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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득 Mar 04. 2023

한국인이 한국인 등쳐먹는 곳?

 어학원이 끝나고 다시 일할 곳을 찾아야 했고, 처음에 시도했던 오지잡(*호주 사장 가게에서 하는 일)을 다시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외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소통도 가능했고, 초밥 가게에 일하면서 주방 일도 배웠으니, 주방이나 서빙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다시 이력서를 만들었고, 검트리(호주 통합 커뮤니티)를 통해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일만 시켜준다면 어디든 간다는 심정으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까지 모두 돌렸다.   

  

다행히 몇몇 군데에서 연락이 와 면접을 보러 갔고, 그중 3군데에서 ‘트라이얼을 해보지 않겠냐‘(호주에서는 2시간 정도 돈을 받지 않고 일을 해,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방법) 하여 첫 트라이얼이 시작됐다.


 확정은 아니지만 면접은 통과했고 긍정적이라는 의미이니 나름 뿌듯했다. 그렇게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시작으로 펍, 카페에서 2시간씩일을 해보았다.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부분이 있었다. 내가 영어로 소통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함께 언어를 배우 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레스토랑에선 손님들이


’ 땅콩 알레르기가 있으니 빼주고, 맥주에 위스키 샷을 추가해 주세요. 아 와인은 무슨 와인들이 있나요?’


카페에선 '샷 추가, 헤이즐넛 둘러주고, 설탕도 넣어주세요. 우유는 뭐죠?'


 하필 테이크아웃이 많아 빨리 커피를 뽑아야 하는데 응대나 손이 느려 기다리는 손님들을 볼 때마다 조바심이 났다.


로컬들과 대화를 해보니 말도 빠르고 억양도 다르고 슬랭도 많아(*외래어 같은 변형된 말들) 그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결국 당황해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도움을 구할수록 자신감은 또다시 뚝뚝 떨어졌다. 결국 3군데 모두 불합격. 그렇게 무직 상태로 3주가 흘렀다.


원점으로 돌아오니 다시 한인잡을 구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같은 굴레로 워홀이 금방 지나갈 것 같았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시간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함께 살고 있던 친구가 한 가지 방법을 추천했다.


"네가 외국인도 계속 만나면서 돈도 벌고 심지어 세컨비자까지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해. 내가 추천해 줄 수는 있어. 하지만 사실 난 그렇게 추천하지는 않아. 너 몸이 망가질 수도 있거든”


그곳은 농장이었다. 세컨비자를 따려면 88일간 농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마침 나 또한 호주에서 좀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에 솔깃했다.


 그곳엔 동남아, 일본, 유럽 친구들이 많다 하였고, 나름 일 끝나면 재밌는 생활도 있다고 했다.


 또한 내가 하는 만큼 돈을 버는 ‘능력제’이기에 몸 쓰는 거라면 자신 있어서, 많이 벌 땐 주에 1500-2000 불 가까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이게 일석 몇 조야, 한번 해보자!'


친구는 방법은 제시했지만, 말하고 보니 괜히 얘기했나 하며 안 가는 게 좋을 거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잡생각들이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한 번에 해결할 수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인터넷에는 ‘한국인이 한국인 등쳐먹는 곳’이라는 후기가 많았지만, 친구 일하면서 만났던 슈퍼바이저는 사람이 괜찮다는 말에, 바로 컨택해 확정을 받아내고 비행기 티켓을 사 번다 버그로 향했다.


 그렇게 농장에서 일한 첫날이 지나갔고, 그날 밤저녁 친구에게 전화했다.


“이곳 별명이 돈 못 번다 버그 라네, 네 말 들을 걸 그랬다 “




 이삿짐센터, 페인트 청소, 설거지, 공장 등 몸 쓰는 일은 많이 해봐 익숙하다. 농장을 결정했을 때, 추천해 준 친구 외에도 주변인들이


 “농장 일은 네가 생각하는 거랑은 완전히 달라, 진짜 말도 안 되게 힘들고 몸도 상해, 조심해”



내가 원양어선을 타는 것도 아닌데 왜들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농장 첫날이 시작됐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일할 준비를 마친 후 차를 타고 이동한다.


그때만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농장이 신기했고 다들 차에서 터덜터덜 나와 얘기하는 모습이 나름 괜찮아 보였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일출도 매일 볼 수 있어 왠지 건강한 삶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일 시작 전 다 같이 모여 각자 일해야 하는 로(작물을 심어놓은 줄)를 정했고, 오늘도 힘차게 해 보자며 파이팅을 외쳤다.     


일은 이러했다. 한 로에 두 명씩 양쪽으로 들어가 경쟁을 한다. 누군가가 빠르게 따버리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딸 것이 없어 돈을 벌 수 없다. 노동자들의 능력을 더 끌어올리기 위한 농장의 운영방법이다.


