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89 #5 : San Francisco
♫ Tonny Bennett -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SFO 터미널을 나오니 드센 바람이 불었다. 맑은 공기의 청량한 내음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는 반듯한 차림으로 랩탑을 두드리며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유독 많아보였다. 작업용 테이블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출장 혹은 실리콘밸리 직장인이겠거니 짐작해보며 지금까지 거쳐온 미서부 공항과는 또 다른 분위기에 금새 젖어들었다. 낯설지 않은 느낌.
친척에게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할 예정이라 알렸을때 위험하니 조심하라며 신신당부 받았던 기억이 있다. 코로나 이후 몰락의 도시로 소문이 자자해지지 않았던가. 하지만 푸르른 하늘과 파스텔톤의 건물들을 끼고 열심히 조깅하는 사람들, 유유한 해변가의 풍경은 외부에 겉도는 소문과는 다소 이질적이었다. 다운타운 일부 구역에서 공격적인 홈리스를 목격하고 잠시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었지만 그 빈도는 로스앤젤레스보다 드물었다. 왜인지 나중에 알고보니 방문한 주간에 Salesforce가 주최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컨퍼런스로 도시 전반의 정화와 치안 강화가 일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공항의 분위기도 그 이유때문이었을까? 운이 좋았다.
샌프란시스코 역시 3박 4일의 여정이다. 이동하는 날을 제외한 이틀 동안 하루는 실외를, 하루는 실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여러 관광지와 거리를 거닐다보니 집중과 분산을 구분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일관된 감성을 끌어가기에 좋았다는 결론이었다. 예를 들어 포틀랜드 서점에 장시간 머물렀던 날은 바깥을 구경해도 서점에서의 잔상이 남아있었다.
출국 전, 흉흉한 이야기에 겁을 먹곤 반나절 투어를 신청했었다. 가이드님은 공포심을 조장하는 뉴스 등으로 소문이 과하게 부풀려졌다며 안심시켰다. 아침 일찍 Christmas Tree Point에서 도시 정경을 감상하고 이른 오후까지 6곳의 랜드마크를 둘러봤다. 그 중 몇곳은 아쉬움이 남아 해산 후 뚜벅이모드로 다시 방문하였다.
안과 밖 [1] 부두 위의 바다사자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여긴 내 자리야!" 고개를 세워들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두 밖으로 밀치는 장면이 끊이질 않았다. 살벌한 현장 주위로 갈매기들이 푸덕이며 둥둥 헤엄친다. 관광객들은 바닷바람을 쐬며 부두막에 모인 바다사자떼를 평온히 관람하고 무대에 오른 당사자들은 치열한 자리 쟁탈을 벌이는 어질어질한 광경이다.
피셔맨스 와프(Fishermans Wharf)에서 한 버스커가 Soul 89 프로젝트 시그니처송을 노래했다. 응원이 되었다. 여행을 프로젝트로 만들면 특별한 순간들이 생긴다.
안과 밖 [2]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방문했을땐 안개가 꼈다. 보통 오전에 안개가 더 잦고 짙은 편이라 한다. 다리가 무엇이 특별할까. 기대를 안했었지만 막상 가까이서 보니 웅장한 규모와 바다 위에 견고하게 솟은 디자인, 붉은 다리에 걸친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차들이 절경이었다. 혁신적이었던 건축의 역사가 그 기운을 더해주는듯 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다리 위를 걷는 것은 위험해보였다. 가이드님은 이곳에서 1달에 평균 2명이 뛰어내리며 85프로가 40대 중반 백인 남자라고 전해주었다. 백인 남자라 함은 부유하거나 최소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중산층을 의미한다. 공포를 삼킬만큼 그들의 영혼을 잠식한 건 무엇이었을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진부한 말이지만 부는 삶의 의미가 될 수 없다.
