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는 모든 것이 크고 넓다. 멀고 길고 복잡하고 많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북적이고 화려한 볼거리들이 많다. 식당과 카페와 먹거리들로 넘쳐난다. 밤에 야경을 보면 이 끝이 어디인가? 궁금해지며 순간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마치 영원의 길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 부부가 추구하는 여행은 자유여행이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가기도 하지만 암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하나 있으니 자유여행 속의 자유여행. 버스 타고 아무 역에나 내려서 돌아다녀보는거다. 누가 들으면 위험하다고도 하겠지만 아직은 별탈 없이 감행하고 있다. 예전에 홍콩에 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계획형인 나와 달리 즉흥적으로 재미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남편의 제안에 따라 아무 버스나 타고 지하철 부근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슬렁슬렁 시장 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시장 안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손발 동원해 음식을 주문해 먹어보기도 했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우리를 신기해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한국인의 모습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
상해에서도 인민광장 버스 정류장에서 다소 노선이 긴 버스를 골라 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한문도 간자체라 읽을 수가 없다. 지하철과 달리 밖의 풍경을 볼 수 있어 좋다. 중심가에서 멀어질수록 확연히 빌딩의 높이가 달라진다. 인구밀도도 달라진다. 비로소 사람 사는 동네가 나오기 시작한다. 높은 건물이 띄엄띄엄 나타나면서 주거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동네 주변에는 끝도 없는 상권이 형성돼 있다.
남편과 나는 눈짓으로 이쯤에서 내리자고 합의를 보았다. 어느 역에서 내렸는지 알 수 없다. 내려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세대주택과도 같은 건물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상가가 줄을 지어 서 있다. 마침 저녁 어스름이라 퇴근한 사람들이 시장에 들러 야채와 고기 등 먹을 거리를 주렁주렁 들고 가는 것이 보였다. 작은 시장도 있어 들러보았다. 온갖 물건들을 구비한 상점들이 즐비하다.
이보다 더 재미있는 관광지가 있을까? 마치 시장에 엄마 따라 처음으로 구경나온 어린아이들처럼 눈을 굴리며 구경하느라 바빴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사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우리와 같은 것은 무엇이고 또 다른 것은 무엇인가? 다른 점과 같은 점을 생각하고 비교해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고 또 걸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주택과 상가의 모습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고 이제 그만 가자고 남편이 말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식당이 많아 먹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어느 식당으로 들어가느냐이다. 깨끗하고 맛도 좋아야 하는데 그런 식당이 있을까? 여러 곳이 있었지만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끌리는 음식도 없었고 위생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깔끔해 보이는 식당이 하나 있었다.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어김없이 알리페이로 주문하는 시스템이었다. 화면에 이상한 것이 뜨면서 주문이 되지 않았다. 주인을 불러 물어보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주인이 갑자기 여러 개의 핸드폰 중 하나를 골라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고 나를 바꿔준다.
“여보세요?”
“아, 네. 알리페이가 잘 안 돼서요. 현금으로 지불해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지금 정리해보면 대화가 간단하지만 그 당시에 우리는 많이 긴장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도와주고 있다는 거다. 전화 속 한국인은 우리와 대화하고 주인과 대화해서 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현금으로 결재해도 된다고 통역을 해주었다. 그 한국인이 누구인지 물어보지는 못했다.
세 가지 메뉴를 시킬 수 있었다. 생선튀김과 춘권 그리고 국물 요리 하나를 주문하고 맛보았다. 허기를 면할 수 있을 정도로 먹고 있는데 주인이 계속 번역기를 돌려 우리에게 한국말로 무언가를 얘기해준다.
‘반찬이 무료이니 얼마든지 가져다 드세요’
‘이 소스는 생선 요리에 찍어 드세요’
등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도중에 핸드폰을 쓱 내밀었다. 남편은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는지 번역기에
‘음식도 맛있지만 사장님의 친절함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맛있게 먹고 갑니다.’라고 입력했다. 사장님에게 보여주니 싱글벙글한다. 기분 좋은 악수를 나누고 식당을 나왔다.
왜 이런 에피소드는 마음을 간질이는 것일까? 체인으로 된 식당에서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아무런 소통이나 교감 없이 식사를 하고 값을 치르고 나올 때와 다르다. 스토리가 있는 식사. 주문에 문제가 있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고 겨우 밥을 먹고 나오는 평범한 이야기. 낯선 나라에서는 기본적인 것들도 이야기 거리가 된다. ‘이런 것이 진짜 여행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곳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낀다. 조금은 다른 모습이지만 알고 보면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같은 달을 바라보는 인간일 뿐이다. 우리보다 많이 큰 나라 중국에서 마음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