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동력'은 어디서 오는가

Soul 89 #6 : Yosemite National Park

by 라라가뎅

안식이 필요할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도시보다는 자연으로 향한다. 자연은 스스로 회복하며 묵묵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치유의 성질이 있다. 실제로 자연환경의 경험이 뇌 활동의 안정화와 심리적 회복력을 증가시킨다는 결과가 여러 연구들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그런데 논문과 증명이 뭔들 중요하겠는가. 인간이 자연을 갈구하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습성은 본능에 가깝다. 서두가 거창했는데 나는 등산과 자연 속 트레킹을 좋아한다. 그래서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 투어를 가게 됐다.

9월의 가느다란 폭포
물놀이와 풍경을 즐기는 관광객들

Grand Circle VS Yosemite

같은 9월이어도 그랜드 서클(Grand Circle = 미국 남서부 지역 국립공원 및 자연 경관)과 요세미티 두 곳의 경험은 확연히 달랐다.

그랜드 서클 경관 中
요세미티 국립 공원 경관 中

캐년 투어 첫날 반바지를 입고 갔을땐 바닥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다리가 녹을것만 같았다. 강렬한 햇빛 아래 붉은 암석 지대, 특히 대표적인 캐년들은 자연이라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조형물처럼 잘 다듬어져 있었다. 사진보다 사진같은 광경에 자연인지 세트장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반면 요세미티는 춥고 드센 칼바람때문에 일행들이 바위 안쪽에 숨는 해프닝이 벌어졌었다. 놀랍게도 바위 안쪽은 따듯했다. 요세미티를 떠올리면 일렁이는 황금빛 풀밭과 거대한 암석, 푸른 침엽수와 맑은 하늘이 그려진다. 이 모든 요소의 조화가 신비롭고 경이롭다. 이러한 대조적인 두 곳의 공통점이 있다면 사진에 담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이 아쉬워 영상으로 찍어도 무언가 부족하다. 바람, 온도, 냄새 등 공간의 감각과 자연이 가져다주는 에너지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다.


들판과 숲
나무 정령들
투명한 호수
절벽 위의 풍경
멋진 풍경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방법 (멈춰선 차)
나무와 돌
매서운 바람을 견디는 심지
나무 절경
춤추는 구름


먼거리는 차량으로 이동하며 자연을 보고 걷고 오르고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이동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자 오히려 잡념이 차올랐다.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생각에 빠질때 어떤 공간에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의식과 감각이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기때문이다. 자연은 시간을 일깨워준다. 인간이 흙으로 빚어져 흙으로 회귀한다는 고루한 통념을 짚어보고 삶을 돌아보게 만들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복합적인 연결을 '생'이라는 하나의 흐름에 빗대어준다.


자기가 자기를 생산하면서 자기를 유지해 가는 것이 생명체다. 이 생명체는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지만 그 환경과는 분리된 자율적 체계다.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질문은 "생존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정말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가 돼야 할 것이다.


요세미티의 해질녘

올해만큼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질문을 오래 던져본 적이 없다. 철학의 필요성을 못느낄만큼 단순했던 시절들이었다. 단순함은 행복의 열쇠다.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가치, 의미의 상실, 가치의 변화를 겪고 나면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자신의 소망을 추구하고 나아가는 것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아무런 믿음도 없이 지속적으로 바라고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은 가능성에 기대어 살아간다. 현재가 불행해도 미래에 나아질 것이란 믿음이 있다면 살아갈 가치를 느낀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떻게 구하는가? 꿈꾸는 시나리오가 펼쳐지리란 보장 없이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가? 난 무엇을 믿고 미국으로 온 것일까?


진실은 진실을 원하는 시점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진실을 만들어가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철학적 교양이 부족한 나는 요세미티에서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철학 지식에 해박하다 한들 편의에 따라 그럴듯한 사상을 취하고선 위안 삼았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변화가 필요했고 기존에 내가 속했던 환경에선 답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때로는 그 믿음을 구하기 위한 여정도 필요하다. 절실함이 용기를 부른다고 생각한다.

한편, 다음 방문지 시카고에서 위 세가지 질문에 대해 좀 더 명확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자유의지의 핵심과 한계를 읽는 개념이었다. 어떤 유명인의 격언이나 책을 통해 얻은 지식도 아닌 사촌과의 대화에서 우연히 오간 내용이지만 나에겐 나무랄게 없는 말이었다.

We won't know if the decision you make is the right one but you can trust that you have the capacity to leave or change the situation when you need to. That gives you power.




본 포스트는 2024년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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