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둘 중 하나가 없으면
◕ 여덟 개의 산 ◔

The eight mountains

by 글로

감독: 펠릭스 반 그뢰닝엔

주연: 루카 마리넬리


75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2022)

산꼭대기 정상이 좋을까? 아니면 밑에 여덟 개의 산을 돌아다니는 것이 좋을까? 그 중심에 서지 못하는 나는 오늘도 여덟 개의 산을 돌아다닌다.

피에트로와 브루노는 어린 시절 산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둘도 없이 친하고 없어서는 안될 친구. 브루노의 아버지는 아들을 돌보지 않는다. 피에트로는 여름에 산에 있는 별장에서 아빠와 함께 휴가를 지내는데 거기에서 브루노를 만난다. 산으로 들로 호수로 뛰어다니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피에트로의 아버지는 둘을 데리고 산에 자주 간다.

아버지는 죽고 둘은 성인이 된다. 도시에서 셰프가 된 피에트로는 가끔 브루노에게 놀러간다. 피에트로의 동료와 브루노가 결혼한다. 농장을 운영하고 아이가 태어난다. 피에트로는 네팔로 떠난다. 알프스에 이어 이번에는 히말라야다. 네팔에서 초등학교 교사 여자친구도 만난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언제나 브루노와 알프스 산에 가 있다.


브루노는 피에트로 아버지의 뜻을 기리며 산에 집을 짓고 싶어한다. 둘의 영혼의 휴식처가 될 집. 산에 집을 짓기 위해서는 평지에서 짓는 집의 몇 배의 노동이 필요한 걸까? 노새에 짐을 싣고 둘은 산으로 떠난다. 나무를 올려 지붕을 만들고 벽돌을 쌓아 올린다. 창문이 달리고 페치카를 만든다.


브루노와 산과 그 집을 중심으로 두고 피에트로는 여기저기를 방황하며 헤매다닌다. 그러나 어김없이 브루노와 산으로 돌아온다. 브루노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 아내와 그 문제로 싸우는 것을 보게 되고 돕고 싶지만 브루노가 거절한다.




다시 네팔로 떠나는 피에트로. 서로 연락하지 않는다. 그대로 우정의 끈이 끊어지나 싶지만 그렇지 않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산으로 브루노를 찾아 눈밭을 걷는 피에트로와 스키를 타며 내려오는 브루노.

아이와 아내는 처가로 떠나고 브루노는 산속 그 집에서 혼자 지낸다. 들짐승을 잡아 식사를 하고 산속에 몸도 마음도 그대로 파묻혀 자연인으로 산다. 그에게 필요한 건 오직 산이라는 듯이. 생활을 모르고 돈을 모른다고. 그냥 소나 몇 마리 키우며 살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아이를 볼 수 있는 날은 언제일지 모르고 해결할 마땅한 수도 없다.


눈이 많이 온 겨울 브루노의 사촌은 그 집이 걱정되어 헬기를 띄운다. 브루노의 집은 눈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는다. 수색대가 집으로 들어갔지만 브루노는 어디에도 없다. 까마귀들이 눈 밭에서 무언가를 쪼아댄다. 그렇게 브루노는 떠나고 이제 둘 중 하나인 피에트로만 남았다. 둘 중 하나가 없어졌는데 이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만큼 브루노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브루노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선명하다. 특히나 자연과 함께 그 속에서 순수하게 뛰놀았던 사람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 영화는 산이 주인공이다. 깍아지른듯한 아슬아슬한 산 위를 어린 두 소년이 걷는다. 성인이 된 두 남자도 걷는다. 브루노는 산을 지키고 피에트로는 그 주변을 맴돌며 떠돈다. 삶의 중심이던 브루노를 잃고 이제 피에트로는 어떻게 살아갈까? 브루노가 없는 산은 피에트로에게 무슨 의미일까?

산만 있으면 혼자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브루노는 속세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침에 소젖을 짜려고 일어나면 아내와 아기가 자고 있다고. 그 순간이 제일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동시에 자신은 누군가를 돌볼 사람이 못 된다고도 말한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브루노는 최선을 다해 일하고 아내와 아기를 사랑했지만 끝내 그 둘을 지키지 못했다. 자연으로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결과다. 결국 브루노에게는 자연만이 남았고 그는 산의 품에 안겼다. 산과 하나가 된 브루노, 주변을 맴돌았던 피에트로. 둘은 하나같지만 둘이었고 둘이었지만 또 하나였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져 있는 두 사람.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함께였던 두 친구. 요즘 보기 드문 내용의 영화다. 설산도 아름답고 산 속의 집도 아름답다. 만찬못지 않은 산 속의 소박한 식사도 목가적으로 보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은데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는걸까?

무엇하나 인위적이지 않은 장면 하나 하나가 마음을 애잔하게 만든다. 물레방아를 돌려 전기를 얻는 아주 오래전 방식의 집. 온통 보이는 건 골짜기와 나무 뿐인 산에서의 아침과 저녁, 그리고 밤. 최소한의 불빛으로 서로를 비춰주는 두 친구. 자연스러운 영화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8화눈처럼 쌓이는 불행들 ◕ 아이카 AYK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