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딸아이는 어제저녁 오피스텔로 찾아왔다. 6개월 전 혼자가 되고 나서 나의 외로움을 가장 걱정해 주는 사람이었다. 자기 일과 손주 녀석들의 말썽에 정신이 없을 텐데도 일이 주에 한 번씩은 오피스텔에 찾아왔다. 손에는 바리바리 반찬 통을 싸 들고 있었다.
‘오다가 반찬가게에서 밑반찬 몇 개 샀어요. 가능하면 밥은 해 드세요. 전기밥솥에 쌀 하고 물만 맞춰 넣으면 돼요. 그래도 귀찮으시면 제가 가져온 햇반 데워 드시고요. 속옷 매일 갈아입으시고 외출복도 자주 세탁해서 입으세요.'
자신을 아프게 했던 못난 아비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딸아이는 자신보다 내 걱정을 앞서 했다. 오랜만에 집에 들르는 나의 설렘을 알아챘는지 내 손에 만 원짜리 열 장을 두 번 접어 쥐여주었다.
'그리고 이건 내일 집에 가실 때 머리도 깎고, 목욕탕 가실 때 쓰세요. 남는 건 맛있는 것도 좀 사드시고.’
“이런 거 안 줘도 되는데. 너무 미안하구나. 너도 부족할 텐데.”
아이들은 매달 각자 이백여만 원 남짓을 갹출하여 내 오피스텔과 생활비, 병원비를 내고 있었다. 아무리 여유 있게 돈을 벌 수 있다고 해도 부담이 가는 금액이다. 그런데 딸아이는 또 그렇게 용돈까지 챙겼다.
오래전부터 그러했듯이 어제도 나는 딸아이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는 내 속에서 나온 나의 자식이었지만 어머니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미워함이 마땅한 자를 이해하고 용서하려 하는 성녀와도 같았다. 그런 그녀가 쥐여준 현금은 비록 얼마 되지 않지만 나에게는 부적 같은 것이었다. 쓰지 않고 가지고 다니기만 하려고 노력했다. 꼭 써야 한다면 딸아이가 말한 용도로만 사용했다. 그만큼 신성시하는 돈이었다. 그것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갈취당한 것이다.
나는 속상한 마음에 다시 눈을 떴다. 거울 너머 아들 녀석의 모습이 들어왔다. 녀석은 손을 거꾸로 접어 양 허벅지 밑에 깔고 앉아 등을 세우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로 이제 생명을 다한 머리카락으로 어질러진 이발소 바닥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듯했다. 이발사의 가위가 눈썹 위를 스쳐 지나갔다. 잘려 나온 앞 머리카락들이 눈동자를 찔러댔다. 날카로운 틍증이 눈물샘을 자극했다. 흐릿해진 나의 시선이 아들 녀석의 얼굴에 닿았다. 눈을 끔뻑이느라 잘 보지는 못했으나 그 녀석의 눈가에 무엇인가가 반짝 비치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어르신은 머리가 길면 정신이 사나워져서 아무 일도 못 하시겠다고 하세요. 그래서 단정하게 이발하는 것을 좋아하시거든요, 허허허."
이발사가 자랑하듯 아들 녀석에게 얘기하며 감아주고 말려준 머리는 내 마음에 들게 충분히 짧아져 있었다.
이제는 오랜만에 들른 내 집, 우리 동네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쳤다. 집에 돌아가 새로 싼 가방을 들고 오피스텔로 돌아가면 된다. 가는 길에 단골 식당에 들러 늦은 점심으로 따뜻한 복국 한 그릇을 먹고 갈 계획이다. 아내도 함께 데려갔으면 좋겠지만 가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내가 가자고 하면, 가려고 나서다가도 집으로 돌아가는 성격이었다.
(계속)
* 우리 독자님들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한 성탄절 맞으시고 한 해 잘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독자님들 덕분에 2021년 마지막 몇 달이 무척 행복했습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