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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Dec 26. 2024

진짜 사랑을 찾아서
【사랑을 카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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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2010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줄리엣 비노쉬 주연  

   

제임스는 ‘기막힌 복제품’ 출판 기념회를 위해 이탈리아 투스카니에 온다.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엘라는 팬이라며 그를 가게에 초대한다.      


제임스의 기차 시간이 남아 작은 마을을 방문한다. 둘은 종횡무진 다양한 소재를 다루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예술에 관련된 일을 하는 만큼 주로 예술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제임스:평범한 그림도 박물관에 걸어 놓으면 달리 보여요. 물건은 보기 나름이니까요. 나무를  보세요. 아름답고 모양도 제각각이고 똑같이 생긴 나무는 없어요. 단지 거리에 있다는  것 때문에 주목받지 못할 뿐이죠. 

    

‘라 조콘다’라는 작품 앞에 선다.      


엘라: 오랫동안 진품인 줄 알았던 작품이 불과 50년 전에 나폴리인의 위작이라는 것이 밝혀지죠. 위작이지만 원본만큼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아요.     


평온한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돌연 분위기는 엘라의 아들에게서 온 전화로 바뀐다. 레슨이 1시간 미뤄지니 스케이트를 타러 간다고 한다. 가는 데 1시간이 걸리는 스케이트장을 간다는 말에 개념이 없다고 불평한다.     

티셔츠만 입고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린다고 하니 “그럼 어때?” “그러다 죽는다” 했더니 “그럼 어때?” 라고 얘기한다고 엘라는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자 제임스의 반응은 뜻밖이다. 아들 말이 맞다는 것이다. 

     

“아드님 말이 맞아요. 우린 다 죽어요. 맞는 말을 하는데 우리는 아이들을 다그치죠.”   

  

이들의 불편한 심기는 식사를 하러 간 식당에서도 계속된다. 오랜만의 식사 자리에 한껏 꾸미려고 노력한 여자와 달리 남자는 술과 음식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이때부터 둘의 캐릭터는 갑자기 오래된 부부관계로 변한다. 남자는 뭐가 그리 불평이냐고 핀잔을 주는 부인이 몹시 불편하다. 여자는 2주 만에 돌아와서도 곯아떨어진 남편이 밉고 남편은 그걸 이해해주지 않는 부인이 못마땅하다.     



왜 더 날 사랑하지 않냐고 폭발하는 부인과 왜 말도 안되는 소릴 하냐고 받아치는 남편.     

“아직도 사랑해. 표현방법이 다른 거지. 15년이나 지났어. 어떻게 신혼부부랑 같겠어? 왜 그런 걸 이해 못하지? 뻔한 거 설명해주기도 지쳤어. 우리 결혼생활, 내 존재까지 다 사과할게”     


분위기를 조금 누그러뜨리고 여자가 건물 앞 계단에 앉아 하이힐을 벗는다. 이 건물 3층 9호실에서 신혼 첫날밤을 보냈다며 들어가보고 싶어한다. 여자는 말한다.    

  


“당신은 변한 게 없어. 다정하고 환상적이고 차가워. 상처받지 않으려고 그러는데 너무 차가워. 우리가 서로의 단점을 덮어줄 수만 있다면 덜 외로울거야. 우리 둘 다를 위해 여기 남아줘.”   

   

남자는 ‘9시에 기차 타야하는 거 알잖아’ 라고 말하고 여자는 ‘알아’ 라고 답한다.


이 영화의 가장 특이한 점은 출판기념회를 하러 온 제임스와 엘라의 관계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제임스의 팬이라서 자신이 하는 가게에 초대를 하고 마을을 구경시켜주던 엘라가 갑자기 부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둘은 부부 역할을 카피하는 것일까? 이 두 사람은 진품 부부인가? 15년의 결혼생활을 운운하고 서로의 단점을 계속 들춰가며 제대로 권태기를 앓는 사람처럼 얘기하는 걸 보면 분명 부부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도입부의 작가와 팬의 역할은 무엇이란 말인가? 영화는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것이 또한 영화를 끝까지 끌고 가는 매력이자 동력일 수 있다.     

 



남자는 냉정하고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갈구한다. 여자가 침대에 누워서 옛 추억을 되살리며 따뜻한 스킨쉽을 원하지만 남자는 움직이지 않고 여자를 바라만 본다. 어쩌면 그들이 오랫동한 지내온 모습을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마음은 있지만 잘 표현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남자, 그 옆에서 외로운 여자. 사랑하는데 더 많은 사랑을 요구하고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여자를 남자는 버거워한다.   

  

둘은 진품 부부일까? 가짜 부부일까? 끝끝내 영화는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끝이 난다. 애매한 걸 못 견뎌 한다면 보기 힘든 영화일 것이고 색다르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들이 진짜든 가짜든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사랑하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사랑이 진품인지 가품인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어느 나라나 남녀의 다툼은 클리셰처럼 비슷하다. 남들이 들으면 뻔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심각하고 중요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것을. 사랑 빠진 결혼생활이야말로 사랑을 카피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를 보면서 아름다운 두 사람의 모습보다 갈등하는 모습이 더 와 닿았다. 실제 부부들은 많은 다툼과 갈등 속에서 일상을 살아간다. '아,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세상 어느 나라의 연인도 부부로 맺어지면 다름을 받아들이기 위해 다소의 갈등이 있구나!' 하며 위안을 받았다.

      

일러스트: JUne / 이미지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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