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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아 Feb 23. 2024

부다페스트, 그 일주일의 기록

혼자 있는 시간도 좋아졌어

부다페스트에서 일주일을 지내겠다는 계획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약간 감기기운이 도는 게 썩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3주 동안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그간 쌓인 피로감이 몰려온 듯했는데, 며칠간은 푹 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나마 어제 미리 장을 봐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다행히 끙끙 앓을 정도로 아프진 않아서 밥도 나름대로 챙겨 먹고, 근처에 있는 약국에 방문해서 필요한 약도 조금 사 왔다.


여행까지 와서 또 누워있으려니 프랑스에 거주할 때의 생각이 났다. 환경이 비슷해서 그런지, 유학생활 할 때에도 혼자서 아플 땐 참 외롭곤 했는데 궁상맞게 부다페스트까지 와서 또 이러고 있구나. 내 20대의 대부분을 바친 프랑스에서 지낸 시절들이 이미 과거형이라는 것도 아직은 잘 와닿지 않는다. 약기운과 잠에 취해서 그랬는지 맥락도 없이 별 생각이 다 드네.


숙소에서 어부의 요새로 올라갈 때 늘 보았던 모습


한숨 푹 자고 난 뒤엔 조금 기운이 돌아온 듯하여 어부의 요새를 또 다녀왔는데, 내 컨디션과는 별개로 변함없이 예쁜 노을과 부다페스트의 풍경이 나를 반겨주었다. 이 짓을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하여 결국 몸의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기까진 며칠이 걸렸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 노을만큼은 포기할 수 없지.            




뭐 해먹기도 귀찮고 피곤했지만 약을 복용해야 하기도 하고, 미리 장 봤던 식재료를 못쓰고 가면 아까울 것 같아서 기운 없는 와중에도 이것저것 다양히 해 먹었다. 오랜만에 요리하는 바질크림파스타와 버섯 리조또는 변함없이 맛있더라.


아픈 애 치고는 대단히 잘 해먹은 덕분인지, 수면제와 약을 복용하며 착실히 회복하는 시간을 며칠 보내다 보니 점점 몸 상태가 괜찮아지는 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 회복한 후엔 지금까지 잘 신경 쓰지 못했던 개인사업체의 업무를 처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일의 장점이라면 이렇게 자유로이 외국을 돌아다니며 수익이 난다는 것이지만, 반대로는 여행을 와서도 계속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은근히 스트레스긴 하다. 심지어 이렇게 몸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더욱.




이런 식의 휴식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의도대로 푹 쉬며 지내다 보니 벌써 부다페스트에서의 사흘이 훌쩍 지나갔다. 이곳에서의 남은 일정을 고민해 본 결과, 내일부터는 돌아다니는 데에 몸 상태가 지장이 없을 듯하여 아침 일찍 일출을 보러 갈 계획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은 와중에도 매일 어부의 요새는 들른 만큼, 일몰이 아닌 해가 뜨는 광경도 눈에 담고 싶었다.


그리고 부다페스트를 떠나기 전 하루쯤은 옆 나라인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를 당일치기로 다녀올 계획이다. 쉬는 동안 우연히 찾은 정보에서 자그레브에 꼭 가고 싶은 곳이 생겼는데, 버스로 왕복 10시간 정도 걸리더라. 뭐 그 정도쯤이야! 불과 저번주까지만 해도 편도 20시간 버스 이동 한 적도 있는 만큼 오히려 가벼운 여행으로 느껴졌다.


마지막날은 미용실 예약해서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몇 달간 계속 기르고 있던 머리는 기약 없는 여행길에 더 이상 감당하기가 힘들어진 데다, 어찌 보면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기회가 된다면 동행을 구해 사진도 좀 남기고 다른 관광지도 조금 둘러볼 계획이었다.


뭐 생각은 이렇게 했어도, 결국 마지막날까지 어부의 요새 앉아 시간 보내며 글이나 쓰다가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다른 곳을 둘러보지 않고 하는 말이긴 하지만, 부다페스트에서 나한테 이 정도의 안정을 주는 곳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정말 아팠던 하루 말고는 어부의 요새에 매일같이 출석 도장을 찍으며 지냈으니깐. 그만큼 내 마음에 들고 편안한 장소가 되어버렸어.




