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자글방 Jan 06. 2024

같이 가자고는 못 하겠지만, 같이 살아내면 좋을 ...

[그곳에 같이 갈래요?] 어진

같이 가자고는 못 하겠지만, 같이 살아내면 좋을 것 같아


언제나 떠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서울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은 묘한 해방감을 준다. 한번은 더운 여름 친구와 동네 뒷산에 올랐다. 땀이 맺힌 두피에 습한 바람이 느껴지고 다리 한구석을 모기에게 내어주어야 비로소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그런 여름. 우리는 갑자기 야경이 보고 싶어 무작정 걸었다. 서울의 야경은 와- 감탄을 만들어 내다가도, 다 늦게까지 일하는 것 같아 걱정되다가도, 빈 땅 하나 없이 건물을 다 욱여넣은 것 같아 숨도 막히다가, 빽빽한 곳에 나 살 곳 하나 없구나 한탄도 하게 만드는 그런 곳이다. 애증을 공간으로 표현한다면 서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진은 어디서 왔어요? 저는 부안에서 왔는데, 아 부안을 모르시는구나.. 부안은 음 전라북도 전주 아세요? 비빔밥 유명한 곳. 거기 옆에 있는 곳이에요. 지금은 언니 동생이랑 부천에서 살고 있어요. 서울 사는 거 아니에요? 아 학교 다니는 동안에만 잠깐 서울 살았어요. 그럼 집이 몇 개예요? 되게 신기하다.


온갖 수수께끼 같은 말이 끝나고 드디어 제집을 찾게 된다. 이런 미로 같은 설명도 최근에 만난 사람이어야 가능하고 1년 이상 보지 못한 친구라면 서초구 거기는 이미 떠났다는 말을 추가해준다. 가끔 이렇게 복잡한 설명은 지금 내가 어디쯤 살고 있는지 잠시 잊게 한다. 실제로 난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어지는 때가 많았으니까.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거야라는 가사는 날 두고 만든 게 아닐 텐데 말이다.


떠나야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공간에 대한 감각을 더디게 했다. 공간에 대한 감각을 더디게 한다는 것은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한다는 것이고, 이는 은근한 분노와 외로움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나를 온전히 돌볼 공간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잔잔한 두려움을 가져다주었고, 그렇지 못한 또 다른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화가 나도 혼자 틀어박힐 방이 없는 서울은 그런 곳이었다. 2년, 짧게는 6개월마다 반복되는 고민 속에서 물리적 공간의 확장은 너무 어려운 것이었고, 그럴 때일수록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만드는 보이지 않는 집에 더욱 마음을 두었다. 그곳은 꽤 안락했고 서로를 보듬기에 넉넉했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서울은 외로운 기분을 가지고 쫓겨난 사람들이 분노와 영혼으로 결집한다. 언젠가 마음과 몸을 붙이게 될 그곳에 함께 가자고 손 내미는 상상을 하면서. 울렁거리는 불안정한 마음을 버리고 유쾌한 마음으로 안전한 곳을 찾았다고 기뻐하면서. 힘껏 용기 내 사랑하는, 피가 안 통하는 그 저릿한 느낌으로 서로를 꽉 안고 공간을 찾아 나선다. 


같이 가자고는 못 하겠지만, 같이 살아내면 좋을 것 같은 기분으로 서울을 걷는다.

이전 11화 초록의 한낮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