 단, 아무거나 따면 상품성이 떨어져 슈퍼바이저가 정해놓은 조건에 맞는 작품을 따야 한다. 만약 상품성이 떨어지거나 상태가 안 좋으면 발로 꺼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럼 난 그걸 모으고도 돈을 받지 못한다. 또한 작물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잡초나 썩은 작물들은 폐기시켜야 한다.


 작물마다 다르지만 상품성이 좋은 작물을 시멘트 통만 한 바켓을 채우면, 한 바켓 당 1.8-2.5 불 정도 한다.(농장마다 다름)     


일이 시작되는 순간 전쟁이 따로 없다. 100퍼센트 능력 제라 한 개도 못 따면, 그날 수입은 0원이다. 그렇기에 다들 돈을 벌기 위해 몸에 무리가 가더라도 일을 한다. 하다 보면 별의별 수법도 볼 수 있다.


 바켓은 두 개 이상 허리에 찰 수 없는데, 가끔 바켓이 부족해 3,4개까지 들고 있다. 그럼 누군가 바켓 찾다가 없어 달라고 싸우는 경우도 있다.


 또는 바켓을 다 채우면 자신에게 부여된 번호의 꼬챙이 같은 걸 꽂아 차가 다니는 길에 둔다. 그럼 누군가 그걸 바꿔치기해 누군가의 돈을 빼앗는 경우도 있다.


작물이 내 눈높이에만 있어도 할만한데, 대부분 작물들이 땅에 있다. 그럼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인 채 일을 해야 하고, 바켓은 쌓이면 쌓일수록 무거워진다.


 평소에도 무거운데 가끔 작물이 없어 바켓을 채우지 못해 계속 달고 다니면 누가 등을 접어버리는 느낌에 손이 절로 무릎을 짚는다. 몸 쓰는 일로 호주 농장은 최고봉 중 하나인 것은 분명했다.(내 경험 안에서)


쉬는 시간은 하루 종일 다 합쳐봐야 30분. 보통 오후 4-5시에 끝나지만 가끔은 잔업이 많다며 저녁 7-8시까지 하기도 했다. 첫날 아침 5시에 나와 저녁 9시까지 일한 후 번 돈은 80불, 68000원 정도 하는 돈이다.

     

시급이 높은 이 나라에서 한국에서 버는 것보다 못 벌 수도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도망갔어야 했는데.. 비행기 티켓, 집 보증금, 2주 치 집값, 작업복, 음식, 침구류 등 약 100만 원 정도를 이미 투자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내 통장엔 모든 돈을 다 써서 달랑 80 센트, 500원이 통장에 남아 2주 후에 받을 급여를 기다리며 온몸을 갈아 넣어 일할 시간만 남아있었다.


다른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내 몸이 상하든 말든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고 적응해야만 했다. 오직 ‘돈’만 보고 사는 삶은 처음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정말 미친 듯이 일만 했다.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을 여기에서 이해했다. 2주가 지나니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느껴지는 근육통이 점차 줄었고, 주급도 들어와 통장에 80센트에서 800불이 찍히니 드디어 숨통이 조금 트였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듯이 점차 웃음도 찾아갔고 삶의 여유도 느낄 수 있었다.


 기상과 동시에 일, 취침까지 모든 걸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유일한 낙이었다.     


출근하면 일하는 동안 같은 로에서 일하며 오늘 퇴근 후 뭐 할지 얘기한다. 다들 술을 좋아해 오후 3시부터 파티를 시작한다.


 다들 돈을 아끼자며 가장 저렴했던 ‘XXXX GOLD’ 맥주나 박스 와인을 사 와 진탕 마신다. 그럼 노래도 부르고 술 게임도 하며 데시벨이 높아져 다른 집으로도 소리가 흘러간다.


 다행히 근처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살아, 옆집에 사는 대만, 일본, 스페인 친구들도 저녁이면 각 나라 음식들을 하나 둘 가져와 매일 밤을 왁자지껄하게 보낸다.     


그리고 호주 시골은 조금만 떨어져 살아도 마트를 가기 위해선 최소 30분에서 한 시간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다 같이 차를 타고 마트에 가 일주일 치 식량을 산다.


 평소 꾸밀 일이 없는 사람들이 이 날 만큼은 나름 셔츠도 입고 여자들은 화장도 해 마트 가기 전에 놀러 간다.


 가끔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영화관을 가기도, Night Market이 열리면 그곳에 가 소소하지만 작은 추억들이 하나씩 쌓여간다.

     

또한 시골이라 그런지 자연이 주는 따사로움은 몸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선 안 보던 하늘을, 이곳에선 구름이 굉장히 낮게 떠있어 다양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화창한 날이면 풍경에 홀려 산책을 안 나갈 수 없어 한참을 걸으면, 해가 떨어지고 달이 뜰 때 빨간색과 주황색이 섞여 불타는 듯한 노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람도 건물도 많지 않아서 벤치에 누워 서늘한 바람과 함께 자연을 구경하며, 그간 느낀 소소한 감정들을 기억하고 되새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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