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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아빠를 닮은 죄, 그 그림자와 싸운 시간

사랑받고 싶었던 딸, 아버지의 그림자와 싸우다

by 소망안고 단심

장례식을 마치고
다연은 다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인간의 죽음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가던 날,
그때의 다연은 무겁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집으로 향하는 다연의 마음은
시원하다 못해 꽉 막혀 있던 가슴이 뻥 뚫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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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내내 다연의 마음은 혼란과 분노, 서러움으로 뒤엉켜 있었고,
발인을 마치고 절에 가서 제사를 지낸 뒤엔
결국 엄마와 동생들과도 다투고 말았다.


엄마는 늘 이기적이었다.
그 인간에게도, 동생들에게도 관대했지만
유독 다연에게만은 차갑고 서운했다.


어릴 적 다연이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 돌아오던 날,
엄마는 웃으며 여동생 머리를 쓰다듬으면서도
다연의 상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방 치우고 얼른 숙제해” 하고 말끝을 잘랐다.


그 순간부터 다연은 느꼈다.
자신은 엄마에게 ‘기쁜 딸’이 아니라는 것을.


여동생과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하며
한 시간 넘게 수다를 떨고 웃지만,
다연과는 1년에 한 번 통화할까 말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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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도 어색하고 불편할 뿐.

운전을 하면서 다연은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는 내가 아빠를 닮았기 때문에,
나를 볼 때마다 상처가 떠올랐던 건 아닐까?’


만약 자신이 엄마였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미웠을 것이다.


다연도 그 인간을 닮은 자신이 싫었으니까.


중학생이던 시절, 다연은 다짐했다.
“절대로 그 인간처럼 살지 않겠다.
절대로 그 인간 때문에 내 인생을 망치지 않겠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연은 알게 되었다.
자신도 그 인간을 닮았다는 것을.


첫 회식 자리.

식탁 위엔 소주병과 맥주잔이 어지럽게 늘어서 있었다.
남자 직원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혀가 꼬이고, 고개를 떨군 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다연은 술잔을 비워내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야, 너 술 안 마신 거 아냐?
식탁 밑에 버린 거지?”
김 대리가 꼬부라진 혀로 농담을 던지자


사람들이 킥킥 웃었다.

다연은 억지로 웃음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오직 하나의 다짐만 되뇌었다.

‘절대로 취하면 안 돼.
절대로 정신을 놓으면 안 돼.
나는 그 인간과 달라야 해.’


웃는 얼굴 뒤에서 손끝이 떨렸다.

다연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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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몰며 다연은 속으로 자신을 칭찬했다.
“불쌍하다, 다연.
그래도 너 잘했다.


너 지금 그 인간이랑 다르다.
너는 버텨내고 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지 않으면
금세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그러자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나도… 나도 동생들처럼 사랑받고 싶었어.
엄마에게, 아빠에게, 그냥 딸로서 사랑받고 싶었어.”


아버지라는 사람은,
군 제대 이후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며
점점 자신을 혐오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꼭 닮은 딸, 다연을 볼 때마다
더욱 미워했을 것이다.


엄마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미운 남편을 닮은 딸이
더없이 보기 싫었을 것이다.


이해는 된다.
그러나, 다연은 참 많이 외로웠다.

“그래도 나도 자식인데… 딸인데…”


말끝이 도로 위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지는 듯했다.

다연은 차를 갓길에 세우고
운전대를 주먹으로 두어 번 세게 쳤다.
그리고는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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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 막히고, 눈물이 얼굴을 타고 쏟아졌다.
그동안 꾹꾹 눌러두었던 설움이
마구 터져 나왔다.


“하나님…
다른 사람들은 힘들 때 엄마, 아빠를 부른다는데,
저는 하나님을 부릅니다.

아무 대답도 없으셔도,
그래도 제가 부를 수 있는 분이 계신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다연은 운전대에 얼굴을 묻고 한참 오열했다.
차 안은 숨소리만 가득했고,
시간마저 멈춘 듯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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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

“다연아… 힘들어하지 마.
내가 늘 네 옆에 있을게.”


그리웠던 목소리.
보고 싶었던 그 얼굴.

다연은 눈을 감았다.


차 안 공기가 따뜻하게 변하는 듯했다.
그리고 어느새,
과거 속으로 깊이, 깊이 빠져들었다.


⏳ 다음 회차 예고
“잊고 살았던 기억 속, 그 사람은…
내가 가장 미워해야 했던 사람이자,
내 외로움 속에서 유일하게 나를 안아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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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