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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구함 Aug 18. 2022

봄날의 햇살 같은 부모는 좋은 부모일까?

내 대답은 네니오



로스쿨 다닐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너는 나한테 강의실의 위치와 휴강 정보와 바뀐 시험 범위를 알려주고, 동기들이 날 놀리거나 속이거나 따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해. 지금도 너는 내 물병을 열어주고, 다음에 구내식당에 또 김밥이 나오면 나한테 알려주겠다고 해.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이 감동적인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 평소 말투와 똑같이 아무렇지 않게 최수연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우영우. 우영우 옆에 최수연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내가 우영우 아버지였다면 수연이를 친딸만큼 아껴주고 챙겨줬을 거다. 아니, 최수연을 어디서든 구해서 왔을 거다.  


그런데

세상에는 최수연도 있지만, 권민우도 있다. 우영우는 운이 좋아서, 혹은 드라마라서, 가장 가까운 곁에 최수연이 있었지만 현실의 우영우 옆에는 권민우만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준호 씨의 그 재수 없는 친구들이거나. 드라마니까 과장된 악역들이겠지만 현실은 어쩔 때는 그보다 빡세고 훨씬 더 극적이다. 믿기 힘들 정도로 폭력적이기도 하다.


부모들은 아이를 허용적으로 키우기 쉽다.

철저히 내 경우에 비추어 생각해 본 두 가지 이유.


1. 자식은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존재니까.

2. 아이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면 사실 편하다. 물론 그때만.  


만약에 당신의 아이를 허용적으로 키우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말 정말 좋은 부모입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허용적인 부모였다. 요즘 내가 꽂힌 육아 키워드다. 허용과 수용. 같은 말인가? 비슷하지만 뉘앙스만 다른 말이라면 두 단어를 모두 써버리고 싶다. 그만큼 나는 수용적이고, 허용적이었다. 용했고, 수용했다.

왜냐면 딸아이가 그만큼 이쁘기도 했지만 내 스스로 게을렀기 때문이다. 아이와 실랑이하는 게 귀찮았고, 시간 낭비로 느껴져 아이를 설득하는 과정을 외면했다.  


왜 이토록 냉소적이 되었냐면,

지난 5년 동안 우리 아이를 오냐오냐 키운 탓에 생긴 여러 문제와 그 아쉬움이 가끔 나를 뒤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훈육이 필요 없었다. 먹이고 재우고 똥오줌 치워주고 아낌없이 사랑을 부어주면 됐다. 봄날의 햇살과 같이 따스하게.

 

어떤 날은 내 스스로 뿌듯한 날도 있었다. 아이에게 화를 꾹 참고 온화하게 말한 나 칭찬해. 하던 날들.


그런데 그 사이에 아이는 크고 있었나 보다. 이는 점점 크고 있는데 부모의 육아는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먹이고 재우고 똥오줌 치워주고 아낌없이 사랑을 부어주면 되는 일 아닌가? 했다. 물론 그게 맞다. 그런데 거기에 덧붙여 꼭 해줘야 하는 일이 있었다. 올바른 훈육과 생활지도.





부모의 유형에는 크게 4가지가 있다고 한다.

아동발달 전문가 바움린드는 부모의 유형을 이렇게 구분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허용적 유형의 아빠였다. 아이의 의견을 과하게 존중했다. 그렇다고 자신감이 높고 제멋대로인 성격인 건 아닌데, 역시 아이들도 진리의 케바케인가보다. 우리 딸의 문제점을 해결하려 실마리를 쫓다 보니 각기 다른 몇 가지의 문제점 끝에는 '허용적'이라는 단 하나의 원인이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봄날의 햇살일 뿐이었다.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에는 따스한 봄도 있지만 뜨거운 여름도 있고 선선한 가을도 있고 차가운 겨울도 있을 텐데 나는 햇살만 비춰준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봄날만 살 수가 없다. 물론 아이의 인생이 항상 봄날과 같기를 바라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건..

그리고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적당한 정도의 통제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물론 그 통제는 일관성 있어야만 한다.  


문제를 인식한 후부터 나는 아이에게 몇 가지 생활지도를 하고 있다.


식사 전에는 잘 먹겠습니다 말하기

식사 후에는 그릇 싱크대에 갖다 놓기

엄마 아빠 퇴근 후에 집에 오면 인사하기

할머니 할아버지께 배웅 인사하기

가지고 놀은 장난감과 책은 정리하기


모든 게 내 생각대로 잘 되면 좋겠지만, 잘 안 되는 부분도 있다. 그래도 꾸준히 훈육과 생활지도는 늘려갈 생각이다.

봄날의 햇살만이 아니라 봄날의 미세먼지도 보여주고, 여름의 꿉꿉함도, 겨울의 냉철함도, 가을의 쓸쓸함도 모두 보여줘야지.


그래도 역시 부모는 따스한 봄날의 햇살이어야겠지. 그래서 내 대답은 네 이면서 아니오다.


2주 만에 어린이집을 가면서도 보고 싶은 친구는 없다고 말하는 우리 아이에게도 최수연 같은 친구가 생기면 참 좋겠다. 제주도 이후의 권민우 같은 친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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