부다페스트의 일정도 절반이 지난날 아침, 일출을 보러 가기 위해 맞춰둔 알람이 새벽 5시 반에 울리더라. 피곤에 절어 '다음번에 보고 오늘은 그냥 잘까?'라는 모두가 할 법한 생각을 했지만, '어쩌겠어, 해야지 뭐..'라는 마음가짐으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혹시나 날씨가 별로 안 좋으면 안 가려 했는데 아쉽게도 구름 한 점 없더라. 어쩌겠어, 해야지 뭐..


대충 옷을 걸쳐 입은 뒤, 몇 번 와봤다고 이젠 익숙해져 버린 언덕길을 휘적대며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해가 완전히 떠오를 때까지 약 30분 정도 넘게 난간에 걸터앉아 점점 하늘이 붉은빛으로 물드는 것을 구경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오전명상을 해볼까, 아니면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으며 내 마음을 정리해 볼까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안 하고 머리를 비운채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그냥 생각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아무 생각나지 않으면 그렇지 않은 대로 흐름에 맡기는 게 제일 좋다.


아팠던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올랐던 어부의 요새. 아침에 오는 건 처음인데 바투미에서도 느꼈지만 이 시간대의 아무도 없는 유럽길 풍경은 참 묘하다.


이때의 풍경은 정말 잊을 수 없다


일출은 예뻤다. 부다페스트에서 밤의 주인공은 역시나 야경이 화려한 국회의사당이겠지만, 적어도 이 아침 일출은 성당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쉽게도 성당 이름은 모르지만, 결국 그 이름은 이 도시를 떠나는 날까지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엔 그 풍경을 생생히 담았다.




저녁엔 처음으로 어부의 요새가 아닌 국회의사당 반대편 강가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내가 머무는 곳에서 이 스팟까지 5분도 걸리지 않는 만큼, 이것 하나만 보고 숙소를 잡은 과거의 나 자신이 참 잘했다고 생각해.


최근 숙소에서 혼자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 길어서 그런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 꽤 많이 생각난 하루다. 또 최근 나와 엮였던 사람들 모두 각자의 삶과 여행을 잘 소화해나가고 있을까 한 번씩 생각이 스쳤다.


당연히 전 연인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을까 싶었다. 이렇게 문득 생각이 나도 이제는 마음이 막 아프진 않은 게, 어느샌가 나는 '이별이 가져다준 세계여행'보다는 '세계여행' 그 자체에 더 마음을 쏟고 있었다. 그건 그대로 참 좋았다.


 A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여행을 하고 있을까 싶다. 나는 그가 참 좋았다. 아 참고로, 그는 나와 헤어진 후 원래 우리의 예정대로 이스라엘을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졌지만 마지막 소식을 확인했을 때 다행히 하루정도의 일정 차이로 그곳을 빠져나온 걸 알 수 있었다. 그 후 그와의 연락은 더 이상 가진 적이 없지만.


B는 국내에 잘 귀국하여 다시 일상으로 복귀를 했고, 우연히 만나거나 짧게 만난 친구들은 소식까진 모르지만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할 뿐이다. 여행은 그런 것이고, 여행길에서 만난 모든 이들은 다 그런 거니깐.




내 여행의 끝은 뭘까.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점이라면, 나는 이 여행에서 눈에 띄는 무언가를 배워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 여행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면, 모든 사람이 여행을 왔을 테니깐.


A의 그 말은 참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내가 비록 이 여행을 마치고 왔더라도, 나의 달라진 점을 아무도 찾지 못할 수도 있어. 그건 나 역시도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지금 이 3주간의 여행을 지속하며 느낀 점이라면, 이렇게 모든 걸 포기하고 흘러온 곳인 이 여행에서 정말 많은 걸 보고, 듣고, 경험하는 중이다. 물론 애초에 떠나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겠지만, 어쨌단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 할 수 있는 이 말. 이 여행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후회했을 거야.

   

강과 바다를 좋아한다. 이곳을 온 건 잘한 선택이었어


이런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샌가 강가 반대편의 국회의사당도 반짝이기 시작했고 날씨도 아까 전보단 약간 더 쌀쌀해졌다. 더 있을까 싶었지만 끝물인 감기를 이제 와서 더 키우고 싶진 않았기에 혼자 보내는 시간은 여기까지만 하고 숙소에 들어왔다.


다음날은 자그레브를 가기로 했다. 미리 언급했듯, 그곳에 내가 꼭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아마 내일 그곳을 방문하면 내 마음에 또 와닿는 것들이 생기겠지.


아직은 끝날기미가 없는 내 여행이지만, 다음날은 또 어떤 새로운 경험으로 채워질지 기대하며 마무리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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