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이발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파트 화단에는 진달래가 흐드러졌다. 매해 봄마다 마주하는 진홍빛 이건만 수십 년 만에 보는 것처럼 낯설고 반가웠다. 아들 녀석은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듯했다. 언제나 그랬듯 녀석은 다시 현관 잠금장치를 능숙하게 열었다. 집 안은 아직도 어둡고 조용했다. 내 집이었건만 역시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머니, 다녀왔어요. 아버지랑 목욕탕이랑 이발소 좀 다녀왔어요. 점심은 드셨어요?"
아들 녀석은 안방으로 들어가 제 어머니와 몇 마디를 나눈다. 아내는 녀석에게는 언제나 살가웠다. 하긴 제 어머니를 거스르거나 실망시킨 적이 없던 녀석이었으니까. 방문 밖으로 새어 나오는 두 사람의 대화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다정한 것 같았다. 아니, 그들만은 항상 다정했다. 나는 건넌방으로 들어가 미리 싸놓은 가방들을 챙겼다. 이제 그것들을 끌고 나가 안방 문 너머로 아내와 그저 그런 눈인사를 나누고 오피스텔로 향하면 그렇게 기다리던 오늘의 내 집 방문을 마치게 될 것이다.
"아버지, 잠깐만요."
아들 녀석이 건넌방으로 들어오며 나를 만류한다.
"어머니가 점심 드시고 가시래요."
"아니다. 네 어머니 몸도 불편한데 귀찮게 하기 싫다. 가다가 같이 사 먹자꾸나. 네 어머니 아직 식전이면 같이 가서 먹자고 해도 좋고."
"어머니가 이미 점심 상 차려 놓으셨다는데요."
녀석은 내 손을 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탁에는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북어찜과 조기구이, 그리고 아내가 만든 입맛에 딱 맞는 여러 종류의 김치들. 상 가운데에는 자주 먹지 않던 등심까지 구워져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가 끓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우리 부자 뒤로 아내가 절룩이며 걸어왔다. 어렵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나 보다. 아내는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 레인지 위의 찌개 뚝배기를 식탁으로 옮겨 놓았다.
"늦었지만 점심 드시고 가세요. 아이도 배고플 텐데 괜히 고생시키지 말고."
그리고 조용히 안방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목욕탕과 이발소를 다녀오는 동안 아내는 망가진 몸을 움직여 부엌에서 이 대단한 밥상을 준비한 것이다.
“야, 이거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있네. 지난번 나만 왔을 때에는 편찮아서 밥 못 해주신다고 하시더니 웬일이래요.”
아들 녀석이 옆에서 아이처럼 호들갑을 떤다. 나도 오랜만에 군침이 돌았다. 식욕이 느껴지지 않아 끼니때마다 고통스럽던 식사 시간에 있기 힘든 일이었다. 꾹꾹 눌러 담은 밥 한 그릇을 싹싹 비워 먹은 것도 몇 년 만이었다. 진수성찬에 한껏 들뜬 아들 녀석이 타 준 커피로 입가심하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우리들의 기척을 들었는지 아내가 다시 절룩이며 식당으로 나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내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많이 피곤하고 수척해 보였다. 나 때문이다. 내가 아름답고 꿈 많던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고맙고 미안해요, 여보. 오랜만에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
"아니에요, 차린 게 별로 없어서 미안해요."
"몸은 괜찮아?"
"네,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현관문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아내는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막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는 우리의 등 뒤로 아내의 마지막 목소리가 느껴졌다.
"집은 춥지 않아요? 날 풀리면 한 번 가볼게요."
"괜찮아. 나는 잘 지내. 당신이나 감기 조심하고, 무릎 아플 텐데 무리하지 말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도 아내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