도 배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에 의지하거나 멘토를 찾아 나선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결국은 산의 정상에서 만나게 된다. 산의 정상에 도달하면 더 이상 나무도 없고 바위도 없다. 하늘 속에 안긴다. 히말라야산의 최고봉에 오르거나 깊은 낭떠러지 끝에서 서 있다는 것은 작은 몸뚱이를 가진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점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고,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이때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은 무릎을 꿇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인간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지고의 존재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시몬 베유는 <중력과 은총>에서, "이 세상의 깊은 골짜기가 중력의 힘으로 나를 밑으로 끌어내리려 할 때 천상에서 은총의 힘으로 나를 위로 끌어올려 준다"라고 비유한다. 어떤 신적인 존재에게 나를 모두 맡길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문제는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누구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 논다고 해도 아주 작은 어떤 것은 계속 간직하고 싶다. 99%를 내려놔도 1%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 0.1%만 내려놓지 않아도 완전한 포기에서 오는 은총을 경험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암환자가 창조주가 나의 암을 완치시켜 주리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의심한다면 치료가 어려울 수 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완전하게 내려놓음을 종교에서는 믿음이라고 말하고 일반 삶에서는 확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상태가 완전하게 내려놓은 상태인지를 알기 어렵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순간에 잠시나마 신적인 힘과 은총을 경험할 때가 있다. 아차 하면 지나가는 자동차에 부딪치거나, 순간의 실수로 빗길에서 미끄러져 죽을 수도 있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순간들이 신의 은총의 순간들이었다. 그 순간을 바로 잡아야만, 더 큰 은총을 경험할 수 있고 인간적인 한계를 인정할 수 있다.

아쉽게도 사람들은 그런 귀한 은총의 순간들을 쉽게 망각한다. 신이 먼저 우리에게 부여한 은총의 순간들을 100% 인식할 수 있어야만, 신적인 사랑을 느끼게 되고 동시에 인간의 나약함을 절감하게 된다. 그래야만 세상이 힘들 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 아무리 기도를 하고 아무리 염원을 해도, 조금이라도 창조주의 사랑과 은총을 기억하지 못하면 그런 희망은 이루어지기가 힘들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창조주가 우리에게 부여한 수많은 은총의 순간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잘 생각해 보면, 수많은 죽을 고비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런 순간적인 경험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인간적인 지혜로 해결하려고 한다. 영적인 감수성을 기르면, 오늘 하루에도 수많은 고비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각종 사고나 질병으로부터 보호되고 있기 때문에 오늘도 내가 살아가는 사실을 느껴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세상을 사는 데는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하나는 마치 어떤 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으로 여기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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