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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글방 Jan 06. 2024

곰팡이

[그곳에 같이 갈래요?] 지수

오전 8시


또로롱 또로롱 또로롱 또로롱 또로롱 또로롱


주말인데 늦잠도 못 자게 하는 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해치는 거 아닌가?

침대 속에서 욕 몇 마디를 내뱉는다. 며칠동안 못 감아서 심하게 떡진 머리, 피곤에 쩔어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몸, 전날 야식으로 인해 퉁퉁부은 눈. 그 눈 위로 햇빛이 들어온다. 아직은 이불 밖이 추워서, 전보다 더 꽉 몸을 웅크린다. 그렇게 아득해지다 9시 7분, 지각이다. 네번째 욕과 함께 화장실로 뛰쳐나간다. 조용한 집에서 물튀기는 소리만 들린다, 머리 감을 시간은 없으니까 모자 쓰고 가야지. 대충 세수와 양치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는다. 짐 다 챙겼겠지? 늦었으니까 빨리 가자.


철컥

띠로로리


띠롱띠띠띧띠띠띠띠,띠리리!

철컥


아 맞다, 교통카드!

-

역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가는 길에 지각문자 보내는 것도 잊지말자. 오늘 지각은 두명인가보군. 아슬아슬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며 아까 챙긴 교통카드를 꺼내든다. 

삐빅! 마스크를 착용하세요.

-

영등포시장에서 내려서 또 다시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프렌차이즈 카페를 지나, 만두집, 동물병원, 어린이집. 숨이 좀 찬다. 10시 2분, 오늘의 목적지 하자센터가 보인다. 

-

하자 본관, 입구부터 쿰쿰한 냄새가 나는 그곳. 습하고 눅눅한 곰팡이가 나를 반겨주는 지하. 두꺼운 방음문을 힘겹게 열어 젖힌다. 방음도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은데. 입구에는 대충 벗어둔 신발들과 정리되지 않은 슬리퍼들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다. 그 옆에는 공기를 정화하기에 턱없이 작은 공기청청기 한 대. 먼저 와있는 친구들. 다들 한 손에는 악기를 쥐고 있다. 아 핸드폰이었나. 바닥에는 정리가 된 듯 안 된 듯 널부러진 케이블. 피곤에 지친 얼굴들이 한쪽 벽면 가득 비친다. 다른 지각쟁이가 도착하고, 우리는 서로의 안부에 대해 묻는다. 이해할 수 없는 교사, 최근에 걸린 감기, 새로 친해진 친구들, 우리가 아는 사람들. 우린 실없는 얘기들과 웃는다. 그리고 합주를 막 시작하려는 찰나..


얘들아 잠깐 나 튜닝 안 했어.

야! 너 그럼 그 사이에 뭐했어!

빨리빨리 합시다 정말~


합주를 시작한다. 두번, 세번, 다섯번. 벽 속 얼굴들에 생기가 돈다. 틀리면 오히려 입꼬리가 올라간다. 조금씩 엇나가있던 음들이 서로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피드백은 곡이 끝나자마자 들어간다. 우리는 같은 곡을 듣고 있다.

-

합주가 끝나고 하자를 나오니 1시 반. 하늘이 반짝이고 햇볕이 파랗다. 나뭇가지 끝마다 초록빛이 올라가있다. 시원한 바람. 누가 말한다.

-

“우리 완전 청춘같아!”

-

학원을 가는 길에, 나는 사랑이라 말했다.

청춘이 별거냐고. 하고싶은 것을 같이 하고, 실없이 웃고 떠든다. 우리는 시간을 내서 서로를 만난다. 토요일 오전을 이들과 나눈다. 당연하게도 세상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청춘인 것이다. 따갑고 거칠어진 마음에 사정없이 사포질할 시간과 애정이 있는. 그것을 세상은 청춘이라 하더라.

-

청춘, 청춘, 청-춘!

-

집에 돌아오자 몸에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왱왱. 눈이 부신가. 공기청정기가 왱왱. 금요일 밤, 나는 늦잠을 자고싶다 생각했다. 공기청정기 곰팡이 왱왱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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