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언 제이콥스, 루카스 잉글랜드 배우의 열연이 돋보이는 드라마 <트랜스 아틀란틱>은 제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나치가 유럽을 점령하고 유럽 대륙의 많은 나라들이 파시즘에 물들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때 미국은 중립국을 선언했지만 먼 나라 유럽인들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미국인들이 있었다.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전쟁 발발 불과 1년 후인 1941년 미국은 나치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지만, 그 직전 해인 1940년에 미국은 세계 대전에 개입하지 않는 중립국이었다. 그럼에도 몇몇 미국인들은 유럽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는데 이 드라마의 핵심 조직이자 당시 뉴욕을 본부로 했던 긴급 구조 위원회, ERC는 독일의 일부 사람들과 힘을 합쳐 유럽 내에서 나치에 의해 탄압받는 사람들을 해외로 망명시키는 탈출 작전을 수행했다.
실제 위원회의 핵심 인물이자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은 먼저 부유한 시카고 출신의 영애 메리 제인 골드이다. 그녀는 시카고에서 아버지의 막대한 부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 대신 전쟁 중인 프랑스 마르세유에 남아 나치에 의해 핍박당한 난민들이 무사히 미국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밀항과 탈출을 돕는다. 당시 프랑스 정부였던 비시 정부는 미국과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포로들과 난민들이 독일로 강제 소환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했다. 그래서 구조 위원회는 난민들이 대서양을 건널 수 있게 돕고, 여기서 파생된 이번 드라마의 제목은 대서양을 건넌다는 뜻의 트랜스 아틀란틱이다.
메리 제인 골드와 함께 일했던 실존 인물인 미국인 기자 배리언 프라이 또한 죄 없는 난민들이 때로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정치와 파시즘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예술을 했다는 이유로 핍박받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그는 구조 위원회의 핵심 인물이고 특별한 명단을 만들어 정치인, 예술인, 작가, 학자 등을 구한다. 메리 제인과 배리언은 아무것도 얻는 것은 없지만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면서 그들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그들이 탈출 작전 중 우연히 만나게 된 또 다른 실존 인물인 알베르트 히르슈만은 독일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이탈리아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수재이고, 역시 강인한 정신력과 정의감 속에서 메리 제인과 배리언을 도왔다. 세 사람은 미국의 긴급 구조 위원회의 핵심 멤버들로서 수많은 난민들에게 거처를 제공했다. 처음에는 스플렌디드 호텔에서, 이후 그곳이 마르세유 현지 경찰에 의해 급습당하자 위원회는 에어벨 빌라라는 교외의 대저택으로 장소를 옮긴다.
이처럼 위원회는 수많은 난민들을 미국으로 탈출시키려 애썼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드라마 속에서 위원회의 구조 가능 인원에 비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난민으로 묘사된 것은 실제로도 당시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생존을 위해 대륙 탈출을 원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드라마 속에는 배리언이 구조 위원회의 도움을 받을 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있다. 구조 위원회는 주로 전문 예술인이나 작가, 정치인, 논문을 발표한 학자 등을 구했는데 지성인을 선별적으로 골랐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 외에도 당시 나치에 의해 핍박받았던 사람들은 굉장히 많았고 그들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엄마, 형제, 캐리커쳐를 그리며 사람들에게 기운을 주는 화가처럼 말이다. 결국 배리언은 직업에 상관없이 사람들 개개인이 가진 생명의 소중함을 보고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없는 구조 위원회의 형편과 사람들의 생에 대한 간절함에 눈물을 흘린다.
특히 전쟁 속에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는 시퀀스가 있다. 극중 메리 제인과 배리언을 포함해 에어빌 빌라에서 숨어 살던 수많은 예술가들은 결국 경찰의 급습 때문에 오래된 배의 지하 공간에 갇히게 된다. 중립국인 미국인들도 난민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된 모습은 당대의 첨예했던 유럽 대륙의 갈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때 예술가들이 급습된 이유는 당시 나치 군인들이 마르세유를 순찰하러 퍼레이드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소위 말해 도로를 깨끗이 한다는 이유로 나치의 입장에서 위험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을 마르세유 경찰이 미리 숨겨놓은 것이다. (당시 나치의 영향력은 마르세유 현지 경찰에게도 행사되었다)
실제로 당시 에어빌 빌라에서 머물렀던 페기 구겐하임의 자서전에 따르면, 극중에서는 사람들이 반나절 동안만 잡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며칠간 감금되어 있었다고 한다. 단순한 목적을 위해 존엄을 포기해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미국인임에도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갔던 메리 제인과 배리언의 이야기는 인상적인 스토리이다.
