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일이다. 말도 빨리 시작한 편이고 가끔 놀라울 정도로 친구처럼 대화하는 다람이는 대체 왜 고맙다는 말을 안 하는 걸까. 발화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지 않는다.
며칠 전 다람이와 동갑인 5살 딸이 있는 처남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목욕을 시키고 난 후, 땀에 젖은 옷 대신 처남 딸의 옷을 입히면서 나는 다람이에게 말했다.
"다람아, 이거 하윤이가 옷 빌려준 거니까 나가서 고맙다고 말해야 돼. 알겠지?"
"나 말했어"
"와 정말?"
"응 나 속으로 고맙다고 말했어"
"아 속으로 말했어? 근데 속으로 생각만 하면 하윤이는 못 듣잖아. 그래서 내가 옷을 빌려줬는데 다람이는 왜 고맙다고 안 하지? 생각할 수 있어. 우리 나가서 고맙다고 하자"
"알겠어. 근데 나 밥 먹고 나서 말할게"
밥 먹고 나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지켜봤지만 결국 밥 먹고 나서도 고맙다고 하지 않는 우리 딸. 헛웃음을 속으로 삼켰다.
가끔 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물어보세요. 아이의 생각을 추측하지 말고 직접 물어보세요. 대신 대답해주지 말고 직접 대답하게 하세요.
상담 선생님은 저렇게 조언했다. 조언을 듣고 난 나는, 조언대로 하면 이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다람이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면 아이는 이내 머쓱한 웃음을 터뜨리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
갑자기 엘사 인형을 보여주며 이쁘다느니, 까투리 중에선 역시 꽁지가 제일 귀엽다느니.
부부가 대화하면서 고맙다는 표현을 안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기도 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아내에게 고맙다고도 했다. 아내에게 던지는 말이지만 사실 내 아이의 마음에 꽂혀 정확히 명중하길 바랐다. '엄마 아빠는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는구나. 나도 친구한테 고맙다고 해봐야지.'라고 뻔한 드라마의 해피엔딩처럼, 아이가 극적으로 변하길 상상하며 고맙다를 남발했다.
아내는 이내 너무 형식적인 거 아냐? 너무 어색한데? 하며 함께 웃고 말았지만.
어제 저녁 다람이가 꽤나 아끼는 보석 머리핀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을 때 나는 진심을 담아 고맙다 했다. 그리고 직접 물어봤다.
다람아, 아빠가 고맙다고 하니까 다람이 기분이 어때?
무슨 말을 하려는지 파악을 끝낸 다람이는 장난스러운 표정과 함께
기분 안 좋은뎅?
나는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빠가 고맙다고 하니까 다람이 마음이 좋지 않았어?
아빠가 만약에 선물을 받고도 고맙다고 안 했으면 다람이 기분은 어땠을까?
기분 엄~~청 좋았을 거 같은뎅?? 푸헤헤
그 모습이 웃기고 귀여워 나도 그냥 푸헤헤 웃고 말았다.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감정 카드를 이용해서 감정들을 가르쳐 주려는 시도도 했다. 문제는 나조차도 내 감정을 들여다보거나 공부한 경험이 없다는 거다.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선, 결국 부모가 먼저 성장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엄마와 아빠가 아이 앞에서 매일 서로 칭찬을 하기로 했다.
여보 설거지해줘서 고마워요.
여보 육아 유튜브 찾아서 공유해줘서 고마워요.
처음엔 로봇처럼 말했지만 서로 고마운 일을 생각하니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것도 퍽 고마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