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아이들은 대학에 다니면서도 다른 집 아이들과는 달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가정교사 일을 해서 학비를 벌었다. 집에, 아니 어머니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빛이 역력했다. 남들이 효자, 효녀라고 칭찬했지만, 아이들은 결코 그런 생활을 스스로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원망어린 눈초리는 가끔씩 나를 아프게 찔렀다. 아이들의 친구들은 먹고, 마시고, 노는 데에만 전념하였다. 그렇게 20대의 청춘을 만끽하는 친구들 틈에서, 나는 내 아이들이 공부와 돈, 그리고 자신들의 젊음과 싸워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것이 미안했다. 미안한 마음에 그들에게 서먹하게 대했고, 그들도 나를 그렇게 대했다. 나와 아이들의 대화는 점차 줄어갔다. 나는 아이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을 다녔을 때에도 나는 아내에게 큰돈을 벌어다 주지 못했다. 일류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여러 회사로부터 구애를 받던 젊은 날의 나는 ‘내가 직접 회사를 차리면 돈 벌기는 시간문제’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자신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아내를 만났고, 아내는 그 자신감에 반해 나와 결혼했다. 결혼 후 나에 대한 실망이 쌓여가던 아내에게, 나는 자신감이 없어지는 만큼 화를 냈다. 그렇게 우리 부부 사이는 갈라졌고, 내가 퇴직을 하면서 폭발하였다. 그 이후 우리 사이의 교감은 없었다. 세 마디 이상의 대화는 싸움으로 이어졌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무시하고 증오하였다. 어떻게 이렇게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 그동안 살을 부대끼고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지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 아내가, 그 아들 녀석이, 지금 전화기를 통해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제가 지금 가볼게요."
영 귀찮다는 목소리로 얘기하던 아들 녀석이, 오겠다고 대답한다. 아내가 원하던 답이다. 결국, 오라는 소리를 못 해서, 오겠다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다른 말을 했던 것이다. 오겠다는 말을 하기 싫어서 차마 그 말을 듣기 원하는 것인지 두려워서 돌려서 말을 했던 것이다. 의미없는 대화가 이어졌지만 그래도 운 좋게 원하던 목적지에 도달했다. 아들 녀석에게는 고역이었고 아내에게는 다행이었다.
정신을 잃은 것인지, 다시 잠이 든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지만 한두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아들 녀석이 맥을 짚으려 그랬는지 내 손을 쥐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아니 대학 들어간 이후로 처음인가? 아들 녀석 손을 쥐어본 것이.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녀석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아들 녀석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녀석은 살아야 할 사람이라 소리를 내는 것이다. 나는 아니다. 살아있을 필요가 없는 사람인데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직도 나는 살아있는 것이다. 살아있지 않은 것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 적어도 이런 시간, 이런 상황 하에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