그럼에도 구조 위원회와 에어빌 빌라의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중 리자라는 인물은 프랑스에서 항구가 막히자 스페인으로 가는 육로를 뚫은 강인한 여성이다. 그녀는 페넬로페 크루즈와 케이트 윈슬렛,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느낌도 풍긴다. 메리 제인만큼이나 강단 있는 조연인 리자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수많은 난민들을 안전히 스페인으로 대피시킨다. 험준한 길이지만 그 길을 앞장서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녀는 구조의 핵심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도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희생을 마주한다. 단순히 폭탄으로 인한 피해, 직접적인 대치 등으로 인한 피해가 아니다. 이 시리즈에서 다루는 것은 희망을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전쟁은 직접적 폭력만이 아니라 간접적인 폭력도 행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리적 무망의 상태에 이르른 사람들 중 극중 발터 벤야민이라는 천재적 작가는 스페인 국경을 바로 앞에 두고 절망감에 생을 끊는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리자는 더욱 적극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다.
시리즈는 7화로 회차가 많지 않지만 최후의 탈출 작전을 임팩트 있게 그린다. 극중 배리언 프라이와 메리 제인 골드는 마르세유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300명의 사람들을 배에 태워 밀항시키는 최후의 작전을 펼친다. 여기에는 많은 조력자들이 힘을 보탠다.
먼저 앞서 배리언이 갇혀 있었던 배의 선장은 배리언의 동료로서 에어벨 빌라의 사람들을 짐칸에 태워 마르티니크로 탈출시키는 것에 동참한다. 더불어 타국에 입국하려면 필수적인 비자는 미국 대사관의 부영사 빙엄이 핵심적인 조력자로서 만들어준다. 그가 모든 직원들이 대사관을 나갈 때까지 밤새 기다렸다가 한밤중에 몰래 나와 200명 분량의 미국 비자를 만들어주는 장면은, 구조 위원회만큼이나 애썼던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위기도 존재한다. 나치 군인뿐 아니라 마르세유 현지 경찰, 그리고 미국 대사 패터슨과 그의 비서 르토레 등이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주된 인물로 등장한다. 그 이유는 메리 제인의 업무 때문인데, 메리 제인의 아버지가 자금줄을 끊자 메리는 사람들을 구할 돈을 얻기 위해 경제적 이유로 영국 정보부 특수 작전부의 간부인 마고라는 여성과 손을 잡는다.
에어벨 빌라의 주인이자 배리언과 사랑을 나누는 상대인 토마스 또한 알고 보니 마고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다. 마고와 메리 제인은 목표가 다르지만 사람들을 구한다는 명분 하에 같이 일하게 되고, 메리 제인은 단순히 프랑스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덩케르크 작전 이후 드밀 수용소라는 포로 수용소에 잡혀 있는 영국 군인들까지 탈출시킨다. 하지만 당시 일반적인 미국인이 영국 정보부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외교 문제로 번질 수도 있었고, 그리고 연고 없는 미국인이 드밀 수용소의 포로들을 탈출시켰다는 것도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 때문에 구조 위원회는 위기에 처한다.
특히 구조 위원회의 일에 반대하고 메리 제인과 사이가 좋지 않은 대사 패터슨은 꾸준히 위원회의 꼬리를 쫓고, 그의 비서 르토레 또한 에어빌 빌라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며 위원회의 작전을 위협한다. 특히 패터슨은 드밀 수용소 탈출 작전에 가담한 폴(스플렌디드 호텔의 지배인이자 구조 위원회의 지략가, 메리 제인의 조력자)을 마르세유 현지 경찰에 넘기고, 르토레는 도청한 내용을 나치에게 넘기면서 구조 위원회 사람들은 마르세유 현지 경찰과 나치 모두에게 노출된다.
이러한 여러 위협 속에서 구조 위원회는 꼭 필요할 때 영국 정보부 마고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하고, 결국 구조 위원회는 홀로서기에 나선다. 그래서 알베르트와 폴의 동생 자크(프티라고 불린다), 리자의 남편 한스 등 사람들은 폴을 구하기 위해 더욱 큰 계획을 세운다. 폴을 포함한 마르세유의 포로들이 당시 나치 독일로 강제 송환될 위기에 처하자 그것을 막기 위해 포로를 탈출시키려 한 것이다.
