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를 Jun 02. 2020

주변에 가정폭력 피해자가 있다면

콜미바이유어네임

“콜미바이유어네임.”



누군가가 나를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상상해본다. 살면서 과연 그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아주 간단하게 가능해지는 방법이 없진 않다. 자식이 생긴다면. 실제로 어릴 적 내가 다니던 유치원 엄마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아주 또렷하고도 묘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엄마들끼리 서로를 아들딸들의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정훈아, 문호야, 채원아. 정훈 엄마, 문호 엄마, 채원 엄마도 아니고 그냥 정훈아, 문호야, 채원아. 영남 지방 문화권의 특수성일까? 성인이 된 뒤 다른 누군가와 서로 확인해본 적은 없어 모르겠다. 다만 자식들을 기점으로 생겨난 모임이니 자식의 이름으로 그 구성원 개개인을 구분하는 게 무엇보다 편리하고, 뒤에 붙는 ‘엄마’까지는 공통된 것이므로 귀찮아 생략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 엄마를 포함한 다른 엄마들 누구도 내 딸, 내 아들 이름으로 불리는 데 서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면 엄마들 스스로가 이미 내 정체성을 내 딸, 내 아들과 동일시했던 걸 수도 있다.



어제 낮에 고향에 있는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엄마의 여고 동창이자 평생의 가장 친한 친구가 지금 여행 가방에 짐을 싸서 엄마 집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나도 잘 아는 ‘미준이’ 아줌마다. 아줌마의 남편인 안 씨는 특이한 형태의 알코올 중독자다. 술을 반드시 혼자 집 안에서만 자시기 때문에, 아줌마는 평생을 매일 같이 안주상을 차리고 취한 이와 말동무 독대를 해야 했다. 엄마를 통해 마지막으로 전해들은 소식에 따르면, 술에 취해 아줌마의 핸드폰을 집어 던진 것이 최근 들어 세 번이라고 했다. 엄마가 어제 느닷없이 친구를 집으로 맞을 준비를 하게 된 건, 이들의 자식 셋 중 하나인 장성한 딸 혜주가 지긋지긋한 집을 나서겠다고 독립을 선언하자 그 아버지의 분노가 집 안에서 ‘4차전(?)’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식칼이 등장했다고 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엄마한테 다시 연락이 왔고, 엄마 집으로 오던 아줌마가 당분간 가까운 기도원에 들어가 있기로 마음을 바꿨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그것이 어제의 일단락이었다.



넷플릭스의 ‘더티존(Dirty John)’이라는 오리지널 시리즈는 동명의 팟캐스트를 원작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팟캐스트는 미국에서 한 여성이 양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을 LA타임즈 기자가 취재해 발표한 내용인데, 여기에 가정폭력에 대해 이런 말이 나온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지인이 있다면 ‘당장 그 집에서 나와라, 왜 그러고 사냐, 너도 참 답답하다’ 따위의 말보다, 연락을 끊지 않고 그저 계속 주변에 있어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피해자에게 소외와 단절은 곧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독자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평소에 가해자에게 심어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가까이에 머물러 있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 기회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엄마의 기억에 의하면 미준이 아줌마는 여고 시절 전교 1등을 도맡아 했다. 대학 졸업 후엔 전공인 노어노문학을 살려 러시아 유학을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줌마의 이름은, 혜주도, 혜주 엄마도 아닌, ‘미준’이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다행이다.

이전 10화 더비이스트로, 사라진 식당을 추억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