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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여행기
【두려움은 즐거움으로】

by 글로

음식에 대한 터부가 있어 떠나기 전부터 걱정을 했다. 예전에 중국 베이징에서 북경오리를 한 입도 못 먹고 뱉었던 기억이 있다. 호텔 조식 뷔페에서도 먹을 것이 없어 볶은 땅콩과 죽만 먹었다. 상하이에 간다고 할 때 음식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식이 되어 버린 인기 있는 마라탕도 선호하지 않는다.


상하이에서 뭔가를 먹고 싶다라든가 어느 맛집을 가야 한다는 로망이 없다. 인기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고 하니 나 같은 디지털 문맹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장벽을 과감히 깬 첫 끼니는 남경동루 어느 로컬 식당에서 시작되었다. 깨끗한 곳은 아니었다. 손님이 많아 불안을 떨치고 들어갔다. 국물요리와 샤오롱바오, 만두를 시켰다. 웬걸 입맛에 맞다. 이렇게 만두 하나도 쉽게 시도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 내가 여행을 다니는 것이 가끔은 신기하다.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았다. 고기 요리는 엄두가 나질 않아 새우로 만든 요리를 주문했는데 입맛에 딱 맞았다. ‘그래! 이런 요리들을 주문하면 되겠구나.’ 한시름 놓였다.



다음 식당에서도 겁을 떨치고 여러 가지 요리를 주문했다. 동파육도 시키고 다른 종류의 만두도 시켰다. 야채나, 파, 부추가 많이 들어간 만두 종류를 시켰다. 역시나 입맛에 맞았다. 동파육과 청경채가 같이 나오는 밥 요리였다. 남경시루에서 한참을 걸어 로컬집들이 혹시 나올까 싶어 깊숙이 걸어들어 간 곳이었다. 테이블이 꽉 찼는데 한국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벽에는 독특한 중국 민화들이 걸려있고 시끌벅적한 로컬들의 분식집 느낌이다. 식당 앞에는 초등학교가 있었고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동파육을 한 입 맛본 순간, ‘아! 이 집 음식 잘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남편이 주문한 밥 요리와 만두도 성공이다. 자신감이 붙었다. ‘먹는 것 때문에 힘들 일은 없겠구나!’ 오히려 모험심이 생겼다. 빨간 국물만 피하면 된다. 이것저것 시켜서 먹어보았다. 로컬식당에서 현지인들이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관광지 못지 않은 재미가 있다. 관광지에서 사람 구경 밖에 더 하겠는가? 식당에서 서민들이 무얼 먹고 사는지 보는 것이 왜 그리 재미있는지, 우리야말로 진정한 여행가라는 기분에 남편과 저렴한 음식을 먹으면서 만족도는 최상이었다.


그렇게 한 그릇씩 먹고 나오면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둘만이 대단한 비밀을 간직한 것처럼 묘한 동지애가 생긴다. 배를 채우고 우리는 정안사로 향했다. 사찰 전체에 금을 칠했다는 유명한 ‘정안사’. 가운데 탑이 서 있는데,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사람들이 동전을 힘껏 던지고 있다. 몇 단의 탑이 있고 그 탑에 동전이 올려지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내가 던진 건지 남이 던진 건지 모르는 동전을 바닥에서 열심히 주워 던지고 또 던진다. 꽤 많은 동전들이 올려져있다.


정안사를 보러 갔는데 뜻밖의 볼거리가 있었다. 절 앞에 있는 ‘정안공원’으로 향했다. 낯선 소리들이 여기 저기서 들린다. 가까이 가보니 톱으로 연주를 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 앞에는 자기 멋에 겨워 춤을 추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이들은 서로 친밀한 듯 보였다. 음악과 춤을 즐기는 서민들이 공원에 나와 사교를 하는 것이다. 모여서 얘기하고 연주도 하고 춤도 춘다. 날씨도 시원하고 분위기는 평화롭고 볼거리가 많았다. 책에 나오는 유명한 관광지보다 이곳에서 더 진정한 중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강강술래처럼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관광객과 춤을 추기도 하고 서로 손을 잡고 돌리며 원을 그리기도 하니 보기만 해도 재미있고 신이 났다. 막연히 생각하던 중국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도 나름의 삶을 살고 있구나!’ 와서 눈으로 보니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은 자유여행 하기 힘든 나라라는 선입견 때문에 걱정 보따리를 안고 왔는데 공원에서 일반 서민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무장해제 되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둥그렇게 서서 재기를 차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의 재기차기는 혼자 연속적으로 차는 놀이로 알고 있다. 여기서는 자세히 보니 재기가 아니라 배드민턴 셔틀콕 같은 것인데 크기가 두 배 정도 되어 보였다.

7, 8명 정도가 이 셔틀콕을 주고받으며 차고 있었다. 제일 가까운 사람이 손이든 발을 써서 토스하는 것이다. 편이 나눠져 있는 건 아니고 살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공원에 오래 머물렀는데 그들도 오랫동안 그 놀이 겸 운동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볼거리였다. 공 하나만 있으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 듯이 어른들이 셔틀콕 하나만 있으면 1시간 넘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 호텔인 그랜드센트럴 호텔 부근의 식당을 소개하고 싶다. 이 호텔이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호텔인 것은 다녀오고 나서 알았다. 가성비가 좋다. 어느 나라 황후마마 부럽지 않은 넓은 객실을 자랑한다. 부근의 식당을 알아보고 그 어렵다는 고덕지도를 참고해 식당에 일찍 찾아갔다. 과연 오른쪽 테이블도 한국인이요, 왼쪽 테이블도 한국인이었다. 나중에 사람들이 들어차자 중국어와 한국어가 섞이게 되었다. 그 정도로 이 식당도 한국인에게 인기가 있다.



세 개의 메뉴를 주문했다. 중국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 가라앉기는 했지만 이 식당은 어떨지 몰라 반신반의하며 먹고 싶은 메뉴를 골랐다. 볶음밥은 기본으로 고르고 나머지는 가지요리와 마파두부를 시켰다. 마파두부를 좋아하는데 어떤 맛이 나올지 궁금했다. 맵지 않게 해달라고 직원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잠시 후 세 개의 음식이 연달아 우리 앞에 놓였다. 볶음밥을 먹어보았다.


다른 집과 달랐다. 푸슬푸슬하지 않고 쫀득쫀득한 것이 먹기 좋았다. 다음은 마파두부. 지금까지 먹어본 마파두부 중 최고였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홍콩음식 전문점에 가서 먹어본 비싼 마파두부보다 훨씬 맛있었다. ‘아! 이것이 마파두부지’ 오리지널의 맛을 본듯하다. 마지막으로 ‘가지요리’는 가지를 살짝 튀긴 것에 간장소스를 버무린 맛인데 식감이 대단했다. 이 세 가지 요리는 합쳐서 정확히 우리 돈으로 15,000원이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저렴하고 맛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사실 음식에 대한 터부는 이미 치앙마이에서 깨졌다. 생전 먹어보지 못한 요리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즐거움이 생겼다. 상하이도 마찬가지였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맛보지 못했을 소중한 요리들이 이렇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두려움을 버리고 용기를 내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어디 음식 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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