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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득 Mar 28. 2023

피 다른 가족

따뜻한 사람들




 2 달마다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했던 삶이 지쳐, 이젠 일이든 집이든 한국으로 돌아갈 때 까진 한 곳에만 머물고 싶었다.


호주에 처음 왔을 때만큼 열정과 패기는 없었지만, 자연스레 물 흐르듯 흘러가는 생활이 나름 마음에 들었다. 다행히 6개월의 시간이 날 성장시켰나 보다.


호주 사장이 운영하는 펍에 들어가 시급도 전보다 많이 받고 세금도 내며, 안정적으로 워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일자리 찾는 것이 해결됐으니 다음은 살 집을 구해야 했다. 외국인이 살던 한국인이 살던 어디든 상관없이 인스펙션(*입주할 집을 찾는다는 말)을 시작했다.


지금껏 여러 집을 보고 살아봐서 그런지 (무엇만 보고도) 집의 분위기를 얼추 예상할 수 있었다. 워홀 비자가 끝날 때까지 살 집을 구해야 했으니 내 마음에 딱 맞는 곳을 찾아야 했다.


 따사로운 날씨와 뻥 뚫린 하늘이 어느 집이든 오케이 할 듯한 기분을 만들었다.

         

3군데 정도 집을 봤지만 아쉽게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마지막 인스펙션을 향해 도심 정 가운데로 향했다. 그곳엔 한인들만 모여 살고 있는 집이었다.


한인 호스트가 날 맞이해 주며 집 구경이 시작됐다. 그녀는 집이 좋은 컨디션은 아니지만,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줬다. 누가 무슨 일을 하고, 다들 얼마나 살았으며, 어떻게 놀고 생활하는지 읊었다.



“우리 집은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연령대 층이 좀 다양해요”     


“그럼 제가 들어가면 막내겠네요?”     


“그쵸?! 우리 막내가 아쉬워하겠네~ 아 그리고 저녁 파티를 자주 하는데 다들 셰프로 일해서 저녁이 기가 막혀요!”     


“집은 좁은데 7명이서 파티를 할 수 있나요..?”     


“그건 가득 씨 매트리스를 접으면 돼요!”     

.     

.     

.     

....?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장난과 진심이 섞여하는 말속에서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말이라는 게 느껴졌다.


 더 이상 집 보러 다니는 것도 조금 지쳤고, 여기서는 마음 편히 행복한 시간으로 워홀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 입주하기 결정했다. 그녀는 내가 결정을 내리자마자   

            

 “지금 안 바쁘죠? 이제 우리 가족이니까 집사람들 보러 갈래요? 근처에서 술 먹고 있어요 “       

        

뭐가 이리 빠른지. 결정과 동시에 그들을 만나러 한인타운으로 향했다. 평소 호주에서 한인타운을 자주 안 가봐 처음 보는 술집이었다.


들어가니 우리 호스트와 술집 매니저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우리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를 보고 이번에 들어오는 사람이냐며    

 

 “어린 친구가 들어오네. 드디어 연령층 좀 낮추겠어~”   

  

 시끌시끌한 손님들 속에서 5-6명 정도 돼 보이는 사람들이 구석에 자릴 잡고 우릴 빤히 쳐다봤다.


 함께 살 사람들이라는 걸 직감했다. 메뉴는 돼지김치찌개 하나와 소주 7병. 이미 술을 좀 먹어서 그런지 스스럼없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몇 살이에요?


한참 동생이네, 말 편하게 할까요?


호주에 뭐 하러 왔어? 무슨 일 해봤어요?


우리 집 보니까 어때요? 호주에서 얼마나 살았고 앞으로 얼마나 우리 집에서 지낼 거예요?


좋아하는 음식이 뭐해요? 운동 좋아해요?.....          



다수가 한 번에 물어보니 정신이 혼미해져 나도 취해야겠다며 술 한잔 달라고 했다. 소주를 연달아 3잔을 마시니 재밌는 친구가 왔다며 좋아했다.          

 

“앞으로 4개월 정도 살다가 비자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잠깐 지내다가 다시 세계일주를 하러 떠날 겁니다. 그리고 마치면 여행에세이를 쓰는 게 꿈이에요. 음식은 다 먹고요. 공 가지고 하는 운동은 다 좋아합니다!”          


 한참을 듣더니 누군가는 피식 웃거나 가볍게 흘려듣는 사람도 있을 법한데, 여기 사람들은 내 말을 진심을 다해 들어주고 멋있다며 치켜세워주며 응원한다고 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칭찬에 낯간지러웠지만 금세 마음이 열렸고 첫날부터 그들과 훅 가까워질 수 있었다.      


Market street에 있는 우리 집은 남자방, 여자방 두 개로 돼있었고, 작은 거실을 파티션으로 분리해 매트리스 두 개를 넣을 수 있는 공간과 다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식탁까지 있었다.


 총구성원은 여자방에 3명, 남자방에 3명, 거실 셰어 2명까지 총 8명으로 작은 집에서 북적거리며 살았다.    

     

 나만의 구역은 오직 작은 매트리스 하나, 작은 선반 하나로 딱 잠만 잘 수 있는 곳이었다.


 프라이버시도 당연히 없었다. 사람들과는 커튼으로 분리되어 있어 커튼만 열면 바로 내가 보였고, 나 또한 주방이 눈앞에 있어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발이 보였다. 하지만 그 삶이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아마 그 이유는 정말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서로를 대하니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일을 쉬는 사람이 있으면 당번을 정한 것도 아닌데 엄마의 마음으로 정성껏 아침밥을 해준다.


숙취에 골골대고 있으면 한식으로 해장국을 해준다. 그리고 다들 일 마치고 들어오면 가게에서 남은 음식들을 싸와 매일 밤 파티가 열렸다.


알코올 없인 살 수 없던 사람들이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술과 함께 밤을 보냈다. 덕분에 외롭지 않았고 하루하루가 시끌벅적하니 즐겁게 흘러갔다. (덕분에 입주 후 10kg를 얻긴 했지만 괜찮다..)


가족이라 생각했던 이유가 그저 재밌게 놀아서만은 아니다.


누군가 아프면 건강식을 차려주고 약을 준다. 없으면 어디선가 사 와서라도 아프지 말라고 호통치며 준비해 준다. 힘든 일이 있으면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술 한 잔 하며 같이 울어주기도 한다.


생일, 핼러윈, 크리스마스, 새해 등 모든 이벤트들은 무조건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입력됐고, 난 그걸 즐겁게 생각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가족, 식구라고 표현할 일이 얼마나 있겠나.


하반기를 되돌아보면 그 어떠한 것보다 이들과의 시간이 우선적으로 떠올랐고, 생각할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며 언제 또 그런 감정과 편안함을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를 따듯하게 받아들여줬던 그들에게 마음으로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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