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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득 Feb 21. 2023

한국인을 만나지 말자

혹독한 호주 적응기

  경기도 다낭시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시드니도 비슷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어딜 가든 한국인이 가득하고 한국인들을 위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영어를 쓰지 않아도 이곳에선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리드컴, 스트라스필드 등 사진 속 장소인 타운홀을 제외하고도, 시드니안에 한인타운은 정말 많다


시드니 집값은 비싸기로 전 세계 탑 10에 든다. 그래서 워홀러들은 대부분 침대 하나 또는 방 하나를 빌리는 셰어하우스에서 산다.


 나 또한 집을 렌트할 여력이 되지 않아 셰어하우스를 알아보고 있었고, 외국인과 함께 살기 위해 검트리(호주 커뮤니티 사이트)와 페이스북을 뒤지기 시작했다.     


 인스펙션(호주에서 집들이를 칭하는 말)을 몇 번을 반복했는가. 드디어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다. 남자 방, 여자 방 2개에 각 방마다 이층 침대가 있어 총 8명이 살 수 있는 집이었다.     


 그곳은 타운홀이라는 번화가에 있었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브라질, 독일, 콜롬비아. 중국,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이 모여있었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할 셰어하우스 생활은 이미 호주 워홀이 성공한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들뜬 마음으로 입주를 했고 입주자들과 인사를 했다.


 만나보니 내가 처음으로 들어온 한국인이라며 반겼고, 어떻게든 나와 대화를 해보려 노력해 주는 모습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what? pardon? sorry..”를 입에 달고 살았고 번역기를 들이밀었다. 답답했는지 점차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고 나 혼자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생긴 별명은 ‘예스맨’. 누가 봐도 못 알아들은 표정이지만 항상 ‘yes’를 외쳐 그들이 만든 웃픈 별명이다.


온 지 겨우 일주일이 지났지만 누군가와 속 시원하게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외로움에 사무쳐 사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미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외국인들과 생활하며 멋있는 세상을 보고 영어도 할 수 있게 만들고 오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미 그들에게 내 목표를 얘기하며 큰소리쳤기에, 패배자로 보이고 싶지 않아 이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구직활동에서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집을 구한 후 일을 구하는 과정이었다. 오지잡(호주 사람이 사장)과 한인잡(한국인이 사장)이 있다.


나는 당연히 오지잡을 찾아 나섰다. 영어를 계속 쓰면서 외국인 동료들을 만나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력서를 아무리 돌려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직접 방문해 발품도 팔아봤지만, 자기소개 외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뻘쭘하게 앉아있다 나오는 날이 허다했다.    

 

매일 아침 출근해 만들던 도시락

 외로움과 무력감에 지친 마음, 떨어진 자존감은 한인 쉐어하우스, 한인잡으로 나를 안내했다. 


낯선 타지에서 한국인들은 자연스레 친해졌다. 함께 밥을 먹었고, 시드니 여행도 다녔고, 내가 알지 못했던 정보들도 얻을 수 있었다.


 스시 가게에서 일하며 돈도 벌고 요리도 배웠다.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을 하고 나면 오후에는 다른 다양한 것들을 해볼 수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나였다.



 하지만 이곳에선 일 끝나고 하고 싶었던 것들, 가고 싶었던 곳들, 친구와 친구를 데려와 매일 밤 새로운 사람도 만나는 여행 같은 삶이었다. 워홀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간 몸도 마음도 모두 편했고, 매 순간 즐거운 추억으로 쌓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즐거움이 배가 될수록 서서히 가슴을 조여 오는 게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언어는 영어다. 그들은 영어로 대화하고 영어로 일을 하며 영어로 모든 것을 한다.     


 영어를 못해 자신감을 상실하거나 소심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스타벅스에 가 커피를 주문하면 


“카페라떼 그란데 사이즈 주세요. 샷 추가해 주시고, 시럽도 한 바퀴 둘러주세요”


 이 말을 할 자신이 없어 그냥 카페라떼 레귤러 사이즈 달라고 한다. 혹시나 내 발음이 안 좋아 못 들아 들으면 돌아오는 질문이 부담스러워서다.     


 나라는 사람은 책상에 앉아 가만히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편하고 힘든 상황에 부딪혀야 영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매일 밤 편한 삶과 불편한 삶 사이에서 어떤 걸 택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느 날 밤, 누워서 생각했다.


‘이렇게 사는 건 한국에서 사는 것과 달라진 바 없다’


아무리 미래를 생각해 봐도 이대로 산다면 영어 한마디 못 할 거고, 책에서 본 다양한 경험들을 절대 못 겪을 것 같았다.



그 밤, 나는 변화를 시도하기로 선택하였다. 더 이상 나 자신을 한심하게, 부끄러워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제한을 걸어보도록 한다.       

   

‘한국인을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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