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런데 오늘 새벽에 그 소리가 들린 것이다. 달그락거리는 소리. 분명히 살아있는 무엇인가가 내는 소리.
사람이 아니고서는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까, 살아있는 무엇이라면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흔적도 없다. 새벽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동안 집에 다녀가던 그 직원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직원이 내 지갑을 가져갔다. 그렇게 그가 오늘 내 특별한 하루를 사정없이 짓밟아 버렸다. 다시 분노가 치민다. 그에게서 내가 받아낼 것은 없다. 그러니 분노를 누그러뜨릴 필요도 없다. 그냥 그대로 표출하면 된다. 오피스텔로 돌아가면 월요일 아침에 관리실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녀석을 찾아내어 내 소중한 하루를 망친 죄를 물을 것이다. 지갑을 훔쳐 간 죄로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다. 젊은 놈이라도 상관없다. 이 일로 그 녀석의 인생을 망치게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얼굴을 붉혔더니 머리가 쑤셔온다.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나는 대중목욕탕을 즐겨 다녔다. 열탕에 잠기면 뜨거운 물이 따갑게 피부를 자극한다. 그러면 온몸의 피는 긴장한 땀구멍을 찾아 몰리고 그 순간 나의 뇌는 텅 빈 듯 멍한 상태가 된다. 그런 몽롱함 속에서 걱정거리들을 잠시 잊는 것이다. 뒤로 미뤄놓은 꺼림칙한 숙제들이 저절로 해결될 리는 없다. 나는 그저 현실을 도피하고자 노력할 뿐이었다. 그런 무책임한 외면이 나를 그토록 무능력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 오래된 습관이기도 했다. 오늘도 나는 그런 무의미한 시도를 하고자 한다. 작은 목욕 가방에 주섬주섬 수건과 세면도구를 챙겨 넣었다.
"아버지, 잠깐만요."
거실 소파에서 쉬고 있던 아들 녀석이 현관문으로 향하는 나를 발견하고 웬일인지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의자에 걸쳐놓은 외투를 챙겨 입는다.
"왜 그러니?"
"저도 같이 가요."
“넌 왜? 담배 피우러 나가니?”
“아뇨, 저도 목욕탕이나 가려고요.”
녀석이 목욕하는 시늉을 한다.
“나 때문이라면 괜찮다. 혼자 갈 수 있다. 너 나랑 목욕 가는 거 싫어했잖니,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샤워나 하면 충분하다면서.”
“저도 나이가 들었는지 따끈한 탕이 그리울 때가 있네요”
어느 아버지나 그러하듯 녀석이 어렸을 때부터 목욕탕에 데리고 다녔다. 때밀이 청년에게 때를 밀게 한 이후에도 아들 녀석만큼은 내가 다시 때를 밀어줬다. 그 녀석에게 조그마한 티끌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때는 너무 때를 밀어 하얀 피부에 빨갛게 피가 맺힐 때도 있었다. 녀석은 어려서부터 그런 것들이 너무 싫었나 보다. 고추에 보송보송 털이 나기 시작하면서 나를 따라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을 마다하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앓고 있던 아토피를 핑계로 대면서 말이다. 아토피에는 때를 미는 목욕보다 찬물 샤워가 더 좋다는 의학 관련 기사를 내 책상 앞에 붙여 놓은 것도 그때쯤의 녀석이었다.
(계속)
* 여러분들은 살아가면서 세상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신 적은 없는지요?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말이지요. 제 주변에는 그런 고독을 느꼈다는 분들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만약 그런 적이 없다면 정말로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신 분들일 테지만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그런 외로움을 더욱 사무치게 느끼고 있을 거예요. 그는 과연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