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유튜브 채널 〈오느른〉에서 북토크 제안을 받았다. 김제평야에 책방 ‘책밭서점’을 열게 되었는데 오픈 날 라이브 북토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평야에 책방이라니, 멋지다. 한다고 손을 번쩍 들어놓고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김제평야’를 검색했다. 사각형으로 구획된 논밭이 끝없이 펼쳐진 이미지가 모니터 화면을 채웠다. 이미지를 계속 클릭하며 평야를 감상하다가 다시 한번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곳에 책방을 연다니.
평야를 충분히 감상하고 나서 〈오느른〉 채널에 올라온 첫 영상을 찾아봤다. 2020년 6월에 올라온 3년 전 영상. “4,500만 원짜리 폐가를 샀습니다”라는 제목의 4분 40초짜리 영상은 MBC 최별 피디가 서울에서 전라북도 김제에 있는 ‘집’으로 가며 시작하고 있었다. 만으로 서른,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사람’인 최별 피디는 덜컥 폐가를 산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사실 별 계획도, 생각도 없어요. 그냥 당장 좀 쉬고 싶었어요. 이 집을 보는 순간, 아 여기에서 쉬면 되겠다 싶었어요.”
쉬고 싶던 최별 피디가 이후 3년간 채널에 올린 영상을 생각이 날 때마다 하나씩 봤다. 기분에 따라 골라 본 영상들은 최별 피디가 집을 꼭 사야만 했던 마음을 대변하듯 하나같이 편안하고 정겹고 또 아름다웠다. 최별 피디의 아버지가 자전거를 배우시는 영상은 두 번이나 봤다. 영상엔 다른 내용은 없었다. 평야를 배경으로 부녀가 투닥거리며 자전거를 연습하는 게 다인, 그래서 너무나 좋은.
북토크 날, 익산역에 내려 택시를 탔다. 36년간 택시를 운전했다는 기사님은 30분 동안 자신의 삶을 간략히 요약해주었다. 화만 낼 줄 알았던 아버지, 아내와의 두근거리는 첫 만남, 동창을 택시에 태웠던 순간, 공부 잘했던 과거, 뜻대로 되지 않은 인생, 아버지와 달리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는 지금까지. 오디오북을 들으며 가려다 이어폰을 뺀 나는 기사님의 요약된 인생을 가만히 들었다. 지금은 익산에 살지만 김제가 고향이라는 기사님은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 듯했다. 하지만 고향 가는 길은 헷갈리시는 듯 내비게이션 두 개를 보면서도 내 휴대폰 내비게이션 방향까지 묻던 기사님이 문득 말했다. 어우, 비바람이 세게 부네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우산이 뒤집혀 급히 서점 마당으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큰 촬영이라 수십 명에 달하는 스태프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당에서 북토크를 한댔는데 할 수 있을까. 다행히 날은 서서히 갰다. 마당에 관객을 위한 의자가 놓였고, 그 주위로 카메라 몇 대가 자리를 잡았다. 카메라 앞에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터라 오히려 덤덤해졌다. 이곳 책밭서점도 작은 동네 서점이니 다른 동네 서점에서 하던 것처럼 하면 되겠지.
최별 피디님, 요조 작가님 사이에 앉아 북토크를 시작했다. 영상에서만 보던 두 분이라 연예인 사이에 앉은 일반인이 된 기분이었는데, 이 기분이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주었다. 시청자들은 두 분에게 관심을 가질 거야, 난 잘 안 보일 거야, 라는 합리적인 생각 끝에 두 분에게 묻어가기로 결심도 했다.
남모르게 묻어가는 사이, 유쾌한 피디님과 위트 있는 작가님 덕분에 나도 서서히 즐기는 마음이 되어갔다. 생각해보면 앞에 앉은 관객분들이나 집에서 라이브로 시청을 하고 있는 분들이나, 눈에 불을 켜고 우리의 허술함을 찾아 평가할 리는 없었다. 이 먼 평야를 찾아 온 사람들과 〈오느른〉 채널을 시청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모두 다 허술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비바람이 남기고 간 서늘한 공기 속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차츰 여유도 찾았다. 좁았던 시야가 넓어지며 관객 너머에 있는 평야를 이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오느른〉 채널은 색감이 정말 예쁜데, 그 채널 속으로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눈에 필터가 씌워지며 모든 것이 아늑해 보였다. 나중에 최별 피디님은 날씨가 갠 것에 대해 한 해 동안 쓸 운을 다 쓴 것 같다고 말했는데, 정말이지 오히려 햇볕이 쨍한 날씨보다 비 온 뒤의 흐린 날씨가 분위기를 더 돋워주는 듯했다.
