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목욕을 마치고 몸을 말린 후 탈의실로 나왔다. 아들 녀석은 벌써 옷을 걸쳐 입고 탈의실 한가운데의 평상에 앉아 있었다. 나도 한 구석에 걸터앉아 머리카락에 남은 물기를 털었다. 좁은 평상의 모서리에 자리 잡은 우리는 어정쩡하게 등을 진 자세가 되었다. 몸이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는 힘든 이상한 위치였다. 천장에서는 오래된 선풍기가 덜덜거리는 소리를 내며 휘청휘청 돌고 있었다. 몸의 물기가 서서히 증발되어 갈 무렵 무엇인가가 내 팔을 건드렸다. 녀석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건네고 있었다. 작고 가는 빨대가 꽂혀있는 흰 우유 팩이었다.
"어, 이게 뭐니?... 우유구나... 예전에 너 어렸을 때 목욕 같이 오면 키 크라고 내가 항상 사주던 것이었는데... 너는 맛없다고 싫어했잖아."
목욕을 마치고 마시는 흰 우유 한 팩은 형용할 수 없는 풍미가 있었다. 몸에서 빠져나간 수분을 채워주는 시원함은 물론이고 메마른 혀끝에서 평상시 느끼지 못하던 고소함이 증폭된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녀석의 입에는 벌써 빨대가 물려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싫었는데 오랜만에 마시니 괜찮네요."
"녀석 하고는... 그나저나 나는 이발소 들렀다 갈 테니 집에 먼저 가 있거라."
“네.”
대답은 알았다고 하고 아들 녀석은 끝내 이발소까지 나를 따라왔다. 내가 다니는 허름한 이발소는 아파트 앞 상가 구석에 위치해 있다. 서너 평의 좁은 공간에 놓여진 이발 의자 2대, 그리고 색이 변한 타일로 덮인 머리 감겨주는 세면대,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 앉으라는 상자 모양의 등받이 없는 의자 몇 개가 다인 곳이었다. 나는 익숙한 그곳으로 들어섰다. 이발소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손님을 기다리며 신문을 보고 있던 이발사는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고개를 든 눈길이 나에게 잠시 머문 후 뒤따라 오는 아들 녀석에게로 향한다. 이십 년 동안 같은 이발소에 다녔지만, 이발사가 아들 녀석을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갑자기 등장한 아들 녀석의 얼굴에 신기함과 궁금중의 시선이 함께 머문다.
"제가 이십 년 동안 어르신 머리를 다듬어 드렸지만 이렇게 훌륭한 아드님이 계신 줄은 몰랐네요. 허허허."
하얀 이발 보자기를 목에 둘러주며 이발사의 수다는 시작되었다.
"아버님이 과묵하셔서 말씀을 잘 안하세요. 제가 억지로 물어보면 한두 마디 대답이나 하시고요. 아드님이 의사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맞지요? 아휴, 이런 훌륭한 아드님을 그동안 꽁꽁 숨겨두시고...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이세요. 이 귀한 아드님을 다 모시고 오시고..."
어떻게 깎아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이발사는 너무도 익숙하게 가위를 꺼내들고 뭉텅뭉텅 내 머리카락들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아들 녀석은 신기한 듯 이십년 지기들의 이신전심을 관찰하고 있었다. 거침없는 이발사의 손놀림이 계속되는 동안 녀석은 물끄러미 이발소 의자 위로 봉긋 나온 내 뒷머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거울을 통해 녀석의 시선을 알 수 있었지만, 짐짓 모르는 척했다. 삐죽삐죽 길게 자란 은색 머리카락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사각거리는 가윗날의 기분 좋은 마찰음이 들리는 듯 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계속)
* 이전에 써 놓았던 글이 너무 미숙해서 급하게 수정을 하다보니 문장과 표현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가당치 않기는 하나 연재 소설 게재하시는 프로 작가님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이 유치하고 성에 차지 않더라도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