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아들 녀석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천천히 입을 뗐다.
“아무래도 콩팥이 사달이 난 것 같아요. 입원해서 검사받으셔야 해요."
나는 거부했다. 이미 삶에 대한 애착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니다. 너희들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 그냥 못 본 척하고 돌아가거라. 내일 일해야 할 텐데 괜히 잠 못 자지 말고. 나는 괜찮다."
나는 그것이 내가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선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가 기겁했다.
“아니, 이 밤중에 누구를 또 고생시키려고 그래. 아들 왔을 때 빨리 병원 가봐야지. 얘야. 네 아버지 모시고 빨리 병원에 가라.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 내가 혼자 모시고 갈 수 없어서 그래.”
죽어도 억울하지 않은 나이다. 아니,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이다. 살아서 해야 할 일도 마땅히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몸이 아프니 저항할 힘도 없었다. 끌려가다시피 병원으로 옮겨졌고, 신부전 진단을 받았다.
그때부터 일주일에 세 번 혈액 투석을 받게 되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차디찬 투석기에 의지하여 네다섯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병원에 갈 준비를 하고, 회복하여 돌아오는 시간까지 따지면 열 시간은 족히 걸린다. 살기 위해 투석을 받는 것인지, 투석을 받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아, 그래도 나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생겼다. 투석을 받기 위해서는 살아있어야 한다.
아내도 내 병간호를 해줄 만큼 건강하진 못하였다. 허리 수술 두 번에 양쪽 무릎 수술까지, 수술만 대여섯 번을 받았다. 자기 몸을 추스르기도 힘들다. 아내와 아이들이 자기들끼리만 모여 회의를 하더니 내가 그 오피스텔로 옮겨졌다. 계속되는 투석을 불편하지 않게 받기 위해서는 병원 가까운 곳의 거처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보다는 몸이 불편한 아내가 내 병간호까지 할 의지와 정성을 찾지 못한 이유가 더 컸을 것이다. 아이들도 대면대면한, 거기다가 병까지 얻은 아버지를 부양해야 할 새로운 이유를 떠올리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아니 설령 그들이 원하였더라도 그나마 남은 나의 양심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을 것이다. 이제 병원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내 집은 멀디 멀어졌다. 그리고 난 혼자가 되었다. 으르렁거리며 싸우기만 했던 아내에게서도 떨어졌다. 아이들이 가끔 찾아온다지만, 이틀에 한 번 내 몸을 투석기와 연결해주는 간호사를 빼고 나면 이제 완전히 혼자가 된 것이다. 내 주위에는 살아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소리가 없다. 적어도 회색빛 오피스텔과 투석기 옆의 작은 침대 위에서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