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에 이런 곳이
‘르네블루 바이 워커힐 Rene Bleu by Walkerhill’
숙소 하나만 믿고 달려갔다. 딸이 운전하니 바깥 풍경을 맘껏 볼 수 있어 좋았다. 폭염일 줄 알았는데 다행히 날이 흐려 힘들지 않았다. 황태 삼합이 있는 ‘최가’ 식당으로 갔다. 이전에 대명콘도라 불리던 델피노 바로 밑에 있는 식당이다. 나는 4년간 속초에 살면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아이들 데리고 속초를 그렇게 여러 번 갔었는데 그때는 울산바위가, 설악산이 그렇게 웅장하고 멋있는 줄 몰랐다. 아이들 키우고 직장생활 하느라 허리 한번 못 펴서 그런걸까? 왜 똑같은 풍경이 이리도 다르게 다가오는 걸까?
지금은 퇴임해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그런걸까? ‘내가 이렇게 멋진 곳에서 살았었구나.’ 풍경이 마술을 부린 듯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 황태삼합은 황태코다리, 더덕구이, 제육볶음이 한 그릇에 푸짐하게 나오는 거였다. 더불어 오징어순대, 순두부도 함께 시켜 푸짐히 먹었다.
고성으로 본격적으로 가보자. ‘르네블루 바이 워커힐’. 어떤 곳일까? 여자들은 숙소에 대한 기대가 높다. 숙소가 좋으면 다른 것들이 별로라도 만족도가 높다. 그러나 숙소가 기대에 못 미치면 마음이 힘들어진다. 겉모습은 불합격, 주차할 때까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여기저기 페인트도 벗겨지고 관리를 잘 안 하는 인상을 받았다. ‘아, 잘못왔나? 왜 이렇게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
그러나 체크인하러 간 로비에서부터 생각은 달라졌다. 바다가 한껏 보이는 넓디 너른 로비를 보고 있자니 속이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다. 더구나 복잡해지는 게 싫어 방을 두 개 잡았다. 딸들이 한 방을 쓰고 또 다른 방 하나를 내가 썼다. 조용하고 번잡스럽지 않아 좋았다.
무조건 백사장을 걸어 바다로 향했다. 고운 모래, 잔잔한 바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해수욕장이 아니다 보니 조용하고 깨끗했다. 수상안전요원이 없어 해수욕이 불가하다는 팻말이 보이는 걸 보니 바다가 깊은가보다. 우리는 최대한 안전하게 해변가 가까운 곳으로 해서 나는 맨발로, 딸들은 슬리퍼를 신고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여기도 지난번 강릉 ‘강문해변’만큼 끝을 알 수가 없었다. 조금 있으니 사위가 어두워진다.
노을은 왜 이렇게 마음을 어루만지는지, 주변 건물 없이 오롯이 노을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 숙소 외에는 높고 큰 건물이 없다. 밤에 보니 건물이 운치 있었다. 안전한 숙소 앞 조용한 해변가에서 걷고 있자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더는 앞사람이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걷다가 숙소로 들어왔다.
다음날, 새벽 5시 반 암막 커튼을 걷으니 믿을 수 없을 만큼 멋진 바다가 앞에 펼쳐진다.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데도 믿어지지 않는 하늘과 바다. 역시 바다 만한 것이 없다. ‘그래, 이걸 보려고 왔지.’ 서둘러 딸들과 아침 식사를 한다. 조식도 바다를 보면서 즐긴다. 종류가 많지는 않아도 퀄리티가 좋아 먹는 내내 행복했다. 디저트까지 여유있게 먹고 다시 채비를 하고 바다로 향한다.
우연히 셋이 모두 원피스를 입었다. 바다에 들어갈 마음은 없지만 막상 바다 앞에 서면 자꾸 충동이 인다. ‘확 들어가버려? 그 이후에는? 젖은 옷은?’ 여자들은 생각할 것이 많다. 바다를 보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속이 환히 들여다보인다. 꽤 큰 꽃게가 옆으로 걸어간다. 딸은 꽃게를 잡겠다고 초 집중이다. 아픈 것이 싹 낫는 기분이다. 뜨거운 태양이 비췄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치마끝을 말아 잡고 우리는 허벅지까지 닿도록 바다로 들어갔다. 나는 더구나 맨발이니 얼마나 시원하고 기분이 좋은지.
위는 뜨겁고 밑은 차갑고 반신욕을 반대로 했다. 천천히 앞으로 계속 걸었다. 머리 속 잡념은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바다와 하늘과 나만 지구상에 있는 듯 행복했다. 바다 속을 걸으니 자연과 하나 된 듯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순간에 집중하게 되고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딸들은 자주 볼 수 없는 광경에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딸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면 참으로 행복하다. ‘그래, 이러려고 온거지.’ 딸들이 사진을 몇만장을 찍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둔다. “얘들아, 그만하고 바다 봐” 이런 잔소리는 하지 않기로 한다. 바다와 아낌없이 실컷 놀고 이제 고성 시내로 가본다. ‘도자기 별’이라는 기념품 샵에 갔다. 기념품 사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자들이 좋아할 아이템들이 한 가득이다. 특징있고 매력있다. 총 8종류의 물건을 플렉스했다. 아이들이 좋아라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들떴다. 집안 한 켠에 놓고 두고 두고 보고 싶은 마음에 몇 가지 사본다.
딸이 ‘긷’이라는 카페로 우리를 이끈다. 울산바위뷰다. 인기있는 시그니처 메뉴가 ‘울산바위’다. 흑임자를 많이 올리고 다른 것들도 토핑되어 울산바위를 제대로 표현했는데 맛도 좋다. 카페가 하나의 예술품같이 아름답고 멋스러웠다. 앉아서 여유롭게 옥수수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맛보고 있으니 울산바위가 새롭게 다가온다.
수없이 보아온 산인데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생소하다. 누구와 보느냐, 어디서 보느냐도 중요한가보다. 멋진 카페에서 딸들과 바라보고 있노라니 천국의 한 자락에 앉아 있는 듯 행복감이 밀려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풍경에 감탄하며 동영상을 찍고 있는 딸들을 보니 행복이 배가 되었다.
고성, 가볼만하다. 송지호 해수욕장은 조용히 바다를 만끽하기 좋고 카페 ‘긷’은 울산바위를 고즈넉이 바라보기 좋은 곳이다. 큰 기대하지 않고 떠난 고성, 숙소와 바다와 맛집들이 어우러져 우리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