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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구함 Jul 21. 2022

내 딸은 인사를 해 본 적이 없다

아빠 참여 수업에서 넉살 좋은 사람 연기하기 



정말이다. 내 딸은 인사를 해 본 적이 없다.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에게도, 매일 보는 친구들에게도.

그래도 어린이집에서 말을 하긴 하는지, 친구들이랑은 어떻게 지내는지 나는 늘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어린이집에서 아빠 참여 수업을 진행한다는 알림을 받았다.

나는 꼭 참여하겠다고 한 달 전부터 일정을 비웠다. 


다람이는 전날부터 무척이나 들떴다. 

당일 아침 아이는 혼자 일어나서 아빠를 깨우고, 아빠가 준비하는 동안 혼자서 양치와 세수를 하고, 그렇게 바르기 싫어하는 로션까지 혼자 눈을 질끈 감은채 바르고, 가장 좋아하는 엘사 옷을 입고, 신발장으로 가서 가장 아끼는 리본구두까지 신고 섰다. 그날은 엄청난 기대와 설렘이 아이의 부릅뜬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나도 설렜다. 다만 나는 설렘과 기대보다, 단 하나의 마음가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린이집 아빠 그 누구보다 사회성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지. 


내향인으로서의 내 모습은 철저히 숨기고 밝은 표정으로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 인사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 다짐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사실 긴장됐다. 그래서 다람이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아빠 오늘 다람이네 어린이집에 처음 가잖아. 그래서 설레기도 하지만 좀 긴장되기도 해. 처음 보는 다람이 친구들도 많고, 아빠들도 다 처음 봐서 좀 긴장돼." 

새로운 곳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다람이 너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긴장되는 일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주도하고 도전하고 작은 일에서부터 성취하게 해야 한다. 는 인터넷 조언을 새기며 아이에게 어린이집 안내를 맡겼다. 할머니와 함께 조잘거리며 다녔을 그 길을 앞장서서 걷는 다람이는 무척이나 신나있었다. 

일찍 나선 덕에 어린이집에는 1등으로 도착했다. 나는 평소보다 텐션을 올려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다람이 아빠에요!"


아빠가 인사를 해도 다람이는 담임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서 내 스스로 평정심을 가지려 했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담임 선생님에게는 인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조금의 기대를 했었던 것 같다. 지켜보는 내 마음이 쓰렸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다람아 선생님한테 인사 해야지~" 하며 힘으로 다람이 머리를 숙여 봤지만 이내 ‘억지로 시키면 안하려는 고집이 생겨버린다.’라는 인터넷 조언이 생각나 관둬버렸다. 


역시 어렵다. 

그래.. 아빠가 퇴근해서 집에 와도 어색한 표정으로 날 보는 너인데. 

아무리 담임 선생님이라 해도 인사가 나올 리가 없지.  


담임 선생님께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치의 텐션으로 말을 건냈다. 

"선생님! 우리 다람이가~ 선생님을 정말 좋아해요." 마스크를 낀 탓에 두 눈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학습된 인사와 함께 마스크 안으로 보이지도 않을 윗니 아랫니를 최대한으로 보이며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교실 자리를 안내 받고 앉아 담임 선생님과 얘기를 나눴다. 평소 같았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먼저 말을 계속 걸었다. "선생님~ 아휴 주말에 고생이 많으세요. 휴가는 내서 쉬시는거죠? 꼭 쉬세요 하하" 하고 밝은 나를 꺼내보였다.      


다람이가 이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배우길 바라면서.

다람이가 이런 아빠의 모습이 진짜 아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길 바라면서.     


잠시 기다리니 쌍둥이 자매 민서 민주 가족이 교실로 들어왔다. 언니까지 왔다면서 아빠와 엄마까지 5명이 우루루 들어선다. 비장하게 일어나 5명에게 인사를 건냈다.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표정으로, 니가 민서구나 민주구나 우리 다람이가 너희 얘기를 많이 하더라면서. 


하지만 역시나 자리에 혼자 앉아 인사하지 않는 다람이. 


민서가 다람이에게 먼저 밝게 인사를 한다. "다람아 안녕~!"

친구의 밝은 인사에도 다람이는 답이 없다. 눈이나 마주치긴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실 기억이 안난다. 아마도 외향적인 나를 연기하느라 바빴기 때문일거다. 


뒤이어 많은 친구들이 왔다. 그리고 함께 아빠들도 왔다. 

사람들이 모일수록 나는 점점 지쳐갔다. 어떤 아빠는 내 인사를 건성으로 받기도 했다. 

참나 내가 좋아서 하는 줄 아나..

지치기도 하고 성질이 나기도 해서 사람들이 올 때마다 매번 일어나는 건 관뒀다. 어차피 다른 가족들도 자리에서 인사 하는데 뭐 하는 자기합리화와 함께.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니 좀 후회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적극적으로 일어나 인사를 하며 인싸 연기를 했어야 하나 싶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최선이었다. 

아닌가. 그래도 좀 더 힘을 낼 걸 그랬나. 아무튼, 



그렇게 어린이집 행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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