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촌사람이던 내게 버킷리스트가 하나 있었다.
바로, 서울 상경.
억 소리 나는 외제차를 끌고 강남을 지나가는 상상, 불금이면 친구들이 불러 클럽 VIP룸에 들어가는 상상, 비싼 상가에서 사장님 소리 듣는 상상, 예쁜 누나들과 놀러 다니는 상상..
상상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영 앤 리치 핸썸 프리티.. 뭐든 다 될 줄 알았지.
개뿔. 그런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핫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홍대를 찾았다. 집값이 비싼데도 말이다.
그 월세를 감당하려 친구와 더불어 곰팡이와 함께했다. 구직사이트를 뒤져봐도 내가 그들이 원하는 사항에 충족되지 않았다.
서빙, 농장, 페인트 청소, 설거지, 주방.. 급여나 직업에 대한 눈은 높아졌지만, 현실은 능력부족으로 아무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한창 일을 구하던 중, 홍대를 걸어가다 누군가
"스티커 하나 붙여주시겠어요?"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돼 이게 뭔지 몰라 그들이 하는 말을 계속 듣고 있었다.
결론은 '후원하세요'였지만, 다행히 나이제한으로 후원 참여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도망가려던 순간,
"혹시 일 하고 계세요?"
"아니요"
"인상이 선 해 보여서 그러는데, 이 일은 어때 보이세요?"
피하려던 찰나, 귀여운 여자 사람의 눈빛에 홀려 가만히 듣게 됐다.
"이게 뭐 하는 건데요? 봉사활동 아닌가요?"
"아 이게 후원받는 일인데요! 길거리에서...."
.
.
.
이 일은 100프로 인센티브 구조였다.
내 인상이 별로였을까, 사람들은 스티커를 붙여주지 않아 내 통장은 텅장이 돼 가며 하루살이처럼 살았다.
그렇게 경력에도 통장에도 도움 되지 않는, 이도저도 아닌 9개월이라는 시간을 허비했고 여행 또한 조금씩 잊혀가고 있었다.
띵동
휴무날 집에서 빈둥거리던 그 시각, SNS가 울렸다.
‘일 년 전 사진’
시드니에서 핼러윈 때 조커 분장을 하고 친구들과 장난치며 찍은 사진, 바닷가에서 바비큐 하며 수영하던 사진, 새해엔 캠핑가 불꽃놀이하던 사진.
여행도 운동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뭐 하러 게을리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추억들.
순간 머리가 띵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최선인가? 내가 원하는 삶이 나올까? 미래가 안 그려지는데.. 떠날까?'
내 열정을 확인하고자 호주 시절 사진을 모두 들춰봤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있을 곳이 적어도 이곳은 아니라는 걸.
일, 돈을 얻을 기회가 보이지 않는다면 내 '꿈', 화양연화를 만들어보자. 또다시 오지 않을 시간, 기회일지 몰라.
그렇게 썩은 동아줄일지언정 새로운 도전에 불을 지펴야 한다는 생각에, 2주 후에 있는 가장 저렴한 LA 행 비행기 티켓을 바로 끊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허황된 꿈을 꿨었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해 닥쳐온 롤러코스터의 내리막길이었다.
주변인에게는 계획적이고 빛을 볼 것만 같은 여정을 말했지만, 실상은 현실도 피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내 가슴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온 신경이 하나 꽂힐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렇게 다시 떠났다. 잃어버린 낭만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