이들은 무사 구조되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이 따르기도 한다. 결국 이처럼 무고한 사람들을 나치의 손아귀에서 구하는 작전들을 마무리로 시리즈도 막을 내리는데, 엔딩 크레딧에 따르면 실제로 당시 긴급 구조 위원회는 예술가들뿐 아니라 유대인들과 나치가 수배했던 사람들을 포함해 2000명 이상의 사람을 구조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는 실화 소개를 위해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리즈는 실화와 픽션을 적절히 혼합하며 마무리짓는다. 먼저 안타까운 것은 메리 제인과 알베르트의 로맨스도 매듭을 짓는다는 것이다. 특히 알베르트는 미국으로 갈 비자가 이미 발급되었고 메리 제인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 문앞에서 알베르트는 자신의 안위보다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출하기 위해 마르세유에 남는다. 사랑 앞에서 좌절되는 커플의 모습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메리 제인은 당시 영국 정보부와의 협업을 미국 대사 패터슨에게 들키면서 어쩔 수 없이 마르세유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배리언도 샤갈 부부와 그들의 그림을 가지고 스페인 국경을 넘어 리스본으로 가 다시 뉴욕으로 가는데, 이때 미국의 빙엄 대사가 몰래 훔쳐준 외교관 차량을 타고 검문소를 통과하는 모습은 사랑을 포기하고 안전을 택한 배리언의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을 보여준다. (배리언은 토마스를 버리고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는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들을 중심으로 픽션을 더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어두운 분위기를 띄거나 역사극의 느낌을 풍기지 않는다. 오히려 제작자들은 유머와 역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극의 분위기를 밝게 가져가려고 했고, 시대극의 느낌보다는 1940년대 스크루볼 멜로드라마의 연출 형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래서 <트랜스 아틀란틱>은 당시 세계 대전을 다룬 다른 작품들처럼 나치 수용소나 포로들, 전쟁의 현장들이 직접 묘사되지 않는다. 오히려 평화로운 풍경의 마르세유에서 생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또한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건에서 일부 사실을 확대 조명하면서 당대 역사가 실제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에 집중했다. 가령 미국이 중립국을 선택한 것, 영국만 나치에 맞서 싸웠던 것이 드라마에서 계속 등장하는 이유는, 그러한 타국의 선택이 유럽 대륙 내의 난민들에게 실제적인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연합국은 수많은 난민들을 위한 비자를 제한적으로 발행해서 독일과 유럽 대륙의 난민들은 갈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극중 난민들이 미국 비자를 받기 어려웠던 것, 그리고 메리 제인과 토마스가 나치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영국 정보부와 손을 잡았던 스토리도 위처럼 당시 타국의 선택이 세계 대전에서 난민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다.
더불어 이 드라마는 캐릭터들에도 실제성을 부여했다. 긴급 구조 위원회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일하는 폴도 당시 역사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당시 파리가 나치에 함락되면서 해산된 군인들은 마르세유에서 저항군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극중 폴의 설정과 일치한다.
그리고 당시 에어빌 빌라에 머물렀던 사람들도 실제로 당대 유명 화가들과 작가들, 예를 들면 뒤샹, 샤갈, 막스 에른스트, 그리고 페기 구겐하임 등도 나오고, 아도르노, 만, 한나 아렌트 등 많은 예술인들이 묘사되는 것은 인상적인 설정이다. 특히 이 예술인들과 관련해 3화에서 막스 에른스트의 생일 파티가 에어빌 빌라에서 열리며 현대 미술을 축하하는 장면은 당시 상황과 잘 어울리기도 한다. 난해하지만 자유롭고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현대 미술은 주로 귀족들이 향유했던 고전 미술과 달리 전쟁 중에도 자유를 추구했던 사람들의 끝없는 싸움과 잘 어울린다. 인생에는 슬픔만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가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실제성에 기반하되 많은 픽션을 더했다. 실존 인물들이지만 긴급 구조 위원회의 사랑 등 내면 감정이나 서사, 개인적 이야기는 모두 픽션이다. 또한 당대 예술가들의 작품도 실제 작품을 그대로 쓰지 않고 프로덕션 디자이너들이 재창조해서 작품 속에 삽입했다. 대신 배경인 마르세유나 스플렌디드 호텔, 에어벨 빌라의 배경이 된 몽발롱 등은 프로덕션 디자이너들과 카메라 맨의 영감을 더해 실제 장소를 사용함으로써 극중 1940년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게 했다.
메리 제인과 알베르트가 극중 보여주는 로맨스는 픽션이다. 그럼에도 드라마에서 메리 제인 골드 역의 길리언 제이콥스와 알베르트 역의 루카스 잉글랜더의 연기가 돋보였고, 그들의 로맨스는 시리즈에 재미를 더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결국 실제로 메리 제인과 배리언은 미국으로 떠났고 전후 메리 제인은 프랑스 리비에라에 돌아와 독신으로 살았다. 그리고 메리 제인은 평생 동안 마르세유에서 보냈던 1년이 가장 의미 있었다고 남겼다.
한편 알베르트는 마르세유에 남았지만 1941년 전세가 변하자 그 또한 이후 리스본을 거쳐 뉴욕으로 갔다. 알베르트는 예일대와 하버드, 프린스턴을 거쳐 경제학 교수를 역임하며 살았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알베르트 역을 맡은 루카스 잉글랜더 배우가 돋보인다. 그전에는 단역을 주로 맡았지만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되는데, 그 이유는 실제로 그의 할아버지가 1/4은 유대인이었고 그 이유로 나치에게 박해를 받았는데,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잉글랜더 배우의 할아버지는 오스트리아 이민자들이 탈출하게 도왔고, 실제로 전쟁 당시 미국으로 망명 가셨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도 알베르트의 역에 쉽게 몰입하고 마치 가족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이처럼 이번 시리즈는 남녀노소 누구나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고 당시 역사적으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분위기도 무겁지 않고 감동적이며, 당시 배경이나 의상, 프랑스의 전경을 보는 것도 극에 흥미를 더한다. 더불어 배우들의 명연기가 있고 특히 의미 있는 스토리이기 때문에 주목해볼 만한 넷플릭스 시대극이다.