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소설] 백한 번째 사람들-최종회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by 파란 벽돌

‘아까도 집에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말씀드렸는데 못 알아들으시더라고요. 오피스텔에는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아버지와 저희 남매밖에 없어요. 관리실 직원들은 가끔 제시간에 아버지 방에 불이 켜지고 꺼지는지 봐주는 것뿐이고요. 제가 부탁해 놓았거든요.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를 도와드릴 사람도, 또한 아버지가 그렇게 미워하셔야 할 사람도 없었다는 말이에요. 하마터면 나도 아버지한테 깜빡 속을 뻔했지 뭐예요.... 결국 아버지가 말한 그 직원은 아버지 자신이었던 거죠. 아버지는 아버지가 스스로 한 일 때문에 자신을 그토록 증오하셨던 거예요. 그것이 단지 오피스텔에서 벌어진 일이든, 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에 일어난 일이든 말이죠.'


아들 녀석의 손이 아직도 쉬지 않는다. 남은 말이 있나 보다.

‘아버지, 제가 대학교 때부터 아버지 원망 많이 했던 거 잘 아시죠? 다른 친구들처럼 공부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젊음을 즐기지도 못하고, 불쌍한 어머니 도와 학교 다니면서, 집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자존심만 내세웠던 아버지를 무척이나 미워했어요.’


녀석은 노트를 넘기며 계속 써 내려갔다. 한참을 기다려 녀석의 말을 읽었다.

‘아버지가 쓰러지신 날 기억하시죠? 어머니가 새벽에 전화하셨던 그날. 집에 도착해서 맥을 짚어보려 아버지 손을 잡았던 순간, 불현듯 제가 막 아버지를 미워하기 시작했던 때, 벌써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버린 것을 알았어요. 그 나이가 되어보니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요. 그때 아무것도 지지 못했던 아버지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지를 말이지요. 아버지 참 고생 많으셨어요.'


뚫어져라 노트를 읽고 있는 나를 쳐다보고 녀석은 씩 웃었다. 그리고 다음 말을 적었다.

‘이제 그 무거운 멍에는 내려놓으세요. 저희 가족 누구도 이제 아버지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어요. 모두 아버지를 사랑해요. 기운 내세요.’

“그래, 고맙구나”


그래, 귀먹은 내가 거실에서 들리는 그 조그만 소리를 들을 리 없었다. 그것도 잠에 취해 비몽사몽 중이던 새벽에. 나는 내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나 자신을 스스로 탓하고 미워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도 미워하던 나를, 나의 아내는, 아들은, 그리고 딸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무 기억도 안 난다는 듯 쉽게 용서해주었다. 그들은, 그리고 나를 걱정해주었던 또 한 사람, 관리실장은 내가 속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자신했던 그 백 명 안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나에게 너무나도 낯선 백한 번째 사람들이었다.


노트는 이제 몇 장 남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사인펜을 건네받아 또박또박 글씨를 써 내려갔다.

‘다음 주에는 동생과 함께 네 어머니 모시고 오려무나. 내가 해주는 따뜻한 밥 한번 먹어봐야지.’

나는 오랜만에 또다시 아들 녀석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끝)


* '백한 번째 사람들'을 끝까지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갑자기 추워진 연말연시에 어울리게 따뜻한 결말로 끝을 맺게 되어 다행입니다. 우리 독자님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이제 제가 써 놓았던 글들이 다 떨어졌습니다. 앞으로는 글이 준비될 때마다 조금씩 올릴 계획입니다. 매일 뵙지 못하게 되어 아쉽고, 그동안의 뜨거운 성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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