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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Nov 28. 2024

부부 싸움의 참혹한 결말
<추락의 해부>

-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2023)

-쥐스틴 트리에 감독, 산드라 휠러 주연 

    

스눕이 하얀 눈밭을 급히 뛰어간다. 뒤 따라 오는 다니엘. 피를 흘리며 누워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다니엘의 아빠. 프랑스 산골마을 4층짜리 집 아래 사뮤엘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누워있다. 급히 구급차가 온다. 남자의 사인(死因)은 타살일까? 자살일까? 타살이라면 범인은 누구일까?     


같이 있던 아내, 산드라는 끊임없이 의심받는다. 그 시간 집에 함께 있던 사람은 아내였으므로 의심받는 것도 당연하다. 남편이 죽은 것도 힘든데 범인으로 몰리는 심정은 또 어떤 것일까? 영화는 담담하게 죽음 이후의 시간을 그려낸다. 범인이 누구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산드라는 법정에서 무죄를 호소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아내일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들이 나온다. 고스란히 녹음된 부부싸움 소리. 남자는 소설을 쓰기 위해 부부의 대화를 수도 없이 녹음했다. 법정에 울려 퍼지는 흔하디 흔한 부부싸움의 레퍼토리들.     


지지않는 여자의 증언들. 남편이 6개월전 자살을 시도했다고 말한다. 교수로서의 역할이 힘들고 글을 쓰고 싶어했다고 회상한다.      




녹음파일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는 서로를 비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시신경을 다친 아들 다니엘을 홈스쿨링하겠다고 주장한 남편, 집안일과 아들 돌보기가 버겁고 집수리까지 겹쳐져 심리적, 육체적으로 괴로워한다. 둘은 서로 자신이 많이 양보하고 있다며 대화에서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    

  

사뮤엘: “우리 사이 균형이 무너졌어.”

산드라: “원래 완벽한 균형은 없어. 여기 온 것도 공사도 당신의 선택이잖아. 당신이 놓은 덫에 걸린거야.”  

사뮤엘: “일상,언어,음식,부부관계까지 다 당신 마음대로잖아. 난 표절과 외도를 겪은 남자야.”

산드라: “아니, 탓할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야.”    

 

산드라는 남편의 아이디어를 빌려 책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데 남편도 동의했다. 이 소설 속에는 ‘어떻게 죽일까? 시체는 무거울텐데’ 등의 내용이 나온다. 그러니 사람들은 산드라를 더 의심한다. 살인에 대해 생각했던 아내가 남편을 죽인 것이라고 추측한다.     

  

모든 재판 과정을 지켜본 다니엘이 증언한다. 아빠와 동물병원에 다녀오며 차 안에서 나눈 대화다. 아빠는 다니엘에게 얘기했다. “스눕도 피곤할 수 있어. 너를 항상 돌봐주잖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각오도 해야 해. 떠나야 하면 떠나는 거야. 어차피 닥칠 일이잖아. 각오해.”   

  

아마도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려주는 말이 아니었을까? 스눕처럼 아빠도 언젠가 너의 곁을 떠날 수 있으니 염두에 두라는 암시 같다. 길고 긴 공방 끝에 산드라는 누명을 벗고 온전히 자유의 몸이 된다.    

   

사뮤엘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내려오고, 아내와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산 끝에 있는 곳까지 왔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생활. 자신만이 모든 걸 희생하고 있다는 피해의식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시각장애인이 되어 안내견이 없이는 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힘들다. 아내는 계속 작품을 발표하지만 자신은 글을 쓰고 싶어도 환경이 도와주지 않는다.      




부부간의 역할이나 할 일을 저울로 잴 수 있을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할 수 있을까? 현실은 사랑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결혼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좋아하는 감정만으로 현실의 문제를 떠맡기엔 현대사회는 너무 복잡하다. 더군다나 불편한 몸을 가진 아들을 24시간 케어하는 아빠의 심리적 부담은 컸으리라.  작은 싸움을 시작으로 거대한 폭풍처럼 격렬히 싸우게 되고 사건은 벌어진다. 둘을 집어삼킬 만큼 문제가 커진다.       

결국 남자는 죽음을 선택하고 보란 듯이 집에서 자살을 감행한다. 무책임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이 죽음의 문턱으로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망설임과 좌절과 울음이 있었을까? 자살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하기보다 그 이면에 가려진 원인이 더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들의 증언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깊은 진창에 빠졌어야 할 산드라는 집으로 돌아온다. 스눕은 기다렸다는 듯이 산드라의 곁에 와 편안히 앉는다. 사랑했고 서로를 선택했지만 결혼생활은 둘을 잠식해버린다. 행복하려고 하나가 되었지만 커다란 문제의 파도에 잠겨버렸다.      


한 사람의 삶이 끝났다고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만 남편이 몰고 온 죽음은 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영화 속 아내 산드라와 다니엘은 의문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풀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을 것이다. 미처 가족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 없이 재판이 시작되고 수사가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행복한 시절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이 둘에게, 결여된 것은 무엇일까? 누구의 잘못일까? 똑같은 상황에서도 부부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상황을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탓해야할까? 상대를 비난하기 전에 나는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했나? 생각해본다.     

 

*사람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와 조금이라도 다른 성격의 사회를 믿을 수 없는 기괴한 존재로 간주하며 심히 혐오하고는 한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을 가지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방’이나 ‘외계’라는 표현의 부정적 뉘앙스는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잘 드러내 준다.    

 

*출처: 『코스모스』 칼 세이건, 사이언스북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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