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소설] 백한 번째 사람들-6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by 파란 벽돌

아들 녀석은 얼마 전 새로 산 차를 타고 왔다. 새 차에서만 맡을 수 있는 휘발성의 가죽 냄새가 차 안에 가득했다. 기분이 좋은지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나의 기분은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이상하게 계속 속이 상했다. 잃어버린 것이 얼마 되지 않는 돈이고, 카드 열쇠와 신용 카드는 다시 만들면 되니 별일도 아니다. 그나마도 내 몸을 움직여 만들 게 아니고 아이들이 만들 것이다. 그 일을 맡아해야 할 당사자는 저렇게 별로 귀찮아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잃어버린 지갑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멀리하자 떨칠수록 실감이 났고, 잊어버리자 노력할수록 집중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한 시간여를 나는 고동색 지갑과 그 괘씸한 직원 생각에 몰두했다.


“네, 아버지?” 아들 녀석이 갑자기 내 팔을 슬쩍 건드리며 큰 목소리로 묻는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고 계세요? 제가 방금 말씀드린 거 들으셨어요?”
“무슨 얘기니?”
“아이 참, 아니에요. 있다가 말씀드릴게요.”


얼마나 집착했는지 아들 녀석이 무언가 한참을 떠들었던 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이것이 다 오피스텔의 그 녀석들 때문이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가는 설레는 이 길을 터무니없이 망쳐놓은 그 정체 모를 직원 녀석, 그리고 그것을 방치한 관리실장에 대한 분노가 새 차에서 나는 기분 좋은 냄새와 아들 녀석의 콧노래를 몇 번이나 덮어버리고 남을 지경이었다.


집의 문은 싸늘하게 닫혀있었다. 언제나 따뜻한 향이 배어 나와야 할 것 같은 내 집 앞에서 코 끝을 찡하게 하는 한기가 느껴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아들 녀석은 초인종은 쳐다보지도 않고 익숙하게 잠금장치 위에 비밀 번호를 꾹꾹 눌러댄다. 집 안은 어둡고 조용했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집처럼. 하지만 세간살이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마루에는 먼지 한 점 없었다. 필시 거실 건너 안방에 아내가 누워 있을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싸우고 미워했던 아내가 말이다. 아들 녀석은 성큼성큼 안방으로 걸어가 빼꼼히 문을 열고 인사한다.


"어머니, 저 왔어요. 아버지 모시고 왔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주섬주섬 몸을 추스르는 기척이 들려온다. 하지만 아내는 결국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안방 안으로 잠시 눈길을 주었다. 몸이 불편한 아내가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고 있다. 외면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응시하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눈인사가 나와 아내 사이를 스친다. 나는 몸을 돌려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끌고 온 두 개의 가방에서 겨울옷을 꺼내 옷장에 걸어두고, 서랍에 차곡차곡 개어진 봄옷들을 챙겼다. 잠시 주저앉아 생각한다. 비록 온화하지는 않으나 이곳은 내 집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렀고 내 마지막 순간도 마치려고 했던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이 집에 계속 있고 싶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단골 이발사에게 머리를 다듬고, 오랜만에 집 근처 목욕탕에 들러 따끈한 목욕을 하고 나면 다시 나의 작은 오피스텔로 돌아가야 한다. 외로움이 함께 살고 있는 그곳으로...

(계속)


* 우리 찐친님들, 재미있게 읽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일부러 외롭고 불행한 노인의 극한 상황을 만들어 나가다 보니 괜히 우리 찐친님들 기분까지 무겁게 만들고 있지 않나 해서 걱정이 됩니다.^^;;

요즘은 걱정 없이 살아가는 저이지만 가끔은 지난날에 겪었었던 무서운 좌절과 고통이 생각나기도 해요. 그래도 그런 위중한 한 때를 경험했기 때문에 성숙한 제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가끔은 심각하고 우울한 감정의 소비도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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