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기억을 더듬으며
으애~앵 ~~!!
아들의 울음소리가 내 마음을 미어지게 만든다.
이제 겨우 두 달쯤 되었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의사소통을 오로지 ‘우는 것’으로만 하는 작은 생명체의 상태를 나는 오로지 나의 직감력으로만 추정할 수 있다.
아들의 출산 후 아이의 침대를 옆에 놓고 늘 지켜보았다. 밤에도 두 번 정도는 깨어서 오른쪽에 물려서 10분 왼쪽에 물려서 10분 모유수유를 하다가 나는 졸고 있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도 충분한 숙면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도 모를 만큼 머리가 띵 할 때도 많았다.
아이 쪽에서 무슨 소리라도 나면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번쩍 뜨고 아이 쪽으로 바라보기도 하였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온 신경은 옆에 있는 아이에게 가 있었나 보다.
내가 너무 지나치게 예민했던지....
아무래도 상태가 심상치 않다. 배가 고픈 것 같지도 않은데 울음을 그치지 않고 울어대는 게 심상치 않다.
뭔가 마땅치 않은 게 있다. 먹는 거라고는 내 몸속의 온갖 영양분이 함축되어 있는 따뜻한 천연 무방부제 자연식품을 먹을 뿐인데.
나는 아들에게 영양을 공급하느라 아침에 일어나면 밤 사이 두 번의 수유로 허기가 진 상태로 눈을 뜨고 점심에는 산처럼 담은 파스타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지낼 뿐이었다.
내가 잘못 먹은 게 있나?
혹 너무 매운 것을 먹은 것은 아닐까?
소아 담당 가족주치의가 마늘도 먹지 말라 했는데.
나는 속으로 콧웃음을 치며 한 귀로 듣고 흘렸건만.
아니면 너무 기름진 음식을 먹었나?
초록색의 야채를 너무 많이 먹어 소화되기 힘든 성분이 젖에 녹아들어 갔나?
나 혼자서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아이를 달래려고 품에 안아서 들고는 뭐라고 흥얼거려야 할 텐데...
아이가 어리니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
그래도 한국말을 들려줘야 하는 것 아니야.
무슨 자장가를 불러야지? 아니면 귀염성 있는 동요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런데 머릿속이 멘붕상태로 하얗기만 하다.
내가 어릴 때 무슨 노래를 불렀지? 학교 다니면서 어떤 노래들을 배웠지?
우리 시누이는 막 태어난 조카를 보고 물고 빨아대며 이탈리아 동요들도 잘도 하던데....
Oggi tutti insieme
cercheremo di imparare
come fanno per parlare
fra di loro gli animali.
오늘 우리 다 같이
동물들이 그들끼리 말을
어떻게 하는지 배워보기로 해요.
Come fa il cane? Bau! Bau!
개는 어떻게? 바우! 바우!
E il gatto? Miao!
고양이는? 미아오!
L’asinello? Hi! Hoo! Hi! Hoo!
당나귀는? 이오! 이오!
La mucca? Muuu....!
소는? 무우우....!
La rana? Cra! Cra!
개구리는? 크라! 크라!
La percora? Bee....!
양은? 베에에....!
E il coccodrillo?.....
그리고 악어는?
E il coccodrillo? Boh...!
그리고 악어는? 보....!
Il coccodrillo come fa?
악어는 어떻게 해?
Non c’è nessuno che lo sa.
그걸 아는 사람은 어무도 없어.
Si dice mangi troppo,
악어는 많이 먹고,
Non metta mai il cappotto,
절대 코트를 입지 않고,
Che con i denti punga,
찌르는 이빨을 가졌고,
Che molto spesso pianga,
자주 많이 울어
Però quand’è tranquillo
Come fa ‘sto coccodrillo?....
그렇지만 평온할 땐 악어는 어떻게 말해?
Il coccodrillo come fa? 악어는 어떻게 해? - 리듬이 아주 경쾌하고 많이 알려진 이탈리아 동요다.
아니 내가 얼마나 이탈리아에 오래 살았다고 아는 한국 노래가 없어?
그런데 한국 동요는 들어본지가 정말 까마득한 것 같다. 갑자기 한국 문화와 동떨어져 지낸 5년 정도의 시간이 나를 구석진 응달에 외톨이로 남겨 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생각나는 데로 불러보자.
‘학교종이 땡땡땡 ~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부터 시작해서 생각나는 데로 흥얼거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게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 맞는 거야! 멜로디가 너무 구슬픈 거 아니야.....
왜 좀 흥겹고 귀여운 노래는 생각이 안 나지?
내가 너무 구식 엄만가 봐??
자신에 대한 자책감마저 든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파~란 하늘빛 물~이 들지요
어여쁜 초록빛 손~이 되지요
초록빛 여울물에 두~발을 담그면
물결이 살~랑 어루만져~요
물결이 살~랑 어루만져요.
제목이 확실이 기억이 안 났지만 좀 밝은 멜로디에 가사가 서정적인 노래를 흥얼거리니 엄마로서의 의무감을 좀 더 잘 수행한다는 ‘자족감’이 든다. 남들에게는 혼자만의 북 치고 장구 치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제대로 된 ‘자장가’ 잘 불러주는 엄마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
저녁때가 되어도 멈추지 않는 칭얼댐이 결국은 소아 병원 밤비노 제수 Ospedale Pediatrico Bambino Gesù 로 향하게 하였다.
아들을 보듬어 안고 병원 대기실에 남편과 함께 있는데 내 심장을 후벼 파는 듯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에게 전가되어 눈물로 흘러내린다. 아니 내가 이렇게 마음이 연약했나? 자고로 엄마는 강해야 하는데....
아이의 울음소리를 견디다 못해 눈물까지 보이다니....
병원의 행정처리나 시스템이 내 답답한 심정을 헤아릴리는 당연히 없겠고 긴 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받으니 아이가 신생아 복통 Coliche intestinale 때문이라고 했다. 수유를 하면서 공기를 같이 마시게 되면 겪게 되는 신생아들의 문제인데 조그만 배안의 공기를 방귀로 뽑아내었다. 방귀로 가스가 빠져나오니 슬며시 웃음이 튀어나오다가 작지만 생명 있는 ‘사람’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아 나오던 웃음이 공기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
의사는 처방전을 건네주면서 4개월 정도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하니 기다려 볼 수밖에.
엄마 하려면 이렇게 ‘깜짝깜짝 놀라는구나’ 하는데 동시에 ‘우리 엄마도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를 키웠겠지’라는 울림이 저 멀리서 내게 들려왔다.
표지 출처 : photo by Jenna Norma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