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소설] 백한 번째 사람들-8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by 파란 벽돌

아들 녀석은 의사다. 제 어머니가 어릴적부터 헌신적으로 지원하여 의대에 합격시켰다. 욕심이 많던 녀석은 악착같이 공부하더니 끝내 의사가 되었다. 그 녀석이 고3일 때, 그리고 딸 아이가 고1일 때, 나는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 쫓겨나듯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렇다. 회사는 분명 나를 쫓아내지 않았지만, 사직서를 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잘 다니고 있던 전 직장까지 찾아와 삼고초려를 하여 나를 스카우트했던 사장은 십 년이 지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많은 직원이 모이는 회의에서 실적을 가지고 조롱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김 이사, 이번에도 실망이네, 그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참… 요새 왜 그래? 집에 무슨 일 있어?”


차라리 심하게 질책했더라면 그렇게 수치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쓰임새는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것이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쫓겨나기 전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그 알량한 자존심이 나와 가족들을 얼마나 무너뜨릴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곧 어엿한 직장에 재취직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십 년이 지나는 동안 경기는 나빠지고 있었고, 다시 취직하기에 나는 너무 나이 들고 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집안에 가장 돈이 절실한 시기에 나는 가장으로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두 아이가 모두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내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었던 것은 하굣길에 버스 정류장에 미리 나가서 무거운 책가방을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나 아내도 아이들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너무도 초라한 배려였다. 나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나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사직서를 쓸 때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이 내가 가장 사랑하던 아이들 앞이었다는 것이 몸서리쳐지게 힘들고 두려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주부로만 지내던 아내는 따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초등학교 학습지 교사 일을 얻을 수 있었다. 남들보다 두 배나 되는 집들을 전전하면서 악착같이 생활비를 벌었다. 그렇게 아내의 관절은 망가져 갔다. 나는 생기지도 않을 취직자리를 알아보느라 하루를, 한 달을, 그리고 일 년을 계속해서 낭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여러 번 죽음을 경험했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정신과에서 받은 수면제를 차곡차곡 모았다가, 독주와 함께 들이킨 것도 수십 번이었고, 지하철역에서 달려오는 열차에 몸을 던진 것도 수백 번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는 가장 중요한 용기가 빠져있었다. 나의 경험은 계획과 환상으로만 이어졌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었지만 죽이지 못했다. 그 못난 나를 스스로 사랑해서인지, 불쌍하게 여겨서인지, 마지막 실행 전에는 항상 관용을 베풀었다. 아니 그것도 변명일지 모른다. 나는 그 정도로 무능력했던 사람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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