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 Dec 19. 2024

얼어붙은 마음의 소리들
【윈터슬립】

Winter Sleep

-6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2014년)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 할룩 빌기너 주연    

  

오델로Othello 호텔을 운영하는 아이딘. 차 운행 중 큰 돌이 날아든다. 아이딘은 25년간 연극배우로 활동했으며 아버지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다. 어린 아내 니할과 살고 있으며 얼마 전 부터 이혼한 여동생이 와 있다. 겉으로는 다 가진듯해 보인다. 그러나 주변 인물들과의 사이에 끊임없이 갈등이 생긴다.    

 

세입자의 어린 아들이 아이딘의 차에 돌을 던졌다. 빚 독촉하는 자들이 아빠를 때리는 모습을 본 것이다. 나중에 데리고 와서 아이딘의 손에 입맞추라고 하니 째려보다가 쓰러진다.    

 

이혼하고 집에 와 있는 동생은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칼럼을 쓰고 있는데 지역 신문말고 더 큰 신문에 기사를 쓰라는 둥 잔소리가 많다. 


아이딘은 질세라 맞받아친다. 그러니까 네가 이혼을 했다는 말까지 서슴치 않는다. 기생충처럼 도움 받는데 익숙하고 온 세상에 받을 빚이라도 있는 듯 행동한다고 말해버린다.     

 

아내 니할이 자선 모임을 이끌자 아이딘이 못마땅해한다. 게으르고 할 일 없는 여자의 취미 정도로 치부하고 나무란다. 자존심이 상한 니할은 남편에게 반항한다. 무시당하는 기분이 싫어 이스탄불에 가서 돈을 벌겠다고 하자, 안락한 삶의 고마움을 모른다며 너무 편히 사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는다.  

   

소통의 부재는 이어진다. 세세한 상황을 파악하려 하자 니할은 울며 외친다. 그게 내 전부이니 다 가져가라며 포효한다. 그러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아이딘은 니할에게 묻는다.   

  

“내 잘못이 뭔지 얘기해줘. 간결하게. 내가 무슨 짓을 했길래, 내가 늙어서? 이혼을 원해도 말리지 않을께” 

    

아내는 말한다. “당신은 이기적이고 냉소적이에요. 노인을 싫어하고 젊은이를 싫어해요. 모든 사람을 강도나 도둑으로 의심하고 한 번이라도 당신이 비용을 내고 득이 되지 않는 일을 해 본 적이 있어요? 젊고 건강한 여자가 권태로 시들어가는 걸 보기만 하면서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처음엔 두려웠지만 이젠 수치스러워요.”     




눈발이 거센 설원을 뒤로 하고 아이딘이 탄 차는 역으로 향한다. 이스탄불로 가려던 아이딘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지인 수아비의 농장으로 간다. 


“결혼도 했고 자식도 낳았지만 다 어디 있지? 엄마가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주정뱅이 외톨이가 되다니? 아내가 죽고 방 모두를 잠그고 전체 난방은 안 해, 대신 여기에 난로를 피우고 웅크리고 자면 아늑해” 수아비도 외로워한다.      


자신이 떠나지 않고, 수아비 농장에 있다는 걸 말하지 말라고 히다예트 집사에게 이른다. 수아비는 말한다. “딸은 이역만리에, 아내는 무덤 안에 있어.” 바꿀 수 없는 일이 있으니 융통성을 가지라고 아이딘에게 말한다.      

아이딘은 결국 친구의 집에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오는 것을 2층에서 창으로 내다보는 니할과 눈이 마주친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관계가 이어지길 바래. 나를 노예처럼 끌고 다녀, 당신이 하고 싶은대로 마음 껏 해. 그래도 나는 당신을 마음 깊이 사랑해’ 아이딘의 나래이션이 깔린다.     


이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정리하기를 원하는 니할과 이어가기를 원하는 아이딘의 관계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아이딘이 인내심을 발휘하여 니할이 하는 모든 것을 방관하며 자유롭게 둘 수 있을까? 그러면 니할의 마음은 돌아설까?     


아이딘의 논리에 따르자면 ‘나는 잘못이 없다. 신이 이렇게 만든 세상이고 아버지에게 돈을 물려 받았을 뿐인데 왜 나를 죄인으로 만드는가?’ 라며 억울해한다.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아이딘의 삶은 외롭고 주변에 사람이 없다. 그는 때로 익명으로 기부도 하고 부인을 편하게 두지만 상대방은 아이딘을 좋게 보지 않는다.  

   

부자들에 대한 시선은 어딜 가나 좋지 않다. 그 시선의 이면에는 어떤 심리가 도사리고 있는걸까? 아이딘의 설파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이딘은 25년간 열심히 배우 역할을 감당해냈고 집사겸 운전수를 고용해 도움을 받고 있다. 부인과는 그 어떤 따뜻한 교감도 나누지 못하고 있다.   

  

그는 글 쓰는 것에 기댄다. 지역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터키연극의 역사’라는 작품을 쓰기 위해 연구하고 자료를 모으는 것에 자신의 삶을 내어준다. 출처가 애매한 채로 돈이 사용되어지는 것을 싫어하고 주변의 일들이 큰 갈등 없이 잘 해결되길 바란다. 전면에 나서서 일을 망치거나 자신이 있는 것을 티 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을 하지 않고 집세를 내지 않으며 변명을 일삼는 세입자 가족들, 기부자들의 영수증을 전혀 정리하지 않고 일을 벌이는 부인, 남편은 모른 채 지역 인사들을 초대해 자선모금을 하려는 부인을 그냥 두고 볼 수 있을까?     

유독 추운 계절의 바깥 풍경과, 눈발 날리는 도로, 길 위에 쓰러져 죽어있는 개, 앙상한 나뭇가지에 위태롭게 앉아있는 새, 총알에 맞아 눈밭에 누워있는 토끼등이 아이딘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 스산하다.    

  

큰 잘못 없이 일상을 살고자 하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는 주변 사람들의 소란과 비난이 아이딘에게는 버거워 보인다. 3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이지만 대사 하나하나가 디테일하고 예리해 넋을 잃고 듣다 보니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겨울만큼이나 차가운 그들의 관계는 언제쯤 해빙의 봄을 맞을까?


표지 일러스트: JUNE / 이미지출처: Pinteres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