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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은 Oct 21. 2020

"저기 어딘가 내 꽃이 있어"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순수하고 엉뚱한 사람은 매력적이다. 타인의 말이나 시선에 자신의 말과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 자신의 눈으로 오롯이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은 독특하고 타협할 수 없는 자신만의 빛나는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어린왕자와 마찬가지로, 숫자와 소유에 대한 탐욕과 명예와 명령을 위해 굴종하는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사람의 순수한 눈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알면서도, 동시에 그런 눈을 마주하는 일을 늘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 눈에 거울처럼 비춰질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것이다. 마치 어린왕자의 순수한 말에 감격하는 동시에 일일이 상처받는 것처럼.


어느 날 학원 수업 중의 일이었다. 이제 막 열넷이 된 앳된 남학생은 맨 앞자리에서 지루함이 반쯤 물든 불퉁한 턱을 괴고 있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상반신을 불쑥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동글동글한 눈이 평소의 녀석처럼 장난기로 데굴거리지 않고 왠일인지 똑바로 투명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가 무섭도록 새카맸다.


"선생님, 행복하세요?"

"응?"  

"지금 행복하시냐구요."


녀석은 그저 날 상대로 잠깐 놀고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막 어른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열넷 사내아이의 위력인 걸까. 나는 잠시 가슴이 멎었다. 뻐근한 아픔같은 것이 밀려왔다. 그 애는 내가 중요한 뭔가를 잃어버린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도 몰랐다. 반복적인 수업에 내 목소리가 때때로 멀리서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던 시기였다. 나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허둥대며 대충 "당연히 행복하지."쯤으로 얼버무렸던가. 그 때야말로 나는, 관성에 젖은 기름투성이의 손으로 비행기를 수리하다가 똑바로 화를 낼 줄 아는 어린왕자와 마주해버린 비행사의 황망한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자신의 별을 잃고, 쓸쓸한 사람들의 세계를 헤매는


우리는 누구나 어릴 때 자신의 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영역을 수많은 크고 작은 적들로부터 홀로 지켜내는 것이 버겁고 두려워 어느새 많은 씨앗들이 날아와 싹트는 것을 내버려 둔 채 어른이 된다. 바오밥나무 씨앗 같은 폭력적인 강요의 순간과, 장미의 씨앗 같은 달콤하고 유혹적인 순간에 휩쓸리면서. 그것들은 돌봐지지 않는 동안 제 멋대로 싹을 틔우거나 뿌리를 내리거나 하면서 많은 꿈과 가능성들을 앗아간다. 웃자란 헛된 희망들을 스스로의 손으로 뽑아낼 즈음엔 이미 우리의 별은 황폐해져 있다.


그렇게 우리의 별을 잃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순수로 돌아갈 수 없는 세계에 망명하듯이 살아가야 하고, 그것을 우리는 ‘어른의 세계’라고 부른다. 어른의 세계는 "나는 중요한 사람이야" 혹은 "중요한 사람이 될 거야"라는 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하지만 정작 주변의 누구 한 사람에게도 제대로 중요한 사람이 되어주지 못하는, 그야말로 쓸쓸한 사람들의 세계다.


어린왕자는 여행하는 내내 잃어버린 것들을 그리워한다. 아직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은 돌아가는 길을 잊지 않아서다. 나는 자신의 별을 떠나 온 그가 새로운 것은 보며 겪은 기쁨보다는 새삼 깨달아야 했던 그리움과 아픔에 뜨겁게 공감했다. 새로운 것들을 만날 때마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 두고 온 고향별과 장미꽃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를 깨달아 갔다. 만약 내가 책에 그려져 있지 않은 삽화를 추가할 수 있다면 어린왕자의 화가 난, 그러나 눈물로 얼룩져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얼굴을 그리고 싶다.


어느 날 비행사 '나'에게 어린왕자는 "가시가 있는 장미도 양에게 먹힐까" 하고 묻는다. ‘나’가 진지한 어린왕자에게 “꽃의 가시는 쓸모없는 심술일 뿐”이라고 아무렇게나 말해버렸고, 어린왕자는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화를 낸다. “내 별 외에는 어디에도 없는, 이 세상에 단 한 송이밖에 없는 꽃”이 가시를 만들어 양과 싸우는 일이, “어느 날 아침 조그만 양이 멋모르고 단숨에 그 꽃을 먹어치울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나에게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있느냐고.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 별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할 거라고 말한다.


'저기 어딘가 내 꽃이 있어.'


눈을 감고 그 문장을 소리내어 읊조릴 때, 어둠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임이 분명하겠지. 그저 깜깜할 뿐인 나는 그 녀석에게 솔직히 말했어야 했다. 아, 그래. 솔직히 지금은, 행복이 조금 부족해.


상대를 위해 소비하는 시간들이 모두 나의 기쁨이 될 때


사랑하고 아끼는 것들을 지켜낸다는 것은 그들의 곁에서 꾸준히 그들을 이해하는 일인 동시에 그들에게 나를 꾸준히 이해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 일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관계는 그저 지리하고 힘든 인내의 반복일 뿐이리라. 장미의 곁을 떠난 어린왕자는 뒤늦게 자신이 잃은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이 두고 온 그 기나긴 인내의 시간에는 바오밥나무 싹을 뽑아내고, 화산을 청소하는 것처럼 매일 반복적으로 참기 힘든 순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장미를 위해 물을 주고 유리덮개를 씌우는 사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가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떠올리는 때야말로,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존재였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너를 위해 쓰는 시간들이 귀찮음이나 억울함으로 변하기 전에, 내게 그것이 실은 얼마나 벅차고 설레는 기쁨이었는지를.  


나의 장미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소유욕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장미에게 나를 소유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단지 즐기고만 싶어서가 아니라, 바람이 불고, 벌레가 앉고, 흙이 마를 때, 그 순간 함께 바람막이가 돼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목을 축여주고... 침묵하고 싶을 때, 침묵을 견뎌주는 존재가 기꺼이 되어주고 싶은 것이다.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상대를 위해 소비하는 모든 순간들이 오히려 모두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임을 깨닫는 것이니까.


고된 하루 일을 끝마치고, 창밖에 수놓인 도시의 야경을 물끄러미 보면서 말해보고 싶어진다.

"저기 어딘가 꽃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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