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
호주 워홀을 준비하며 상상했던 모습이 있었다.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놀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영어실력도 느는. 그것들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어학원을 찾아갔다.
학원에 들어가 수준 파악을 위한 시험을 봤다. 결과는 7개 클래스 중, 6번째. 꼴찌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한 번도 영어로 말하는 공부를 해본 적이 없으니, 예상했던 결과였고 별로 대수롭지도 않았다. 교실을 배정받아 그곳으로 향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내 눈앞에 웬 남미출신으로 보이는 애들이 노래를 틀고 자기들끼리 춤을 추며 놀고 있었다. 순간 ‘이게 뭐지? 학교 맞아?’ 당황해 교실로 들어가질 못하자, 그 무리 중 한 명이 악수를 건네며
“ Hi, you join here?”
“yes, here’s pre-intermediate class?”
“ yes, come on”
“what ur name?”
“ my name is ~”
.
.
들어오자마자 영어로 대화를 할 줄은 몰랐지만, 그도 나와 비슷한 수준이라 짧고 쉬운 영어 덕에 당황하지 않고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았다.
수업이 시작되었고 한국에서 받았던 수업과는 많이 다른 공부법을 볼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필기하며 입을 열 일이 없었던 한국에서의 공부가 아닌, 의자에서 일어나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거나 게임을 하며 말을 많이 하는 공부였다.
다행히 나는 평소 새로운 사람과 대화하는 걸 꺼려하지 않은 성격이라 금방 그 수업방식에 적응할 수 있었다.
또한 전에는 내 문법이 잘못됐거나 말이 이상하게 들릴까 봐 걱정이 많았는데, 이 교실 친구들은 나와 영어실력이 비슷하니 생각나는 대로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었다.
번역기를 사용하고 있어도 얌전히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교실 친구들과 놀 때 다른 반 친구들도 소개를 시켜줬고,
모두가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라 그런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자 내 영어에 피드백을 주면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덕에 유창하진 않지만, 적어도 일상생활하며 함께 어울리는데 에는 문제없이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자연스레 호주 생활에 자신감도 올랐다.
하지만 어학원에는 영어보다 더 값진 것들을 얻을 수 있었는데,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외국인 만나는 거야 뭐가 어려워?‘라고 말할 수 있지만, 대화가 통하는 한국에서도 한 달에 새로운 사람을 5명 이상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곳엔 같은 목적으로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모든 대륙에서 온다.
그들과의 시간이 즐거웠던 이유는 노는 방식, 가치관, 그들에게서 듣는 이야기 등 새로운 것들이 가득했다.
어학원이 아무래도 공부가 주 목적인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느낌보단, 다른 나라 사람들과 놀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도 있기에 다들 학원 바깥 생활에도 충실했다.
평일엔 어학원이 끝나면 항상 이곳저곳에서 모인다. 학원에서 파티를 열면 우르르 몰려가, 다음날 수업이 있든 말든 문을 닫을 때까지 정신없이 논다. 없으면 우리끼리 삼삼오오 모여 달링하버에 있는 펍에 가곤 했다.
다들 학생이라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도 있어, Happy hour(특정 시간에 술이나 음식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시간)에 맞춰 돈은 최소화, 재미는 극대화하는 가성비 좋은 놀거리를 즐긴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꼭 해변이나 공원으로 가 바비큐를 즐긴다.
나라마다 바비큐 문화가 달라 다양한 음식과 방법을 볼 수 있어, 그것도 또 하나의 재미이기도 했다.
(놀았던 얘기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님 더 디테일하게 써야 하나 고민이어서 이 정도만 써뒀습니다)
무엇보다 ‘어학원 다니길 정말 잘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나의 가치관을 변화시키며 나 ’ 자신‘을 위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들을 만나기 전에 나는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기 어려워했다. 혹시나 진실된 속마음을 말했다가 날 안 좋게 보진 않을까, 모든 말이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기분 나쁘지 않게 예쁘게 포장해 애쓰곤 했다.
사람마다 달랐지만 몇몇 친구들의 모습은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만약 나라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니 다르게 받아들여 불쾌하게 느낄까 봐, 더욱 조심하고 말을 아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누가 자신을 어떻게 보든 말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건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자주 만났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고 친구가 말했다.
“너 지금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모르지?"
당연하지! 말을 안 했는데 네가 어떻게 알아. 너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답답하게 혼자 생각하지 말고 말을 해"
"말 안 하면 결국 서로 오해가 쌓이고 관계가 끝나잖아. 너희 가끔은 진짜 답답해”
난 이게 그들을 위한 배려이자 내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참으면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일이 없고, 꾸준히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후 과거 또는, 현재 이 교실에서의 상황을 되돌아봤다. 그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결국 내 기분은 이미 뭉그러졌다. 그리고 스스로 멀어지며 도태가 된 사람도 나다.
느낀 점은 분명했다. 내 인생의 중심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 내가 날 지켜야 무너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으며,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