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개인이 방송채널을 만들어 진행하는 시대다. 정규방송보다 종방이 더 인기 있다. 넷플렉스에 들어가면 자신이 좋아하는 성향의 프로그램을 마음껏 골라볼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20년 전 오로지 TV프로그램만 있던 시절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특별한 재주가 있거나 특출난 사람들, 연예인들만 TV에 나올 수 있었다. 온 동네에 소문이 나고 유명인이 되는 지름길은 TV에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잘 나오던 사람이 안 나오면 금방 잊혀지고 ‘아! 인기가 떨어졌구나, 수명을 다 했네’ 라고 간단히 판단하던 시대가 있었다. 유명해지려면 TV에 나가야하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감히 나와 같은 일반인이 TV에 출연한다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 시절 나는 왜 그렇게 무모했을까? 그 피는 아직도 몸속에 도도히 흐르고 있다. 20년 전 영어교사가 유학가는 일이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것도 속칭 아이까지 있는 엄마가 혼자 유학을 간다. 남자들이 간다고 하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엄마가 유학을 혼자 간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정신적으로 지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특이하네, 꼭 그렇게 해야해? 유난을 떤다’라고 욕먹기 좋다. 그래도 모두 무시하고 내 꿈을 쫓아갔다. 마음이 내는 소리에 충실했다. 그때 떠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해소하지 못한 욕망은 그대로 불만으로 쌓여 삶을 좀 먹었을 것이다. 마음에 곰팡이가 피어 서서히 병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속병이 나서 일상생활을 좀비처럼 했을 것이다. 평범한 가정, 안정적인 일터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다른 나라의 삶이 궁금했고 여행으로는 턱없이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있었다. 길고긴 준비를 마치고 유학길에 오른다. 겁 많은 쫄보인 내게 어디서 그런 용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던건지. 내 안에 있는 나인데 이해하기 힘들다. 설명할 수 없는 나만의 도전 의식이 좋기도 하고 때로는 힘들기도 하다.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니, 호주에서의 생활을 녹화해두자’ 라고 생각하고 캠코더를 가지고 갔었다. 호주에 가기 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즐겨보던 프로가 있다. ‘KBS 1TV –세상은 넓다’라는 프로가 있다. 일반 시청자들이 자신들이 여행한 곳을 촬영해 스튜디오에 나와 인상 깊었던 일이나, 장면에 대해 설명하는 프로였다.
가끔은 여행전문가들이 출연하기도 하고 때로는 프로듀서들이 또는 유학생, 현직교사들, 사업가 등등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남들이 모르거나 많이 가보지 못한 곳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멜번에 있는 ‘소버린 힐’을 열심히 촬영했다. 남들은 구경하고 기념품 사고 즐기느라 정신이 없는데 꼴찌로 일행을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로만 따라가며 촬영했다.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니 기교를 부리거나 잘 찍을 리가 없었다. 손이 흔들리고 가는 곳마다 ‘촬영해도 되나요?’ 물어봐야 하는 절차를 거쳤다.
좋은 장면이 있어 열심히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관광객들이 등을 보이며 지나가고, 멋있는 장소를 촬영하고 싶은데 실례가 될까 봐 망설여지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다. 60분짜리 필름 한 개를 찍어놓고 대학원 겨울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 프로그램 사이트에 들어가 참가 신청을 해놓았다.
알아보니 1회 분량 (방송시간 약 10여분) 을 만들기 위해서는 테잎이 10개정도(600분) 필요하단다. 그런데 나는 달랑 테잎 한 개를 갖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촬영한 것이라면 편집을 조금만 하고 많은 부분을 그대로 방송해도 되겠지만 나는 초보자인 관계로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방송국에서 온 전화 한 통은 마치 달나라에서 온 전화라도 되는 양 신기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전화를 받고 바로 테잎을 보냈고 다시 전화가 오기만을 매일 기다렸다. 나흘이 지나 전화가 왔다.
역시 안 되겠다는 반응, 실망했지만 예상했던 일이라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친절하게 찍는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1학기에는 실패했다. 다른 장소를 찍는 것보다는 한번 찍었던 곳을 다시 시도해보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하고 일부러 ‘소버린 힐’을 다시 찾았다.
‘소버린 힐’은 야외 역사박물관이다. 1850년대의 금광마을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당시의 건물 60여채를 재현해놓았다. 직원들이 그 당시의 옷을 입고 있으며 관광객들은 사금을 채취하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다양한 볼거리, 놀거리, 체험할 거리들이 다양해 보는 재미가 있다. 처음과 달리 자세히 많이 찍었다. 테잎 여러 개 분량이 나올 정도로 찍은 다음 다시 방송국으로 보냈다. 약 2주일 후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합격이다. 방송국으로 가서 PD와 미팅을 하고 테잎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녹음 당일 사회자인 강수정아나운서, 안지환 아나운서를 만났다.
관객이 없어서 그런지 떨리지는 않았다. 간단한 대화와 중간 멘트를 녹음했다. 화면이 나갈 때 나오는 설명은 따로 녹음했다. 처음 해보는 거라 기계처럼 딱딱하게 읽었지만 내 목소리가 녹음되어 나온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아! 프로그램이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체험이다. 2004년 약 10분의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48만원의 출연료를 받았다. 그때 당시 내게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고 의미 있는 수입이었다. 어떻게 지출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늘을 날 듯 기분이 좋았다.
멜번에서의 유학생활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기분이 흐뭇했다. 파일로 만들어 두어 딸들에게 보여주니 그때 있지도 않던 둘째딸은 엄마의 젊은 모습을 보고 신기해한다. ‘저게 엄마가 맞아?’하고 계속 물어본다.
잊지 못할 추억을 또 하나 만들며 멜번에서의 유학생활이 영글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