안과 밖 [3] 투어 후 숙소에 편히 바래다주겠다는 걸 사양하고 가장 오래 머물렀던 팰리스 오브 파인아트(Palace of Fine Arts Theatre). 한 버스커가 바이올린으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궁 안에 울려퍼지는 소리가 예술이었다. 상상을 해보자. 나는 지금 바람에 흔들 거리는 꽃과 나무를 지나 녹음 진 궁 안에 들어간다. 어디선가 들려오던 선율이 점차 선명해지고 중심부에 들어서자 둥근 천장 아래로 현의 노래가 공명한다. 바깥은 빛이 일렁이는 물결에 눈이 부시고 새들이 떠다니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은 그늘 진 허와 음악이 흐르는 시간 속에 멈춰 있다.
Pier 39가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호기심을 못이겨 페리 빌딩(Ferry Building)이 있는 Pier 1부터 Pier 45까지 내리 걸었고(Pier 39가 랜드마크인 이유가 있다) 숙소 근처였던 롬바드 가(Lombard St)에서 노을을 감상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시애틀보다 언덕길이 많았는데 어느덧 단련이 되어 크게 힘들진 않았다. 배가 고팠을 뿐.
안과 밖 [4] 점심때였다. 식사 예약을 미리 받았고 간단한 메뉴를 선택한 일행들과 달리 비싼 정식을 시켰다. 그동안 시장이나 길거리 음식 위주로만 먹었지, 레스토랑에서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어볼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홀로 여유를 만끽하며 먹방할 생각에 기대감에 부풀었는데 일행 한 분이 같이 손을 들었다. 그렇게 나홀로 여행객끼리 나란히 앉아 먹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어린 친구는 원하던 직장에 합격해 자신이 번 돈으로 처음 여행을 나왔다고 했다. 풋풋함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난 이 나이때 어디로 여행을 갔던가? 들뜬 마음으로 추천 여행지를 묻는 그에게 생의 1막을 정리하고 쉼을 구하는 나는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여행의 목적이 뭔데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런 깊이를 원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그래도 열심히 추천은 해줬던 것 같다). 계산대를 향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행의 모습을 보며 내가 그 사이 미국 문화에 조금씩 적응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본래 긴 투어가 예정된 그룹에 반나절반 합류했기에 중간에 하차했다.
3박 4일의 마지막 날에는 요세미티로 출발하기 위해 아침 일찍 유니온 스퀘어 광장으로 향했다. 마주 보는 새와 박쥐가 그려진 패인팅, 달달한 도넛 데코의 하트 동상이 보였다. 우연히 발견한 이 동상은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적인 설치물로 매번 데코레이션이 달라진다고 한다.
오전은 도서관, 오후엔 현대미술관(SFMOMA)을 방문했다. 도서관 방문기는 따로 글을 올렸다. 두 곳 모두 입구에 들어섰을때 돔 형식의 건축 구조가 돋보였다. 역시, 실내 탐방으로 일정을 짜니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내면에 몰입하게 된다.
안과 밖 [5] 뒤집힌 새가 보였다.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는 종종 주제를 전복하거나 비틀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독일 출신 작가라고 한다. 2차 세계 대전의 고통과 파괴 속에서 자란 그는 질서를 재건하는 대신 일반적인 인식의 관습을 깨뜨리고자 했다. 바젤리츠가 제시한 시각은 단순했다. 관점의 전환. 새로운 가치는 인간 스스로가 창조하는 것이다.
What does not destroy me, makes me stronger.
같은 맥락으로 철학가 프리드리히 니체에 따르면 나를 파괴하지 않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바깥의 사실은 모두에게 똑같이 일어나지만 진실은 각기 다른 내면에 존재한다. 바젤리츠의 철학이나 니체 사상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내가 맞닥뜨린 진실조차 이른 아침의 금문교처럼 안개가 자욱할땐 내 눈에 무엇이 끼었노라고 장님처럼 행새하는 사실을 발견한다. 오후에 걷히는 안개를 기다리지 못하고.
본 포스트는 2024년에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