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감독: 요아킴 트리에, 주연: 레나테 레인스베
74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2021)
율리아는 서점에서 일하고 악셀과 오슬로에서 동거한다. 그러나 파티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악셀에게 이별을 고한다.
“내 인생인데 조연역할을 하는 것 같아. 사랑하는데 사랑하지 않아. 내 인생을 구경만 하는 기분이야”
“너가 괴짜라서 좋았어, 아이가 없어도 좋으니 너랑 함께 하는 것이 좋아”
악셀과 말다툼과 사랑나누기를 끝으로 둘은 헤어진다. 율리아는 거리로 나와 에이빈드에게로 달려간다. 베이커리 카페로 가는 길 모든 사람들이 정지해있다. 움직이는 건 오직 율리아뿐.
새로운 연인 에이빈드와 함께 하는 시간은 행복하다. 친구들과 마약 버섯을 맛보는데 천연마약의 일종인듯하다. 그녀가 서 있는 바닥이 꺼지고 발가벗겨지고 늙고 뚱뚱한 늘어진 살을 갖게 된다. 얼굴에 빨간 칠을 하고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이 서 있다. 묘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마약한 사람들의 눈에 비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는 정지화면과 마약 후 정신상태장면이 나온는데 이러한 장면들이 압권이다. 어느 날 피트니스센터에 간 율리아는 TV에 나온 악셀을 본다. 그의 만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다른 여자 패널이 그의 만화에 나오는 여성폄하적인 장면들을 불쾌하다며 문제삼는다. 악셀은 기분 나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며, 왜 예술이 꼭 기분이 좋아야하냐며 따진다.
“용납 안되는 생각들과 비밀스러운 충동들까지 마음껏 표현하고 보여주고 싶어요”
악셀이 췌장암에 걸렸다. 악셀과 율리아가 나누는 대화들이 인상깊다.
“나는 인터넷과 핸드폰이 없던 시대에 어린시절을 보냈잖아.
내가 알던 시대가 사라져가는거야. 옛날에는 트램타고 음반가게에 갔거든.
내가 어렸을 때는 말이야, 문화는 물건으로 전해지는 거였거든”
그때가 좋았다고, 암으로 죽어가니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는 악셀.
율리아는 에이빈드와 동거 중 임신했는데 아이를 원하는지 확신이 없다. 에이빈드와 헤어진다.
율리아는 악셀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악셀은 너한테 추억으로 남는것도, 목소리로 남는 것도, 작품으로 남는것도 싫다고 말한다.
상태가 안 좋아지고 아픈게 지긋지긋하다고 고백한다. 집에 가고 싶다고 애절한 마음을 전한다.
“너와 살고 싶어, 행복하고 싶어”
율리아와 악셀과 에이빈드는 사랑하고 헤어진다. 그리고 다시 만난다. 한때 사랑했지만 서로의 추구하는 점이 달라 각자의 길을 간다. 임신까지 했지만 그마저도 둘을 커플로 묶어두지 못한다. 심한 질병은 악셀과 율리아를 다시 만나게 하지만 미래가 없는 만남은 그들에게 허무함만 남긴다. 그러나 함께 얘기하고 웃고 사진을 찍어주는 행위들이 마냥 의미가 없는 것일까?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 추억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남고 싶은 사람. 악셀에게 율리아는 그런 연인이었다.
사랑이든 성공이든 노력만으로는 안되는 것일까? 주변조건이나 타이밍이 중요한듯하다. 율리아는 어렸고 악셀은 아이를 원했다. 다른 연인 에이빈드와 만나 임신했지만 이 또한 율리아에게는 타이밍이 좋지 않다. 율리아가 궁극으로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두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 그녀의 마음이 변하고 조건이 변하고 그녀는 누구도 내면 깊은 곳에 들이지 않는다. 누구의 깊은 개입도 두려워하는 그녀는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한다.
마지막으로 치닫는 악셀 또한 자신의 처지가 어떤지 알지만 내면의 소리를 고백한다. 율리아와 함께 있고 싶고 함께 행복하고 싶다고 처연하게 말한다. 두려운 순간을 함께 마주하고 싶은 사람은 율리아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할 땐 최악이 된다.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할까? 최악의 모습을 보인 사람은 없다. 약간의 애원과 조금의 집착정도는 허락되지 않을까? 진심은 비난받아야할 이유가 없다. 여기서 최악인 사람은 없다. 다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다른 연인을 찾아 행복하게 질주하는 율리아, 최악의 아픈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하는 악셀, 둘 다 최선의 삶을 선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