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제 58회 칸영화제 감독상 (2005년)
-미카일 하네케 감독, 다니엘 오떼유 주연
충격적이고 잔인하고 궁금하고 끝나지 않는 영화. 완성되지 않은 완성도 있는 영화. 말장난 같지만 영화를 보면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놈이 원하는 게 이런 건지도 몰라.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거, 날 믿어주면 안돼?”
조르쥬는 VCR을 돌려본다. 자신의 집과 출입하는 사람들을 찍은 영상이다. 누군가 계속 테입과 엽서를 보낸다. 엽서에는 어린 소년이 피를 토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조르쥬는 악몽을 꾼다. ‘한 소년이 닭 목을 칼로 내리친다.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고 자신이 그걸 지켜본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모습이다.’ 그 소년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장면에서 깨고 땀이 흥건하다. 온 세상이 자신을 감시하는 듯한 느낌에 불안감은 극에 달한다. ‘널 괴롭힐거야, 나중에 이런 일이 벌어질거야’ 라고 친절하게 그림을 보내서 알려준다.
불안해서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온다. 조르쥬는 방송진행자로 일하고 아내는 출판사에서 일한다. 하루는 조르쥬의 어린 시절 집을 찍은 영상이 배달된다. 초인종 소리가 나서 문 열고 나가보면 아무도 없고 이상한 전화도 온다.
조르쥬는 마지드의 집에 찾아간다. 한 번 더 테이프와 그림을 보내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르쥬와 마지드의 대화 내용이 담긴 테이프가 집에 온다.
아내에게 마지드에 대해 얘기한다. 마지드는 어릴 때 집에 있던 일꾼의 아들인데 그 부모가 죽자 입양했었다고 한다. 조르쥬는 그것이 싫어 마지드에 대한 악소문을 퍼뜨린다. 그 영향으로 마지드는 고아원에 간다.
어느 날 마지드가 불러 가보니 ‘너가 여기 있었으면 해’라고 하더니 조르주 앞에서 칼을 꺼내 자신의 목을 벤다. 그리고는 피를 뿌리며 쓰러져 죽는다. 앞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도한 조르주는 집으로 가 아내에게 그 사실을 얘기한다.
어느 날 마지드의 아들이 찾아온다. ‘당신이 우리 아버지 교육의 기회를 빼앗았어’라며 비난한다. 그러나 조르쥬는 미안하다거나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는 찾아온 아들을 정신병자취급한다. 마지막 장면은 마지드의 아들이 조르쥬의 아들, ‘피에르’를 찾아가 얘기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것일까? 얘기만 하고 피에르를 놓아준다. 피에르는 친구들과 어디론가 향한다. 마지드의 아들은 피에르를 도대체 왜 만났을까? 영화가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답다. 머릿속에서 다시 시작이다. 테이프는 누가 보냈을까? 마지드와 아들이 보냈을까? 마지드 집에서 찍은 영상이 보내진 걸 보면 분명 마지드와 아들이 보낸 것 같은데 본인들은 부인한다.
부부의 삶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어렸을 때 저지른 실수 같은 잘못으로 한 인간(마지드)의 인생이 망가졌다. 피해자인 마지드는 평생 잊지 못할 아픔과 고통을 안고 산다. 복수를 결심하고 가해자를 끊임없이 감시하며 메시지를 보낸다.
짚이는 사람이 있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 조르쥬도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과할 생각은 없고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한다. 영화에서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마지드는 왜 가해자의 앞에서 목을 그어 자살했을까? 나중에 마지막 그림이 닭의 목이 붉게 물든 그림이었다. 아들까지 가담시켜 복수극을 벌이고 있는데 왜 갑자기 생을 마감했을까?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비참해서? 억울해서? 의도를 알 수 없지만 고통받은 사람의 심정은 짐작할 수 있다.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마지드의 아들이 피에로에게 다가가 얘기하는 걸 보면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은데 거기서 영화가 끝나버리니 알 수 없다. 마지드의 아들이 조르쥬에게 찾아갔을 때 끔찍한 살인이 벌어지는 줄 알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 영화는 이후가 더 궁금하다. 조르쥬는 어떻게 살고 마지드의 아들은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조르쥬는 반성하지 않고, 마지드는 피해의식에 젖어 살았다. 피니쉬(finish) 없는 영화, 계속 상영되는 영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수나 장난이라고 말하며 남을 괴롭힌 적은 없는지 반성하게 된다. 나의 편의를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했을 때 남이 받을 고통을 외면했던 일이 있었나?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내가 뿌린 말 한마디, 행동들이 어디에서 열매를 맺을지 알 수 없다. 자신이 대단한 특권이라도 가진 듯 행동하지만 속은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위선자에 불과하다.
조르쥬는 생활 수준이 낮은 사람들을 정신병자로 취급하며 자신만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자신 때문에 힘들었을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민은 없다. 사과 한마디 없이 계속 상대방을 협박해 일을 더 키우기만 한다. 조르쥬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했다면 어땠을까? 마지드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복수극을 멈췄을까?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조르쥬는 사과할 생각이 없고 마지드도 멈출 생각이 없다. 결국 둘은 파멸의 길로 걸어 들어간다.
미카일 하네케의 영화 중 잔인함이 극에 달해 보기 힘들었지만 특이한 촬영기법과 독특한 스토리가 눈길을 끌었다. 사과하지 못하는 건 용기가 없어서다. 용기는 강해지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과하면 무시당하거나 약해 보일까 봐 실행하지 못한다. 사과하지 않는 이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약해 보인다. 사람의 마음은 의외로 쉽게 무너진다. 그 어떤 말보다 강한 말, 미안하다는 말, 그 말을 뱉은 후 가게 될 그 길이 두려운 것일까? 용기 내지 못했을 때 가게 되는 길 보다는 평화롭지 않을까?
*일러스트: June / 이미지출처: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