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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구함 Oct 24. 2022

오후 3시, 딸이 보내준 선물

절망의 기억은 희망의 조각이 되어


사무실에서 가장 졸린 시간, 오후 3시.

내가 이 시각 졸음을 참는 방법 중 하나는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키즈노트 알림장을 보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보내주시는 글을 찬찬히 읽은 다음에는 사진들을 본다.

5살 아이들을 찍은 사진 속에서 딸을 찾는다. 사진 속 딸이 소외되고 동떨어진 느낌이 들면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밝게 어울려 노는 것 같으면 3시 이후의 시간이 좀 더 버티기 수월해졌다.




지난주 금요일 어김없이 키즈노트 알림장이 왔다.

공원에서 다람쥐도 보고 솔방울도 봤다는 늘상 봐온 그런 평범하고 일상적인 알림장이었다. 그런데 그날 알림장의 마지막은 조금 달랐다.


*글을 쓰며 알림장을 다시 보니 인사를 할지 말지가 아니라, 어떤 인사를 할지 물어보신 것도 다 생각해서 하신 행동 같다. 


사무실에서 알림장을 보며 코 끝이 약간 시큰해졌던 것도 같다.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감정이 올라왔다. 얼른 핸드폰을 닫고 모니터의 엑셀에 의식적으로 집중했다.

그러고 나니 별일이 아닌 것 같이도 느껴졌다.


5살 다람이는 담임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전혀 특별하지 않은 그 일을, 나는 간절히 기다려왔다. 선택적 함구증 초입 단계라는 말을 들은 날 이후부터 육아서를 읽고 유튜브를 보고 사람들의 경험담을 찾아다녔다. 유치원 아빠 참여수업에 가서는 인사성 밝은 나를 연기하기도 했다. 




다른 부모들은 자식을 하버드와 서울대에 보냈고 민사고에 보냈고, 하다 못해 명문 영어 유치원에라도 보냈다. 명문이라는 성과보다는 무언가를 노력해서 얻어 낸 결과물 그 자체가 부러웠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결과물은 다람이의 인사 하나였다. 결과가 보이지 않는 노력이 의미가 없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나는 그간의 내 노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딸에게 줄 들꽃을 모으는 심정으로 육아와 함구증을 공부하며 글을 썼다. 브런치에 발행한 글이 10개를 넘어가고, 서랍장에 넣어놓은 글감은 20개를 넘어가는데 내 글에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낙담하기도 했다. 희망은 내게 틈을 내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육아는 장기 레이스라는 걸 잘 알고는 있지만. 



그런 나에게 딸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빠의 노력을 안다고. 나도 이제는 아빠처럼 용기를 내보겠다고.


딸이 용기를 내 준 덕분에 나는 희망의 조각을 발견했다.

앞으로 얼마나 낙담을 할지 절망을 할지는 모르지만 오늘의 기억으로 나는 더 버텨낼 수 있다. 



결국에는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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