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ancholia
라스폰 트리에 감독, 커스틴 던스트 주연
제 64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2011)
케잌 커팅식에 나타나지 않는 신부를 기다리는 하객들은 지쳐있다.
신랑은 커팅용 나이프를 손에 쥐고 초조히 기다린다. 신부는 왠일인지 태연히 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대저택에서 열린 화려한 결혼피로연, 밤이 이슥하고 하객들은 저마다 피로연을 즐기며 먹고 춤춘다.
1장 저스틴 2장 클레어로 이루어진 영화는 두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저스틴은 갓 결혼한 신부로 우울증을 앓고 있다. 화려한 웨딩드레스에 알 수 없는 온갖 검고 잿빛인 식물들이 얽혀있다. 그녀를 옭아매고 있는 어지럽고 불안한 그림자들이다.
대저택 정원 앞으로 달이 떠오르고 달빛에 서 있는 사람들, 정원에 놓인 망원경으로 밤하늘 찬란한 별들을 감상한다.
가끔 저스틴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한다. 첫날밤 신랑을 거부하고 난데없이 정원에서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는다. 말없이 지켜본 신랑은 자신의 부모와 저택을 떠난다. 잘 끝낼 수도 있었는데 하며 아쉬워하는 말을 남기고 저스틴과 작별한다.
가끔은 너가 죽도록 밉다는 언니 클레어는 평범하고 이성적인 여자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동생을 집에 들여 돌본다. 목욕부터 식사, 잠자리까지 모든 것을 세심히 살핀다. 식탁에 앉아 한입 뜨는 둥 마는 둥 하는 저스틴
담뱃재를 먹는거같아!
숟가락을 놓는다. 침대에 눕는다.
이들에게는 더 큰 문제가 있다. 멜랑콜리아 행성이 곧 지구와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다. 소문인지 사실인지 기다려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클레어의 남편 조는 그럴 리 없다며 가족을 안심시킨다. 조악한 기구로 멜랑콜리아가 지구로 다가오는지 측정해본다. 막대에 철사를 구부려 원을 만들고 하늘에 대본다. 다가오는 행성이 원안에 들어있다. 5분 후 다시 대어보니 작아져 있다. 이제 멜랑콜리아가 지구에서 멀어져 간다고 마음 놓는다.
하룻밤 편히 자고 일어난 다음날, 존이 마굿간에서 쓰러져 죽어있다. 짚으로 남편의 온 몸을 덮는 클레어. 다시 원을 하늘에 대어본다. 원보다 훨씬 커져 있다. 멜랑콜리아가 지구를 향해 정면으로 다가오고 있다. 평정심을 잃은 클레어는 아들과 저스틴을 깨운다. 안절 부절,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 차에 탄다. 차 두 대가 모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작은 카트를 타고 마을로 가려하지만 왠지 카트도 정지해버린다. 우박까지 내려 오도 가도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행성과 지구가 부딪친다는 것을 어린 아들도 알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냐고 묻자 이모인 저스틴은 말한다. 마법의 동굴이 있다고.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모아 삼각뿔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셋은 들어가 앉는다. 멜랑콜리아는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참히도, 자비란 없이 마법의 동굴로 부딪쳐 들어온다. 지구와 충돌하는 멜랑콜리아. 길게 이어지는 암전, 그리고 크레딧이 올라간다.
영화 전반부는 저스틴의 알 수 없는 행동들과 뭔지 모를 우울한 분위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멜랑콜리아의 충돌 소식을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본래 가지고 있던 우울증 때문일까? 신부의 표정이 밝지 않다.
간혹 들리는 행성 충돌 소식은 막연한 얘기로만 생각되어졌는데 영화를 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수 많은 행성들이 우주에 떠 움직이는데 충돌가능성이 있겠구나. 지구 안의 일들로 복잡한 우리는 지구 밖 소식은 저 멀리 우주에서 벌어지는 까마득한 일이라 여기고 있었구나'.
지구의 생명체는 악하다는, 우주에는 우리뿐이라는 저스틴의 말이 스쳐지나가지 않는다. 의구심이 든다. ‘우리가 악한 존재인가? 지구는 악한 생명체가 들끓는 오염된 공간인가?’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리를 채운다. 감독이 각본도 썼으니 라스폰 트리에의 개인적인 생각이리라. 우주에는 우리뿐이라는 것 또한 사실인지 아닌지조차 우리는 알 수 없다. 끊임없이 다른 행성과의 교신을 시도하지만 얻어낸 것은 미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구 내에서의 소통에 성공한 지구인들은 이제 다른 행성과의 소통에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인다. 얼마나 걸릴까? 성공할 수 있을까? 지구 안에 있는 인간들끼리의 이해와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아 늘 헤매기 일쑤인데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행성에 있는 존재와 소통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른 행성과 충돌한다면 결말이 뻔하지만 만약 다른 행성의 존재와 교신이 된다면 그 결말은 어떤 모습일까? 긴 시간 속 짧은 생을 살다가는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움직이는 행성의 궤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까?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이 있을까?
우주에서 벌어지는 행성의 움직임과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심리를 버무려 신비로움을 더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나약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핸즈핼드(Hands held) 방식으로 인물들을 카메라가 가까이 따라가며 촬영해 더 생생하고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밤하늘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만드는 영화다. 결혼과 가족과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생이 얼마나 찰나 같으며 또한 찬란한지에 대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