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날 밤을 생각하면 체한 듯 가슴이 먹먹하다. 그 답답함은 곧 감당할 수 없는 슬픔으로 이어진다. 마치 커다랗고 뜨거운 덩어리를 집어삼키는 기분이다. 그 덩어리는 내 입술의 직경보다 커서 턱이 아플 정도로 입을 벌려도 이 사이를 통과시키기 힘들다. 설령 어렵게 혀 위에 올려놓았다 하더라도 씹거나 삼킬 수 없다. 결국은 삼키지도 못하고 뱉어내지도 못한 채 쩔쩔매야 하는 고통이었다. 아무리 울어봐도 그 눈물에 녹아내리지 않는, 아무리 가슴을 쥐어뜯어도 내가 받는 어떤 벌로도 씻겨 없어지지 않는 단단한 응어리이다. 그날 밤 딸아이와 아내의 눈물은 평생토록 그렇게 나를 짓눌렀다. 나를 납작하게 가라앉혀 손가락, 발가락 하나 꼼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커다란 바위였다. 나는 조용한 열탕 속에서 숨이 막히는 듯한 옛 기억을 계속 더듬었다.
내 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열탕의 습기인지, 아니면 땀인지,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체액인지 알 수 없을 때쯤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이제 힘들지만 일어나야 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림으로써 스스로를 질책하고 학대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 해는 짧고 할 일은 많다. 모처럼만의 주말을 즐기는 아들 녀석의 여유마저 빼앗고 싶지는 않다.
나는 천천히 열탕을 나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조그만 대야에 물을 받았다. 마주 본 거울은 목욕탕의 증발하는 수증기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거기에는 나의 얼굴과 눈과 입이 흐릿하게 번져 있었다. 나이겠지만 나인지 확신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눈길을 내려 새로 산 이태리타월을 찾았다. 그것을 오른손에 둘둘 말아 쥐고 왼쪽 손목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대중목욕탕을 찾지 않아서 그런지 때가 제법 밀렸다. 나는 욕탕에 들어오면서 보았던 다른 사람들처럼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몸을 씻어 냈다.
적막함 속에 익숙한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놓쳐버리기 쉽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어느 순간 나는 갑작스레 나의 몸을 건드리는 날카로운 자극에 흠칫 놀랐다. 등 쪽에 따가운 감촉이 와닿은 것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이 어디 가 있었는지 보이지 않던 아들 녀석이 내 굽은 등 뒤에 앉아 있었다. 녀석은 느린 손짓으로 천천히 나의 등을 밀고 있었다.
"괜찮다. 내가 혼자 할 수 있어.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따뜻한 탕에서 조금 더 쉬려무나."
녀석은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도 더는 말릴 수 없었다. 녀석의 손길은 나의 목 아래에서부터 작은 등을 지나 엉덩이까지 이어졌다. 예전에 내가 녀석의 때를 밀어줬듯이 빠지는 구석 없이 꼼꼼했다. 그러면서도 포근했다. 그 녀석이 먼지 하나 없이 정결해지길 원해 필요 이상 우악스럽던 그 옛날의 나의 손길과는 달랐다. 따뜻한 물로 내 몸의 흔적들을 깨끗이 흘려보내고 나서야 녀석이 입을 연다.
"헹구고 나오세요, 아버지. 저는 먼저 나가 있을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