북토크는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최별 피디님은 우리가 함께 앉아 있는 곳과 어울리는 질문을 했다. 작가님은 잘 쉬시나요? 잘 쉬고 싶어 무작정 폐가를 구입한 최별 피디님과도 어울리는 질문이었다. 내가 잘 쉬고 있나 스스로 물을 필요도 없이, 나는 바로 잘 쉬고 있다고 대답했다. 잘 쉬면서 살고 싶어 몇 년째 잘 쉬는 방법을 모색해왔으니까.
내 대답을 듣고 피디님은 밝은 목소리로 놀란 듯 말했다. 이 질문에 잘 쉰다고 대답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작가님이 처음으로 잘 쉬고 있다고 대답한 거라고. 순간 대한민국 국민답게, 다들 바쁘게 달려나가는데 나만 쉬면서 막 사는 건 아닌지 위기감이 들었지만 금방 위기감을 떨쳐냈다. 쉬는 것도 노력이 필요한 나라에서 나 역시 잘 쉬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잘 쉬어야 잘 살게 된다는 걸 언제쯤 알게 되었더라. 잘 못 쉬어 몇 번쯤 삶이 꺾이고 나서 알게 되었겠지. 쉴 새 없이 수많은 걸 배우라고 다그치는 나라에서 쉬는 법만큼은 절대 알려주지 않았기에, 잘 쉬는 법은 혼자 깨우쳐야 했다. 이렇게 저렇게 쉬어보다가 알게 된 건, 시간이 많다고 잘 쉬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하루 종일 누워 있다고 쉬는 것도 아니었다. 걱정을 한가득 안고 주말 이틀 침대에 누워 있다고 휴식은 아닌 것처럼.
제대로 쉬어보고자 탐구한 끝에 휴식이 무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게 휴식은 비어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비어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건, 시간 속에 나만 들어가 있는 걸 말한다. 시간 안으로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한다. 사회적 시선, 압박,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말들. 지치지 않고 찾아오는 불안, 걱정, 두려움도.
시간이 공이라면 그 안에 나만 존재하는 것이다. 공 안에 들어가 있을 땐 나와 관계 맺은 이들이 아무도 없다는 감각도 필요했다.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떨어져나와 가벼워진 몸과 마음이 되어본다. 나는 혼자이고, 나는 자유롭다고 감각해본다. 단 한 시간이라도, 단 하루라도 가벼운 상태가 되는 것. 이 상태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좋아하거나 하고 나면 기분 좋은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찾은 휴식이었다.
공 안에 들어가는 일이 처음부터 잘되진 않았다. 여러 생각과 감정, 관계를 잠시라도 깨끗이 끊어내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 오후 내내 안 좋은 일로 끙끙 앓다가도 밤이 되면 아, 몰라, 이제 쉴 거야, 다 잊어버리게 됐다. 밤이면 나 몰라라의 시간을 자주 갖다 보니 어느덧 밤은 내게 안전한 휴식 시간이 되어주었다. 밤이 되면 모든 걱정, 시름은 내일로 넘기고 우선 가벼워지려고 한다. 마음을 놓고 이 시간을 마주한다. 적어도 오늘 밤엔 아무도 날 건드리지 않을 것이고 내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며.
밤뿐 아니라 언제든 쉬어야 할 땐 쉬려고도 한다. 나도 모르게 내가 힘들어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오면 나를 푹 쉬도록 허락한다.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 느슨하게 풀어주면서 한량처럼 며칠을 보내도록 한다. 힘을 내, 말하기보다 내 안에 힘이 차오르도록 기다린다.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있어야 한다면 그렇게 한다. 누워 있으면서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어린 조카를 대하듯 나에게 우쭈쭈 한다. 힘들었구나, 그럼 쉬어야지, 푹 쉬어, 우쭈쭈. 스스로 우쭈쭈까지 하며 살아가는 나. 그러니 피디님의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전 잘 쉬고 있어요.
북토크가 끝나고 청음회를 기다렸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았고, 마당에 놓인 피아노 위로 작은 전구들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가수 요조의 청아한 목소리로 청음회가 시작되었다. 노래 사이사이 최별 피디가 무대로 나와 진행을 했는데, 피디님은 여러 번 개구리 소리를 들어보라며 우리 귀를 쫑긋 세우게 했다. 그때마다 나는 개구리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동그란 시간 속으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