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89 #4 : Portland
아침 일찍 다시 22kg의 캐리어를 달달 끌고 시애틀 기차역에 도착했다. Amtrak 기차를 타고 시애틀에서 포틀랜드로 넘어가는 데는 4시간이 조금 안걸린다. 안개가 껴 창문 밖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진이 빠져 아쉬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약 10일간 3차례 도시를 이동하고 매일 몇시간씩 걸으며 많은 변화와 인풋을 겪은 터일 것이다.
좌석에 몸을 기댄 채 멍 때리다 생각에 잠겼다. 계획형임에도 불구하고 시애틀에서 계획하지 않기로 계획했었지만, 여러 철칙들이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다. 1. 늦으면 안돼(교통, 도슨트 투어 등) 2. 일찍 들어가야 해 3. 잘 챙겨 먹어야 해 4. 위험한 곳은 피해야 해 5.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해 등등. 낯선 땅의 단타 여행은 흥미롭고 새로운만큼 긴장의 연속이기도 했다.
마침 포틀랜드에선 약속된 투어가 없었다. 3박 4일중 미리 생각해둔 장소는 서점(파웰스 북스)과 도서관(멀트노마 카운티 중앙 도서관)뿐이었다. 이 외에는 더 욕심내지 않고 한 템포 쉬어가기로 했다.
앞선 도서관 여행기에서 포틀랜드의 풍경을 묘사한 바 있다. 곳곳의 책을 읽는 사람들, 도로를 거니는 것 만으로 볼 거리가 넘치는 곳. 책과 함께 쉬어가기에 제격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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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는 색깔이 다채롭고 특유의 아기자기한 감성이 있다. 풍경이 예뻐서 카페나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트램과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방울처럼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트램 차임(Chime)이 힐링이 되었다.
서점과 도서관 외에는 거리를 계속 걸었는데 불쑥불쑥 고양이 동상들이 튀어나왔다. 코렐라인의 호기심 많은 고양이 트레일(Coraline's Curious Cat Trail)이다. 2024년 8월 2일부터 10월 13일까지 오리건주에서 진행된 임시 예술 설치물이라고 한다. 덕분에 돌아다니며 마치 도장깨기를 하는 듯한 재미를 붙여볼 수 있었다.
벽화는 로스앤젤레스 Arts District의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LA가 강렬하고 화려한 느낌이었다면, 포틀랜드는 소박하고 친근한 감성이 묻어났다.
영혼 가꿈 여행을 하며 제일 기분이 좋을 때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형상의 새를 마주할 때다. 나의 프로필 이미지이기도 하거니와, 이번 여정을 통해 얻고 싶은 것들을 새로 표현했었기때문에 이 때만큼은 우주가 나를 응원하는 것만 같다. 이번 새는 나비와 꽃과 베리도 함께 있다. 고마워.
푸드 카트에서 끼니를 떼우려는데 사진을 또 열심히 찍고 있자 앞자리에 앉은 시민이 대화를 걸어왔다. 정말이지 공격성 Zero(0)의 여행객 티가 많이 나나보다. 그분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넘어온지 4년이 좀 넘었는데 포틀랜드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세금 혜택(Sales Tax가 없다)과 여유로운 분위기,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진 도시 풍경을 꼽았다. 자연이라니? 지금껏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연을 느껴본적은 없었는데. 사진들을 꺼내어보니 신기하게도 울창한 나무들이 배경 곳곳에 심어져있었다. 통이 두꺼운 나무가 많다는 사실도 그제야 알았다.
마지막으로 포틀랜드 뚜벅이 여행 계획이라면 관광안내소(Visitor Center)를 미리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비닐이 터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종이백을 구하려고 들어갔다가(심지어 있다) 한국어로 된 여행 책자와 무료 엽서 및 스티커를 건내받고 궁금한 곳을 손수 지도에 표시해주는 친절한 서비스까지 누렸다. 실내는 테이블과 좌석이 마련되어 있어 마음껏 쉬다 갈 수 있다.
포틀랜드 국제공항은 공사중이다. 샌프란시스코로 넘어갈땐 최근 완공된 메인 터미널을 구경할 수 있었다. 목조 인테리어와 어우러진 나무들이 보였다. 포틀랜드 시민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기자기한 벽화도 보였다. 포틀랜드답다. 그리고 멋지게 단장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할아버지, 가족이 서로 만나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란히 게임을 하는 아이들, 아버지와 서먹한 아들의 모습 또한 보였다.
내가 언제부터 사람들을 이토록 관찰했던가. 언제부터 나무의 생김새를 보았던가. 여행 중에는 못느꼈지만 이번 쉬어가는 여정 이후 풍경을 바라보는 시야가 좀 더 넓어졌던것 같다.
본 포스트는 2024년에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