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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득 Feb 10. 2023

실종된 꿈을 찾습니다

위기는 기회다


멋 모를때부터 유난히 성공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집안이 가난했다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다. 성공을 구체화하지 않은 채 이유 모를 성공을 갈구했다. 하지만 특기도 없었고 그저 노는 게 좋았던 나.


 관심사가 오직 운동이라서 자연스럽게 체육 쪽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세상 물정 몰랐던 학생이 뭘 알았겠나. 13살 아이에게 탁구 코치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 정도 하는 애들은 많아, 그리고 그 친구들은 적어도 너보다 5년 전에 시작했지. 넌 선수로는 좀...”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될 수 있던 말에도 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선수는 못해도 운동은 포기 못해’     


그 작은 소망조차 욕심이었던걸까. 


열아홉이 되던 겨울이었다. 학교 대항전의 축구시합에 선수로 출마했다.


승부욕에 불탄 학생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듯 서로의 몸을 부딪혀갔다. 과열된 경기가 진행되던 중, 나는 수비수를 제치고 골대 문 앞까지 왔다.


결정적인 순간, 있는 힘껏 슈팅을 했다, 비틀거리며 불안정한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무릎에서 ‘뚝’.


허벅지와 종아리가 다른 방향으로 비틀리며 동시에 망치로 무릎을 내려찍은 듯한 고통이 따라왔다.


 처음 느껴보는 아픔에 뜰 수 없던 눈은 어둠 속으로 날 밀어 넣었고 기절 직전까지 몰아갔다. 어떻게 응급실에 도착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십자인대 파열입니다. 완전히 파열되어 인공 인대를 심어야 하고,

 최소 1년간은... (중략) 더 운동을 했다가 최악의 경우엔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할 수도 있습니다”.     


믿기지 않던 의사의 진단에 말문이 막혔다.     


‘한두 달도 아니고 어떻게 운동을 1년 동안 못해? 그럼 나 대학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데?’   

  

통증은 문제가 아니었다.

운동은 내 삶에 열정을 느끼게 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사망선고라도 받은 듯 삐-하는 귓가의 느낌과 대조되게 움직이는 의사선생님의 입.


 잃어버린 꿈에 이를 악물었고, 이 와중에도 자존심은 있어 눈물 한 방울 보이고 싶지 않아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진료실을 나와 엘리베이터 속 거울의 나와 마주했다. 다리에는 깁스를 한 채 휠체어에 앉아있었고, 머리에는 잔디가 엉망진창으로 묻어있었다. 시뻘건 얼굴은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폭탄같았다.


그 때, 엄마의 손이 내 어깨에 조심스레 올라왔다. 울음을 참아내는 듯 떨림이 느껴졌던 그 손에 터질 듯 말 듯 했던 눈물은 걷잡을 수 없는 오열을 불러왔다.


 체대 간다는 애가 몸 관리 하나 제대로 못해 이 지경이 됐으니.. 불쌍했고 억울했고 한심했고, 분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집에 돌아온 후, 그 어떠한 것도 하지 않았다. 깁스 한 다리 때문에 엎드리지도 못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못 나간 지 한 달이 되자,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에 목발 짚고 천천히 다니면 괜찮다는 미친 소리를 해 엄마와 매일 싸웠다.


 나가지 못하면 베개와 벽을 주먹으로 치며 화풀이를 했고, 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걸 느꼈을 땐 흐느끼다 잠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 인생의 모토였던 ‘한 번뿐인 인생 멋있게, 하고 싶은 것 맘껏 하며 살자’가 뇌리를 스쳤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생산적인 것을 찾아봤다.


 그러다 우연히 집에 빼곡히 쌓여있는 엄마 책을 봤고, 가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책에 대한 즐거움과 지혜’를 전달하는 엄마의 표정이 인상 깊어 서점에 가봤다.     


그 당시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 ‘자유‘였기에 때문일까, 해외여행, 국내여행으로 구분되어 있어 해외여행 관련 책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서점을 학원 교재 외 목적으로 온 적이 없어 여행책이라면 당연히 여행 정보만 담겨있는 책일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봐보니 베스트셀러로 놓여 있는 책들은 여행을 갔다 와 누구나 자신이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솔직, 담백하게 쓴 ’여행 에세이’가 많았다.


 프롤로그와 목차만 봐도, 티비나 매체에서만 접했던 ’ 꿈‘같은 이야기들이 적혀있었다. 평소라면 눈길도 안 주던 게 책인데..


 ’여행‘이라는 한 단어를 두고 각자 다른 여행 루트와 생각들을 써 내려간 이야기들에 홀딱 빠져 오후 내내 서점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엔 이미 여행을 갔다 온 기분이었다. 꿈같은 이야기들 속에 내가 있는 상상을 하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서점을 떠난 후, 머릿속에서 책의 여운이 첫사랑처럼 떠나가질 않았다. 암담하고 피폐했던 삶 속에서 내가 이런 여행을 해본다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거라는 느낌.


 다음 날, 떠나기로 마음먹었고 오직 ‘나’를 위한 삶을 향해 첫걸음을 디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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